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눈먼 사랑, '블라인드' [영화]

글 입력 2018.07.0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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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영화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흉측하게 비추는 거울이 하늘에서 산산조각 난다. 날카롭게 부서진 거울 조각은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장과 눈에 박힌다. 이제 사람들의 눈에 착하고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는다. 눈과 마음에 거울 조각이 박힌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흉측하고 나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의 일부분이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은 귀, 코,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빠르게 우리를 사로잡는다. 때로 눈이 만든 감각으로 지배된 우리는 사물의 진짜 모습을 지워버리고 눈으로 느낀 감각만을 믿고 편견을 만든다.


 
눈과 가슴에 거울 조각이 박힌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여자,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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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사람들의 눈이 두렵다. 마리에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거울 조각이 박힌 눈이다. 사람들은 거울 조각이 박힌 눈으로 마리의 진실을 보는 대신 모두 그녀의 흉측한 모습만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녀를 '괴물'이라 부른다. 마리는 더이상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것조차 두렵다. 그녀는 항상 긴 코트와 깊은 모자로 자신을 가린다.
 


시선에 상처 입은 마리를 치유하는 루벤의 '눈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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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을 때는 눈먼 사람들과 함께 할 때뿐이다. 그녀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안에서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후천적으로 눈을 볼 수 없는 '루벤' 앞에서 책을 읽어줄 때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모습이 된다. 루벤 역시 눈으로 그녀를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루벤은 손끝에 느껴지는 마리의 피부 감촉, 코로 들어오는 마리의 머리카락 향, 귀에 들려오는 마리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 책 넘기는 소리로 마리를 그려나간다. 루벤에게 마리는 괴물이 아니다. 모두 그녀를 괴물이라 부르며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라 하지만 루벤이 느낀 마리는 사랑받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루벤은 자신의 손끝으로 그리는 마리에게 사랑을 느낀다. 자신을 괴물이라 여기던 마리도 루벤의 사랑으로 자신을 옥죄어오던 편견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루벤의 '눈먼 사랑'으로부터 마리의 '눈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서서히 치유된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네 손끝으로 본 세상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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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은 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자신만의 세상을 마리를 통해 만들어나간다. 루벤의 손끝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선 검은 방 안에 흰 눈이 조용히 내리고, 하얀 설원에 기린이 돌아다닌다. 루벤은 마리를 사랑하면 할수록, 마리를 통해 느낀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낄수록 자신의 눈으로 진짜 세상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진다. 그러다 루벤은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눈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크게 기뻐한다. 이제 곧 루벤은 마리의 모습을 손끝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있다.

마리는 불안해진다. 눈을 뜨고 자신을 확인하게 되면 루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를 괴물이라 여기고 떠날 테니까. 마리는 루벤에게 흉측한 괴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그녀는 루벤의 손끝으로 그려진 모습으로 남기로 결심한다. 마리는 루벤을 떠난다.

 
내 사랑 루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보고 있겠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건 네 손끝으로 본 세상일 거야.

내 사랑, 나를 기억해줘.
네 손끝, 네 귓가에 남은 나를.
너로 인해 나는 놀라운 사랑을 봤어.
가장 순수한 사랑.

진실한 사랑은 보이지 않아.
영원함도 그렇고.



 
진실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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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볼 수 있지만 마리가 없는 세상을 보는 건 루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루벤은 더 진실한 것, 더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 보는 것을 포기한다. 다시 눈이 먼 루벤에게 다가온 세상은 잠시 눈을 뜨고 보았던 세상보다 아름답다. 눈을 감고 자신의 살결에 스치는 바람을, 흩날리는 꽃잎을 느낀다. 그는 손끝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는다. 때로 눈으로 보이는 것은 진짜를 가린다. 그리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된다. 진실은 가려지고, 아름다움은 사라진다. 진실한 것을 보기 위해 눈을 감고 손끝으로 사방을 더듬어본다. 시선이 지배하지 않은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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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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