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04. 웨이트리스

Hello! How have you been?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요?
글 입력 2018.05.2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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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Number)
: 작품에 수록된 개개의 음악적 분류. 
작품을 구성하는 곡 하나하나.







NUMBER 04.
웨이트리스
Wai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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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Adrienne Shelly
작사/작곡 : Sara Bareilles
극작 : Jessie Nelson
연출 : Diane Paulus
제작 : Barry & Fran Weissler,
Norton & Elayne Herrick
안무 : Chase Brock, Lorin Latoarr





2017년 1월, 뉴욕 브로드웨이 47번가에 위치한 브룩스 앳킨슨 극장(Brooks Atkinson Theatre)은 일렬로 늘어선 관객들로 인기를 자랑했다. 나 역시 사라 바렐리스(Sara Bareilles)가 작곡한 뮤지컬을 보기 위해 하우스 오픈을 기다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뮤지컬 <웨이트리스>(Waitress)는 파이를 만드는 여종업원의 이야기이다. 불행한 결혼생활 중 원치 않은 임신까지 하게 된 그녀는 뜻밖의 인연을 만나게 되고, 작품은 매력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이를 묘사한다. 잃어버린 주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해당 작품은, 주인공을 통해 지극히 보편적인 실의를 그리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웨이트리스>가 실제 원작자를 비롯해 극작가, 연출가 및 작사∙작곡가를 모두 여성으로 하는 크리에이티브 팀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홀로서기 여성의 삶을 이해하고 무대 위에 구현하는 데 있어 나름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제작진 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사라 바렐리스의 음악은 자칫하면 지나치게 우울해질 수 있는 각 설정을 상당히 경쾌하고 부드럽게 풀어낸다. 이는 기존 그녀의 음악적 특징이 드러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데, 무대에 자리한 키보드, 피아노, 첼로, 기타, 베이스 및 드럼으로 이루어진 6인조 오케스트라를 통해 작품은 서정적이고 귀에 감기는 팝(Pop)한 선율로 전개된다. 이처럼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입은 뮤지컬 <웨이트리스>는 마치 그녀를 보는 것 같이 시원시원하면서 힘 있고, 한편으로는 사랑스럽다.






#1 음악을 서빙하다,
“Opening Up”
_제나(Jenna), 베키(Becky), 던(Dawn), 칼(Cal), 일동(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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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Inside(뭐가 들었을까)”에 곧바로 이어지는 넘버인 “Opening Up”은 주인공이 일하는 파이 가게(Joe’s Pie Diner)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웨이트리스>의 시작을 알리는 첫 무대이자 작품의 배경인 가게가 하루를 시작하며 힘차게 손님맞이를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뮤지컬 무대화된다. 앞치마를 둘러맨 뒤 그릇, 컵, 포크 등을 정신없이 나르고, 종업원을 찾는 벨 소리에 맞추어 커피를 리필 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바쁜 가게 일상을 보는 듯하다. 주인공 곁에서 해당 장면에 숨을 불어 넣어주는 앙상블은 넘버 내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재치 있는 타이밍을 연출한다.

해당 넘버는 마치 책의 등장인물 및 배경을 짚어주는 페이지처럼, 가게 모습과 함께 주∙조연 캐릭터를 간략히 소개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여주인공 제나(Jenna)의 털털하되 다소 조심성 없는 모습 및 가게 주인인 칼(Cal)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긴장이 그것이다. 제나의 친구이자 직장동료인 베키(Becky)와 던(Dawn) 역시 각자의 파트에서 잊지 않고 성격을 한껏 나타내는 등, 넘버 전체가 마치 작품 전반을 크로키 한 것처럼 느껴진다.


제나(JENNA) / 베키(BECKY) / 던(DAWN)

Check the clock. Tick, tick, tock.
시계 좀 봐. 째깍째깍.


칼(CAL)

Don't stop! Serve with a smile!
움직여! 웃으면서 날라! 


