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동양의 여성은 오셀로를 어떻게 해석할까

판소리 오셀로(08.25-09.22), 정동극장
글 입력 2018.08.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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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눈'이라는 말


삐딱한 소리부터 하고 시작해야겠다. ‘여성의 눈으로 새롭게 쓰는’이라는 말은 최근 문화예술 계열에서 가장 많이 쓰인 말일 것이다. 페미니즘이 사회 전반의 화두로 등장하며 널리 쓰이기 시작한 이 어구는 그간 가져왔던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을 펼치는 작품도 있었고, 페미니즘의 허울과 함께 답습해왔던 여성혐오를 반복하던 작품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여성의 눈으로 새롭게 쓰는’이라는 말을 보면 걱정부터 든다.

게다가 이 작품은 고전 원작의 해석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다. [셰익스피어 5대 비극 모음]을 읽은 적이 있다. 모음의 위가 정확히 꺾이는 정자의 제목을 가진 두꺼운 책이었다. 햄릿처럼 익숙한 작품 말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오셀로였다. 단순히 간통으로 인해서 질투에 눈이 멀어 부인을 살해하고 자신까지 죽는다고? 살인에 대한 죄값도 받지 않고? 이 간단한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황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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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은 오셀로


판소리로 ‘오셀로’를 다시 해석한다는 것을 듣고 최근 오셀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오셀로의 부인 데스데모나는 남편의 부하 이아고의 음해에 의해 다른 부하, 캐시오과 바람을 핀다는 오해를 받는다. 질투에 불타버린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자신도 죽어버린다. 오셀로의 자살 이후에 캐시오는 오셀로가 참 고결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란 말인가? 데스데모나는 정말 억울하다. 바람을 폈다고 해도 그건 살인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되며(무엇도 살인의 합리적 이유는 될 수 없다) 심지어 그녀는 바람을 피지도 않았다. 남자들의 권력다툼에 희생된 인물이다. 와중에도 오셀로는 데스데모나에게 키스한 뒤 죽여버리고, 스스로 배를 찌른 다음에도 데스데모네의 입술에 입을 포개며 죽어버린다. 참 대-단한 사랑꾼 났다.

오셀로는 데스데모나가 ‘정숙한 여인’이길 바랐다. 이아고는 데스데모나가 현지인이 아닌 외부인(오셀로는 무어인으로, 이탈리아 배경인 작품에서는 외지인으로 나온다)과 결혼한 것부터 욕정에 끓는 여성이라고 말한다. 읽으며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기본이었고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정조,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면 압박하려드는 남편, 남성들의 권력싸움 앞에서 희생양으로서 작용하는 여성의 역할. 지금까지 만들어진 한국영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또한 놀라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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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오셀로에게 주어진 임무


다시 판소리 오셀로로 돌아가보자. 극의 주인공 ‘단’은 “이들의 삶을 애처롭게 슬픈 마음으로 들려주다가도 때로는 제 3자의 눈으로 조소와 해학을 날리기도 한다. 나름대로 자신만의 ‘입장과 시각’을 표시하며, 이야기의 몰입과 객관화를 동시에 보여주며 관객을 쥐락펴락 한다”(홍보자료)고 한다. 관건은 ‘단’의 해석적 태도와 ‘판소리 오셀로’로서의 독립적인 서사다. 판소리 오셀로는 기존 오셀로를 판소리 형태로 각색해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창자를 만들고 오셀로를 하나의 구전 이야기로 만들어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판소리 오셀로는 오셀로에 대해 주체적으로 해석했어야 한다.

극 소개에서 알 수 있는 해석의 방향은 두 갈래다. 하나는 동양의 정서, 하나는 여성의 시선이다. 작품은 오셀로를 여성의 시각으로 해석했다고 했다. 과연 그 해석은 어떤 내용일까. 남편이 가진 권력을 보다 공정하게 쓰기 위해 노력했던 데스데모나의 면모에 집중할까 혹은 오셀로와 주위 남성들의 가부장적 시선에 집중할까.

또한 작품은 ‘동양/여성 – 서구/남성’으로 세계관을 구축했다고 한다. 여기서 동양적 정서는 어떻게 극에 침투할 수 있을까? 애초에 ‘동양적 정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교 사상을 의미한다면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요구했던 ‘정숙’이라는 가치, 그리고 데스데모나가 죽기만큼 싫어했던 ‘매춘부’ 호칭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동양적 가치로 서구적 가치를 해석하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정숙을 요구하는 것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동일했다는 비판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 여러모로 ‘동양+여성의 눈으로 새롭게 쓰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라는 설명은 애매하고 알기 힘들며, 기대만큼 걱정도 들게 한다.

