[월간 사랑] 02 : 꽃
꽃말 없음
글 입력 2018.09.0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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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랑02그렇다.본래 나는 겉치장만큼이나속도 신경쓰는 사람이다.꽃을 고를 때에도 꽃말에 목숨을 거는, 그런 부류다.딱히 화해의 손길은 아니었다만, 애인과의 다툼 후 그를 웃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고민 끝에 난생 처음 꽃 선물을 해보겠다고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하게끔 길을 나섰다. 전 날 꽃집도 미리 알아보고 '꽃말 리스트' 따위의 제목을 하는 블로그 글을 몇 시간이나 찾아다녔던 터라 든든했다. 꽃 후보, 꽃집 후보, 가는 길, 소요 시간까지 조사해두었으니 불안한 게 이상했을지도.헌데 변수가 생겼다. 평소에 매번 늦어 서럽게 만들던 애인이 웬일로 30분이나 일찍 도착한단다. 하여튼 잘 해주려 해도 도움이 안 된다. 내가 가려던 꽃집은 왕복만 해도 20분인데. 마음이 급해졌다. 싸움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벤트까지 아슬아슬해지니 기운이 빠졌다.고르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 가는 시간을 줄이자. 하는 마음으로 달리고 달렸다. 선물할 기분까지 흐릿해진 상황에서 무얼 위해 달린 건지 모르겠다만, 나도 모르게 달렸다. 그렇게 10분을 더 벌었다. 자, 이제 꽃 골라보자. 할 수 있어.막상 구경을 시작해보니 별 게 다 예뻐보였고, 별 게 다 부족해보였다. 전 날 검색해두었던 꽃말은 어디가고, 갑자기 마음에 드는 '느낌'이란 걸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그러다 눈에 안겨온 노오란 장미. 집어들면 안되는 꽃이었다. 그의 꽃말은 줄어드는 사랑이었기에.끌림이라는 게 참 제멋대로다. 끝끝내 노란 꽃을 집어들고 포장까지 맡겨둔 채 다른 꽃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괜찮다. 꽃말같은 건 비밀로 하면 그만이다. 내 눈에는 그 빛깔이, 그 색이 애인을 닮았다는데 감히 누가 내 사랑이 줄어든다 말할 수 있을까.그리고 하루 끝자락에서 만난 진실은 우리 둘의 끌림도 제멋대로 붙어버려있음을 증명했다. 애인이 30분 일찍 도착한 건, 나에게 꽃을 선물하기 위함이었다는 것. 내 애인에게 나 또한, 변수였다는 것.참, 노란 빛이 아닌가.[김예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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