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날 만하다. [전시]

공감의 예술, 니키 드 생팔
글 입력 2018.08.0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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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는 정이 많았을 것이다. 근거 없는 추측이 아니다. 봐라. 친구에게 보내는 그림 편지에 애교스럽게 ‘for you’라며 하트 세 개를 그려 놨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 속에서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웠던 유년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며 근 30년이나 쏟아 부어 <타로공원>을 창조해낸 것만 봐도 니키가 얼마나 다정다감한 사람인지 예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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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니키는 개성 뚜렷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밝고 뚜렷한 색채를 띄는 작품들,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통통 튀는 형식들에 비춰 예상해보았다. 한마디로 요악하면 사랑받아 마땅하고, 사랑을 주는 법도 아는 그런 소녀였을 것이다. 그랬던 소녀는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다.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난 니키는 ‘여자다운’ 순종을 강요받은 유년기를 보냈다. 거기에 더해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적 학대가 어린 니키의 속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었나보다. 그 상처들의 여파로 니키는 ‘아내다움’, ‘어머니다움’을 강요하는 결혼생활에도 역시 적응하지 못하고 이혼을 맞이한다. 종종 상황을 잘못 타고난 비운의 인물들이 있다. 철저한 조선의 계급 사회에서 비천한 노비로 태어난 과학 천재 장영실이라던가, 사랑과 낭만을 노래하는 것이 도리어 능멸로 느껴지던 일제강점기 시대의 윤동주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내가 생각했을 땐 니키 역시 이들과 맥락을 함께 한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그녀의 머리 위에 억지로 덮어씌우려는 프레임을 고분고분 받아들이기에는 니키는 너무 뚜렷한 개성과 잠재력을 지닌 소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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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대기를 접한 후 사진으로만 본 니키의 대표작, <사격회화>를 눈앞에서 만나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 작품의 울퉁불퉁한 석고 표면이 상처받은 니키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바로 옆의 작품 < 악마 >는 더욱 끔직했다. 온 몸이 피같은 붉은 색으로 뒤덮인 채 눈도, 가슴도, 성기도 모두 텅 비어있는 이 조각이 너무 솔직해서 참담했다.
 
니키의 작품들을 유심히 보면 언뜻 봤을 때는 밝은 단색의 색감에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단순히 재기발랄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려고 했던 사회에 대한 깊은 분노가 숨어있으며, 마음 아프지만, 성적학대를 당한 사람들이 자주 경험하는 자기혐오 역시 들어앉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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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앞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의 얼굴 부분에는 ‘I am bad,’, ‘Spider’,‘ disgusting’ 등과 같이 부정적인 감정을 담은 단어들이 적혀있다. 그 위, 머리 부분에는 험악한 고릴라라던가 도마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사람들의 조각이 붙어있다. 대체 니키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자기혐오에 시달려야 했던 걸까.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녀의 작품을 보며 난 그녀에게 공감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얼마 전 <괜찮아, 사랑이야>, <라이브>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의 드라마를 집필한 노희경 작가가 언급한 글쓰기 철학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상처는 많이 받을수록 좋다.
작가가 받은 모든 상처는 글감이 된다.”


니키의 상처는 분명, 예술에 도움이 되건 어쨌건 간에, 받지 않았으면 가장 좋았을 상처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받아버린 그 상처를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당당히 세상에 알린 그녀의 용기에 나는 박수를 치고 싶다. 2002년, 그토록 괴롭혔던 이 세상을 떠난 니키 드 생팔. 그 곳에서는 그녀를 치유하는 예술과 함께,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모든 프레임 집어던진 오직 ‘니키 드 생팔’로서 존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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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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