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에서 전화, 영화, 그리고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영화]

글 입력 2018.07.1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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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제목을 보자마자 중학교 때 본 애니메이션 영화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라는 제목에서 어느 정도 내용을 예측할 수 있듯이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역시 갑자기 세상의 고양이가 모두 사라져 버리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룬 영화인 줄 알았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보게 된 영화는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나의 눈물샘을 폭발시켜 버렸다.


*
스포주의


여느 때처럼 편지 배달부로서의 임무를 다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30살의 ‘나(사토 다케루)’. 그러던 중 갑자기 나와 똑같이 생긴 ‘악마’가 나타나더니, 다음날 내가 병으로 죽게 될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는 한가지 제안을 한다. 악마가 제안하는 조건은 ‘나’의 수명을 하루씩 늘려주는 대신,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아무거나 하나를 없애버리는 것. ‘나’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수명과 세상에서 필요 없는 물건을 바꾸는 건 꽤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나’는 악마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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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주인공이 하루씩 수명을 늘려가는 동안 처음에는 전화, 그다음에는 영화, 그다음에는 시계가 세상에서 사라진다. 전화와 영화, 그리고 시계가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그의 인생에 있어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물건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물건에 관련된 추억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즉, 전화를 통해 만난 첫사랑, 영화를 통해 만난 인생의 친구, 시계를 만드는 일을 하는 아버지와의 추억 또한 같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그뿐만 아니라 추억을 함께 공유했던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파괴된다.

살아남기 위해 점점 잊혀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사는 건 과연 사는 것일까. 결국 세상의 물건을 모두 없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다면, 그건 죽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아니,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하다. 악마는 계속해서 ‘목숨’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느냐고 말하지만,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점점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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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덕분에 세상이 소중한 것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고양이는 없애지 마요.


악마가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고양이를 없애려 하지만, 주인공은 이런 식의 수명연장을 포기한다. 사실 고양이는 그와 가족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였다.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존재였으며, 이제까지 모르고 있던 아버지의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존재였다. 고양이를 없앤다는 건, 연인과 친구로도 모자라 가족에게까지 잊혀짐을 의미한다. 그는 결국 잊혀지는 것 대신 원래 자신에게 주어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택한다.

주인공은 결국 죽게 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결코 허무하지 않았다. “너와 함께해서 즐거웠어”라는 옛 연인의 인사나 그의 장점을 적은 어머니의 편지를 통해 주인공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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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분명 후회가 남는 일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있던 세상과 내가 사라진 세상은 분명 다르리라 믿고 싶어요. 정말 작은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증거니까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죽는 게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 내가 살았다는 사실이 잊혀질까봐, 그래서 지금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이유가 죽음으로 인해 다 허무한 것이 될까봐 무서웠다. 그럼 영화를 본 지금은 다르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그러나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내가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들은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에 의해 남겨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삶이 결코 헛되거나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더 이상 흘려보내지 않고 최대한 느끼고 즐기기로 다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감히 내 인생을 바꾼 ‘인생영화’라 말할 수 있다.


*
상실과 존재가치에 대해 묻는 영화에서 '악마'의 등장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영화에 등장하는 '악마'는 '나'와 생김새가 같은 것으로 보아 살고 싶은 욕망이 표출된 '나'의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한다.


[홍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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