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사로 바라보기, 「데미안」 [도서]

세상의 모든 '스물셋'에게
글 입력 2018.07.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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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세상의 모든 '스물셋'에게

Opinion 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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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가 읽은 책으로 유명해진 데미안
보라색을 대표하는 아이유와 잘 어울린다


가수 아이유가 읽은 책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고 그녀가 '무릎'이라는 곡을 쓸 때 보랏빛이 도는 이 책을 참고했다고 한다. 「데미안」은 자신의 일상과 유년세계에서 벗어나는 소년의 성장을 다루면서, 자기 구도와 성찰을 바탕으로 '나'의 실존이라는 철학적인 영역도 다룬다.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우연히 군부대의 도서관이 세계문학전집을 소장하고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내가 「데미안」을 읽었다고 하기보다는 「데미안」이 내 마음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물셋, 「데미안」을 읽기에 가장 적당한 나이에 나는 「데미안」을 읽었다.


“나는 언제나 길을 찾아
모색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1년 전에 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때문에 중국어 책을 사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군대까지 와서 자격증이니 외국어니 공부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쉬는 시간이면 기타나 만지작대고 책이나 읽던 내 모습과 대비되어 그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켰다. 나름 열심히 중국어 책을 들여다보던 와중에 꺼냈던 「데미안」은 중국어 책을 덮게 만들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정말로 원해서 하고 있는 공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저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무작정 아무 길이나 걸어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주인공 싱클레어가 베아트리체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대목을 읽을 때쯤에 나는 중국어 책을 접어 서랍에 넣었다.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 자신보다 더 잘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원하는 길을 찾기 위해 빈 종이를 펼쳐 나는 쓰기 시작했다. 읽었던 책들에 대해 독후감을 쓰고 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나 자신의 발전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나 혼자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외롭고 슬프기도 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괴로운 고민을 하면서 인간이 되는 과정을 겪자 뚜렷한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해가 지날수록 변화하는 나의 모습을 담아내는 솔직한 자기 고백을 쓰는 목표를 만들었다.


“모든 세계가 내 안에,
무한한 가정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순간
우리는 인간이 된다.”


그 세계는 내 안에, 내가 쓴 글에 있었다. 글을 써내려 가면서 즐거웠다. 지금까지 써온 대부분의 글은 시험 답안지에 있었고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쓰는 글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글 뿐만 아니라 쓴다는 행위만으로도 나에게 큰 행복을 주었다. 어떤 일을 하면서 이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있던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나 동시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 적잖이 괴로웠다. 마치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듯이 담담하게 이 소설은 위로를 건네 주었다. 너는 특별하고 중요하며 주목할만한 존재라고.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고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만한 존재이다.”





23

‘23’은 「데미안」으로 시작해 그리기 시작한 내 모습이자 이 세상의 모든 스물셋을 위한 가사이다. 스물셋은 내게 간이역과 같았다. 간이역은 잠시 가는 길에 정차하는 곳, 멈출지 말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곳이다. 이 차에 올라야 할지 저 차에 올라야 할지 알 수 없고 많은 사람들은 그냥 지나쳐간다. 그 간이역에서 내려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조차 모르는 이십대의 중간쯤에서, 「데미안」의 구절과 함께 위로를 건네기 위해 이 세상의 모든 스물셋들을 위해 23을 썼다.


“그래도 나는 늘 어디론가 가는 중이었다.”


나는 늘 어디론가 가는 중이었을까. 시간이 흐르는 걸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보다 늘 시간이 느리게 흘렀고,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를 먹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었다고 느낄 때가 올 줄이야,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새 어른이라는 세계 앞에 있었다.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도대체 난 어디로 가려 해
풋풋한 때도 있었는데
어느새 나이 든 것 같애
 
“태어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곳이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다. 늘 타던 열차에 타는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곳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 시선은 핸드폰에 고정한 채, 이 많은 사람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일상이 낯설어진 23살의 고민은 그 낯선 관찰을 핸드폰 메모에 적으면서 깊어진다. 열차 안의 공기가 답답해 내리려는 찰나에, 완전히 무심하면서 또 그러나 냉소적인 표정으로 다른 길을 가려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열차에 내리고 나니 아무도 없었다.