여기서 믿을 구석은 소리꾼 박인혜와 연출가 임영욱, 그리고 이 작품을 선정한 정동극장이다. 소리꾼 박인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로 국내외 판소리 및 연극 경연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린 바 있다. [필경사 바틀비]로 2018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출가 임영욱 또한 소리꾼 박인혜와 [필경사 바틀비]의 연출을 함께했으며 2017년 이데일리 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드라마로 치자면 믿고보는 작-감-배(작가, 감독, 배우)랄까. 정동극장은 예술적이고, 대중적이며 완성도 높은 전통공연 제작을 목표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연중  기반 공연을 만들어가는 정동극장의 기획공연 시리즈는 전통의 가치를 유지하되, 틀에 구애받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 간다. 2018년 <적벽>을 필두로 뮤지컬 <판> <청춘만발> <창작ing 시리즈>를 통해 한걸음 더 가깝게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믿음직한 연출과 배우의 만남, 그리고 전통의 가치 유지와 혁신을 함께 도모하는 극장의 공연이다. 오셀로는 비판할 점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처한 최악의 상황–치달은 감정에 의한 살인과 자살–을 그려냈다는 의의도 있다. 그러니 부디 지금까지의 걱정은 기우이길, 해학과 풍자로 오셀로를 세련되고 멋지게 풀어주길 기대한다.


<시놉시스>

이는 아주 먼 데서 온 이야기. 그대 슬프고 잔인한 이야기 속 불쌍한 사람들아.....

오래 전, 이 땅에 있었던 한 이방인 ‘처용’의 이야기, 인품도 지혜도 뛰어난 그를 시기한 역신(疫神)은 질투심에 처용의 아내와 동침 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생 설비(設婢) 단(丹)은 근자에 가장 화제가 된 ‘먼 데서 온 이야기 - 오셀로’를 들려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그리고 키프로스 섬에서 벌어진 이야기. 베네치아의 유능하고 명망 높은 장군, 오셀로. 그의 신임을 받으면서도 늘 부관이 되기를 원하는 이아고는 부관 캐시오에게 앙심을 품고, 오셀로에게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와 부관 캐시오가 밀회를 하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결국 이아고의 꾐에 넘어가 배신당했다고 굳게 믿었던 오셀로는 질투에 눈이 멀어 데스데모나를 죽인다. 결국 모든 것이 모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오셀로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야기를 전하는 단(丹)은 이아고의 간교함, 오셀로의 어리석음, 데스데모나에 대한 동정심을 오가며 그때그때 그에 걸맞은 어조를 구사한다. 이야기를 마친 단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기구한 삶을 딱하게 여겨 탄식을 하기도 하며..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한국의 판소리를 만나다.
동양+여성의 눈으로 재해석한 서구+남성 오셀로의 이야기

‘창작ing 시리즈’의 첫 번째로 창작집단 희비쌍곡선의 <판소리 오셀로>를 무대에 올린다. 작품은 2017년 11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초연된 것으로 셰익스피어의 원작 <오셀로>를 판소리의 공연 양식과 결합한 작품이다.

<판소리 오셀로>는 19세기 조선의 기녀(妓女) 설비(說婢) ‘단(丹)’을 통해 만나는 오셀로 이야기다. 원작이 남성중심적 사건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의심, 질투, 파국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운 정서를 이야기 한다면 <판소리 오셀로>는 여성적, 동양적 가치를 작품 안에 투영하여 원작의 비극성을 초월하는 대안적 세계관에 대해 보여준다.

기녀 ‘단’은 비록 낮은 신분이지만 이야기를 펼치는 기방(妓房)에서 만큼은 주인공이다. 그녀는 어느 날 사람들을 모아 놓고 ‘먼 곳에서 전해 온 이야기’ 이방인 오셀로의 삶에 대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담아 노래한다. 이야기 속 인물들(오셀로, 데스데모나, 이아고)는 높은 신분을 가졌지만 허영과 불신, 욕망으로 인해 결국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단’은 이들의 삶을 애처롭게 슬픈 마음으로 들려주다가도 때로는 제 3자의 눈으로 조소와 해학을 날리기도 한다. 나름대로 자신 만의 ‘입장과 시각’을 표시하며, 이야기의 몰입과 객관화를 동시에 보여주며 관객을 쥐락펴락 한다.

<판소리 오셀로>는 이야기-노래-이야기를 자유롭게 오가는 판소리만의 독특한 공연 양식이 서구의 고전과 만나면서 채움과 비움의 절묘함이 교차하는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신라의 처용에게서, 오셀로를 떠올리다

불그죽죽한 얼굴빛, 툭 튀어나온 눈과 코, 가슴부터 팔 다리까지 휘감은 억센 털. 이방인이지만 인품을 인정받고, 뛰어난 지혜로 벼슬과 아름다운 아내를 얻은 처용. 그러나 처용을 시기한 전염병의 신이 처용의 아내를 꼬드겨 동침하게 된다.

<판소리 오셀로>는 신라의 처용에게서 오셀로를 떠올렸다. 작품은 처용의 이야기를 서두로 던지며 시작한다. 멀리 이국에서 똑같은 처지에 빠졌던 그들. 그러나 처용과 달리 오셀로는 이아고의 이간질에 처절하게 굴복하고 만다. 결국 부인을 죽이고 자신마저 목숨을 끊으며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것이다. 작품은 이렇듯 다른 듯 같은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배치하여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은 대비해 보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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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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