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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면 저마다의 공포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가든 트라우마로 남아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든 개인의 역량에 따라 공포에 대한 감각이 다를 것이다. 농장주 실린은 산다는 것 자체에 공포를 느끼고, 가브릴라는 그럼에도 산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의지임을 알고 살아간다. 이 외에도 안톤 체홉의 <공포>에서는 저마다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며 의지를 행동으로 옮긴다.

안톤 체홉의 공포는 극을 보기 전부터 난해하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무척이나 어려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지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공포>는 극을 보기 전부터 심오한 질문으로 인해 극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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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체홉이 사할린에 갔을 때 있었던 요제프 신부와의 대화 장면을 꼽고 싶다. 요제프 신부는 체홉에게 어느 죄수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죄수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범죄 현장으로부터 가까운 곳에서 동냥을 하고 있었던 탓에 용의자로 몰려 긴 시간 동안 강제 노역에 시달린 사람이었다. 그가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요제프 신부는 다음 생엔 죄를 짓지 말고 살라고 말하였는데, 그 뒤 죄수가 한 말이 강렬하게 남았다. 그 죄수는 “신부님, 다음 생에는 죄부터 짓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인간에게는 많은 가치와 목표가 있겠지만, 사할린에서 신부는 죄수들이 신 앞에 죄를 뉘우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에 대한 벌을 받은 사람에게 신이란 존재는 그저 허상이며 벌이란 자신이 운이 없던 탓에 겪은 일이었을 뿐일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삶의 덧없음과 믿음과 현실의 괴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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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공포>를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탓에 안톤 체홉의 단편선을 찾아보게 되었다. 극에서는 인물들이 헤어진 후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단편 <공포>에서는 짧게나마 그 뒷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그날 나는 페테르부르크로 떠났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는 드리트리 페트로비치와 그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 사람들 말로는 그들이 지금도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단편에서 화자는 “어째서 꼭 이런 식으로 끝나게 되었을까?”라며 자괴감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째서 안톤은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선을 넘게 되었을까? 어째서 실린은 가브릴라의 마음을 가지고 내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누구나 어떤 행동을 할 시 선택을 하기 마련이고, 그 선택이 낳은 파장의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택을 가끔 후회하고는 한다. 체홉도 어쩌면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마음에 실린과 마리가 사는 농장을 다시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도 실린과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을 들어보면 많은 괴리감과 의아함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지 않은 남자와 사는 거짓된 삶,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여자와 사는 거짓된 삶. 이 모든 게 그들에게 공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살아간다.

체홉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삶에서 작게나마 그 의미를 함께 알아보고자 하는 연극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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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최은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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