제나(JENNA) / 베키(BECKY) 던(DAWN)

Hurry up, fill the coffee cup. 
And then in a while. Take a breath when you need.
To be reminded that with days like these
We can only do the best we can.

서둘러, 커피잔을 채워.
그리고 그러는 동안, 힘들면 한숨 돌려.
이런 날 하나하나 기억하려면
우리는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어.







#2 발칙한 상상을 현실로,
“Bad Idea(나쁜 생각)”
_제나(Jenna), 짐(Jim; Dr. Po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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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행사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넘버이다. 임신한 여자와 산부인과 의사라는 파격적인 조합은 일반적인 불륜보다도 무게 있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설정만 놓고 보면 거부감을 일으킬까 드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넘버가 구현되는 장면은 관객의 웃음을 몇 번이나 유발하며 몰입을 끌어낸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정성 들인 캐릭터 설정솔직한 전달이다. 주인공 제나의 남편, 얼(Earl)은 이미 불행한 결혼 생활을 증명하는 폭력적인 모습을 드러낸바 있고, 그동안 남자 주인공은 제나가 만든 파이를 찬양하는 등 엉뚱한 매력을 어필한다. 극 초반, 그녀를 안쓰럽게 느낀 경험이 주치의와의 새로운 관계를 오히려 호감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역할을 한 것은 넘버 자체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작품은 둘의 상태를 매우 자연스러운 하나의 감정으로 인식하고, 이를 안무와 함께 전개 시켰다. 아무리 머리가 “No”라고 말해도 몸과 마음은 한없이 “Yes”라고 답하는 순간을 겪어봤다면, 그들의 상황이 비현실적이라고 잡아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흔들림은 사실 참 쉽게 일어나는 일인데, 우리는 이것을 너무 진지하게 책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Bad Idea”는 온갖 복잡한 머릿속을 옮겨다 놓은 듯, 이성을 잡으려는 노력과 감정에 충실해지려는 욕구를 도발적이고도 솔직하게 보여준다. 처음엔 거리를 유지하다가 살짝 손이 맞닿고, 괜히 놀라 떨어졌다가도 참지 못하고 서로를 껴안는 둘의 떨리는 마음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장면을 무리 없이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아닌 무대인 것을 고려했을 때, 그저 인간으로서의 한 감정을 표현하는 이 장면에 엄숙한 잣대는 그리 필요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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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JENNA) / 짐(JIM; DR. POMATTER)

Heart, stop racing.
Let's face it, making mistakes like this 
will make worse what was already pretty bad.
Mind, stop running.
It's time we just let this thing go.
It was a pretty good bad idea, wasn't it though?

심장아, 그만 좀 뛰어.
솔직히, 이런 실수는
원래 별로인 걸 좀 더 나쁘게 만드는 것뿐이야.
마음아, 좀 멈춰.
이제 우리 받아들일 시간이야.
꽤 좋은 나쁜 생각이잖아. 안 그래?







#3 내게 없는 나,
“She Used to Be Mine(난 한때 그녀였어)”
_제나(J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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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곡차곡 쌓아가던 희망을 한순간에 잃고 전보다 더 깊은 좌절을 맛볼 때, 어떤 기분일까? 이 같은 괴로움 속에서, 주인공 제나는 과거를 떠올린다.

넘버는 한 여자(she)를 반복적으로 묘사한다.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아도 눈빛이 빛나던 그 사람은 과거 그녀 자신이다. 한때 나름의 강단으로 인생의 페이지를 써 내려 가던 소녀는 이제 없고, 가능성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현실을 그녀는 둘러본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놓고 괴로워한다.

곡이 표현하는 허탈함은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삶에서의 위치를 잃고 겪는 방황은 종종 우리를 찾아와 씁쓸함을 주곤 한다. 지난날과는 사뭇 달라진 자신을 살펴보았을 때 떠오르는 후회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새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이다.

