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철규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도서]

슬픔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하여
글 입력 2018.05.0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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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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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규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2017)


나는 힘들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내 슬픔을 선뜻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다. 잠이 들지 못할 만큼 나를 괴롭히던 슬픔이 누군가에게는 쉽게 펼쳤다가 쉽게 덮을 수 있는 만화책정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펼쳐 보이며 ‘슬프다’고 했을 때, 고개를 몇 번 끄덕이며 ‘힘내’라는 말로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 마무리는 누군가에겐 간편하고 누군가에겐 공허하다.

나와 타인의 슬픔을 마주하는 자세란 어떤 것일까. 신철규 시인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총 4부를 읽으면서 이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았을 때 다른 손은 빈손이 된다.
그 수많은 손금 중에
내 것과 똑같은 것이 하나는 있을 거라는 생각
당신의 손금을 손끝으로 따라가다
어디쯤에서 우리가 만났을지 가늠해본다
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자면 우리는 같은 꿈을 꾸게 될까

신철규 「생각의 위로」中


시인은 손금을 가늠하고, 서로의 머리카락을 묶어 같은 꿈을 꿔보겠다는 엉뚱하면서도 섬세한 시도로 타인의 감정을 헤아릴 준비를 한다. 섣부르게 다가가지 않고, 천천히 타인의 감정을 마주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겪으면서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눈물의 중력」中”는 공감의 시선을 건네는 법을 배워나간다.

시인은 가까운 존재에게서 조금 떨어져 서로에게 다가가는 시간을 가져보려고도 한다.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너와 나 사이에/너에게 한없이 헤엄쳐갈 수 있는 바다가/ 「소행성」中” 때로는 멀리 있을 때 감정의 크기가 증폭되는 것처럼, 너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두었다가 다시 다가가려는 시도를 통해 다양한 거리에서 감정을 바라보려는 시도를 한다.

타인의 슬픔에 눈길을 건네는 것이 때로는 어떠한 말보다 위로가 되기도 한다. 시인은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고, ‘말과 말 사이에 갇혀 걷는’ 어느 샌드위치맨에게 드리운 그늘을 포착한다. ‘경찰 버스에 올라타고 있던 사람이 굴러 떨어’지고, ‘날개 잃은 천사들이 축축한 몸을 끌고 거리로 몰려나’오는 장면을 지켜본다. 이 장면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거울을 이마로 들이받는다. 오랜 시간 동안 슬픔을 지켜보면서, 시인은 그저 지켜만 보는 자신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이로써 시인은 타인의 슬픔을 연대하는 자세를 갖춘다.

지켜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시인은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슬픔을 연대하려는 시도를 한다. “우리는 거울 속의 서로를 보고 좀더 뜨거워졌다/…우리는 얼마나 서로의 체위를 바꾸고 싶었던 걸까 「구급차가 구급차를」中” 서로의 체위를 바꾸고, 서로의 입장을 체험하려는 시도를 통해 타인의 슬픔을 왜곡 없이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는 곧 2부의 제목처럼 타인과 나의 감정을 ‘혼혈’하는 것이다. “벚꽃을 머리에 이고 놀이공원 정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입구를 노려본다/저 너머가 천국인지 지옥인지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中”처럼, 시인은 타인의 슬픔을 곧 자신의 슬픔으로 받아들이려는 시도를 통해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 누군가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풍경을 본다. 이때, 타인의 슬픔은 단지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슬픔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3부와 4부에는 슬픔의 형태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것은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시들이다.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슬픔이 한쪽으로 치우쳐 이 세계는 비틀거렸다
 
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그것이 일반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 알 수 없어 포기했다
기도를 하던 두 손엔 검은 물이 가득 고였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고 할수록 몸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딱딱해지고 있었다
 
해변에 맨발로 서 있던 유가족
맨살로 닿을 수 없는 거리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죽을 때까지 악몽을 꾸어야 하는 사람들의 뒷모습
학살은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꾸는 악몽 같은 것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피가 돌지 않고
눈이 심장과 바로 연결된 것처럼 쿵쾅거렸다
 
모든 것이 가만히 있는 곳이 지옥이다
꽃도 나무도 시들지 않고 살아 있는 곳
별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멈춰서 못처럼 박혀 있는 곳
죽은 마음, 죽은 손가락, 죽은 눈동자
 
위로받아야 할 사람과 위로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기도밖에 없는 것인가
 
우리는 떠올라야 한다
우리는 기어올라야 한다
누구도 우리를 끌어올리지 않는다
 
가을이 멀었는데 온통 국화다
가을이 지난 지가 언젠데 국화 향이 이 세계를 덮고 있다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힌다
꿈속에서도 공기가 희박했다
 
해변은 제단이 되었다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 있었다

신철규 「검은 방」中


시인은 당시 상황으로 들어가 그곳에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옥같은 것인지를 천천히 느낀다. 모든 것이 죽어가는 공포를 직접 체험한다. 그리고 시로써 슬픔을 기록한다.

이처럼 시인이 슬픔을 마주하는 자세를 통해, 개인을 짓누르는 슬픔과 우리 모두에게로 번져온 슬픔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손금을 마주하며 타인과 나의 결을 맞추고, 타인의 슬픔에게로 시선을 돌려 그곳에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내 시선에 들어온 슬픔이 단지 타인의 슬픔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이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우리는 기꺼이 타인의 슬픔을 맞이할 수 있다. 슬픔을 맞이하는 자세란, 이토록 섬세한 시선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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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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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김하늘
    • 글이 너무 좋네요. 슬픔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정말 좋았어요... 글 읽고 나니 이 시집을 당장 사서 읽고 싶어졌어요.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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