문득 열차에 올라봐 많은 사람, 가는 길에 핸드폰만 쳐다봐
근데 내리는 나를 모두 쳐다봐, 뭐 큰일이라도 난 것 마냥
문득 답답해 주위를 둘러봐, 아무도 없네 내 길 앞에만
그냥 다 그런가 봐 

-

어리다고 하기엔 어색한 나이 스물셋, 그런데도 어른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나이. 이도 저도 아닌 나에게 세상은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 사실 사람들이 모두 가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 길이 어딘지도, 그 길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태어나자마자 걷는 법을 배워야하는 송아지처럼 나는 바로 어른이 되어 걸어가야만 했다.

아직 어리다고 말하기엔 벌써 내 나이는 23
벌써 어른이라 말하기엔 아직 내 나이는 23
누가 답을 알려줘요, 이대로 그냥 가면 될까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고싶은 대로 할래요

-

원피스movie_image.jpg
20년째 소년인 루피가 가끔 부럽다


‘난 해적왕이 될거야’라고 말하는 소년만화 주인공은 20년째 꿈을 이뤄가고 있다. 주인공이 강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자라났다. 아마 엔딩이 오면 그 소년은 꿈을 이룰 것이다, 소년인 채로. 그와 달리 나는 나이를 먹어 소년을 벗어났고 만화처럼 살아가는 것 자체가 꿈이었음을 알만큼 커버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면 현실의 시간은 어쨌든 흐르고 있고,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와야 할 날은 결국엔 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발길이 닿는대로 가보자고, 남들의 시선은 신경쓰지 말자고 나에게 말했다.


“불을 들여다 보게.
구름을 바라보게.
예감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묻질랑 말도록,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까 하고 말이야.”


꿈을 찾아 여기저기 떠나는 소년만화처럼
되지 않을 건 알아 물론 나도 너무 커버렸어
그래도 신경 쓰지마 네가 원하는 길로 가
시간은 흐르니까, 네 꿈이 닿는대로 가

-

영혼의 목소리를 따라, 나는 몸을 맡겼고 어쨌든 난 어른이 되고싶지 않았다(아직은). 아니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있다, ‘스물셋’이라는 시작점에서 길을 찾았고 나만의 길을 가고 있다고.

다시 열차에 올라 대체 난 어디로 갈까
여전히 많은 사람 여전히 날 쳐다봐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거야?
되고 싶지않은 거야.

-

23의 Outro는 24의 Intro가 되었고 스물셋의 기록은 끝난다.

아직 어리다고 말하기엔
벌써 어른이라 말하기엔





24

스물넷이 된 나는 스물셋을 가득 채웠던 군대를 벗어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가끔씩 그때가 떠오를 때면 「데미안」의 구절을 끄적인 노트를 바라보며 과거의 내 모습을 바라본다. 그때보다 나는 많이 변했다. 내 모습을 내가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만 봐도 정말 많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때는 ‘그냥 해보자’였다면 스물넷 중간 정도의 내 모습은 ‘어떻게 해볼까?’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언제까지 이 기록이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아직 「데미안」의 목소리에 따라 걷고 있다.





"23"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도대체 난 어디로 가려 해
풋풋한 때도 있었는데
어느새 나이 든거 같애

문득 열차에 올라봐 많은 사람, 갈길에 핸드폰만 쳐다봐
근데 내리는 나를 모두 쳐다봐, 뭐 큰일이라도 난 것 마냥
문득 답답해 주위를 둘러봐, 아무도 없네 내 길 앞에만
그냥 다 그런가 봐 

아직 어리다고 말하기엔 벌써 내 나이는 23
벌써 어른이라 말하기엔 아직 내 나이는 23
누가 답을 알려줘요, 이대로 그냥 가면 될까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대로 할래요

-

꿈을 찾아 여기저기 떠나는 소년만화처럼
되지 않을 건 알아 물론 나도 너무 커버렸어
그래도 신경쓰지마 네가 원하는 길로 가
시간은 흐르니까, 네 꿈이 닿는대로 가

아직 어리다고 말하기엔 벌써 내 나이는 23
벌써 어른이라 말하기엔 아직 내 나이는 23
누가 답을 알려줘요, 이대로 그냥 가면 될까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대로 할래요

-

다시 열차에 올라, 대체 난 어디로 갈까
여전히 많은 사람, 여전히 날 쳐다봐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거야? 
되고 싶지않은 거야.

아직 어리다고 말하기엔 벌써 내 나이는 23
벌써 어른이라 말하기엔 아직 내 나이는 23
누가 답을 알려줘요, 이대로 그냥 가면 될까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대로 할래요

(아직 어리다고 말하기엔)
(벌써 어른이라 말하기엔)

작사 민현





이미지출처 : 민음사, 네이버영화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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