폭넓은 음역을 오감과 동시에, 울부짖는 듯한 폭발적인 가창력이 돋보이는 넘버이다. 캐릭터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곡인 만큼 진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연기력 또한 요구된다. 피아노와 기타가 만드는 서정적인 선율에 얹어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호소하는 “She Used to Be Mine”은 관객이 그녀의 처지에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들기 충분한 <웨이트리스>의 대표곡이다.


제나(JENNA)

She's imperfect, but she tries.
She is good, but she lies.
She is hard on herself.
She is broken and won't ask for help.
She is messy, but she's kind.
She is lonely most of the time.
She is all of this mixed up and baked in a beautiful pie.
She is gone, but she used to be mine.

그녀는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노력해.
그녀는 착해.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그녀는 자신에게 엄격해.
그녀는 망가졌지만 도와달라고 하진 않아.
그녀는 엉망이야. 하지만 친절하지.
그녀는 거의 매일 외로워해.
그녀는 이렇게 뒤죽박죽 섞여서 아름다운 파이를 만들어.
그녀는 이제 없지만, 난 한때 그녀였어.







뮤지컬 <웨이트리스> 넘버 리스트
(2016년 브로드웨이 버전)

PART 1

1. What's Inside – Jenna and Company
2. Opening Up – Jenna, Becky, Dawn, Cal and Company
3. The Negative – Becky, Dawn and Jenna
4. What Baking Can Do – Jenna and Company
5. Club Knocked Up – Nurse Norma and Female Ensemble
6. Pomatter Pie – Band
7. When He Sees Me – Dawn, Jenna, Becky and Company
8. It Only Takes a Taste – Dr. Pomatter and Jenna
9. You Will Still Be Mine – Earl and Jenna
10. A Soft Place to Land – Jenna, Becky and Dawn
11. Never Ever Getting Rid of Me – Ogie, Dawn and Company
12. Bad Idea – Jenna, Dr. Pomatter and Company

PART 2

13. I Didn't Plan It – Becky
14. Bad Idea (Reprise) – Jenna, Dr. Pomatter, Becky, Cal, Dawn, Ogie and Company
15. You Matter to Me – Dr. Pomatter and Jenna
16. I Love You Like a Table – Ogie, Dawn and Company
17. Take It From an Old Man – Joe and Company
18. Dear Baby – Jenna
19. She Used to Be Mine – Jenna
20. Contraction Ballet – Jenna and Company
21. Everything Changes – Jenna, Becky, Dawn and Company
22. Opening Up (Finale) –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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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웨이트리스>를 관람했다면 분명 기억하고 있을 커플이 있다. 제나의 친구인 던과 그녀의 온라인 데이트 상대 오기(Ogie)는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완벽히 채워주며 최고의 궁합을 보여준다.

연애에 대한 던의 불안과 강박을 담은 “When He Sees Me(그가 나를 볼 때)”, 그리고 그런 던의 모습을 아우를 정도로 무한 긍정을 보여주며 돌진하는 오기의 “Never Ever Getting Rid of Me”(절대 날 떼어내지 못해)”는 각자를 대표하는 넘버로, 톡톡 튀는 가사와 연출이 캐릭터의 개성을 확실시한다. 재미있는 곡과 함께 이미지를 인식시키는 데 성공한 이들은 극장을 나서도 관객의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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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브룩스 앳킷슨 극장에서 1막이 끝나고 우연히 옆자리 사람과 말을 섞게 되었는데, 처음 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쉬는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웨이트리스> 사라 바렐리스의 음악만으로 결정한 선택에 비교해 더없이 즐거운 관람이었으며, 더불어 ‘브로드웨이 뜨는 뮤지컬’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기계처럼 “Hello! How have you been?”이라고 묻는 그저 상냥한 종업원이 아닌, 어제와 달라지기 위해 오늘을 힘있게 opening up 하는 주인공, 그리고 우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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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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