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내일 일은 난 몰라요 : 연극 < 하이젠버그 >

글 입력 2018.05.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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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당신

 
가끔 2G폰 메모장에 담아 보던 인터넷 소설이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오해하진 마시라. 지금 보라고 권한다면 그것도 고역일 터이니. 발랄한 이모티콘과 말도 안 되는 설정이 난무했던 2000년대 그때 그 텍스트. ‘인소’의 대표적인 클리셰는 다음과 같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허세와 자기연민에 절여진 두 남자의 대화는 대략 이렇다. 사랑의 아픔으로 인해 스스로 일상을 망가뜨린 남자주인공을 향해 주인공 친구가 말한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 그럼 우리의 탕아 같은 남자 주인공은 묵직한 어조로 한 마디 툭 던진다. “나 다운 게 뭔데?” 유사품으론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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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클리셰는 남자주인공의 ‘멋진 망가짐’을 위해 고안된 거다. 그 멋짐이 이젠 오글거린다며 독자의 비웃음을 사지만 말이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너답지 않게 왜 이래?"란 질문엔 이보다 더 적절한 대답이 없더라. 유치뽕짝한 상황과 손발을 말아주는 허세는 잠시 제쳐 두고 보자. 누군가 내게 ‘너답지 않게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면, 상대에게 ‘너, 나 알아?’라던가 ‘네가 생각하는 나는 누군데?’라고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도 마찬가지. 나조차 나를 가늠할 수 없는데 내가 남을 안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타인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심해(深海)이며, 우린 종종 그 심해 속에서 허우적거리거나, 물가에 선 채 깊이를 알 것 같다며 잘난 체하기 바쁘다.
 
그럼 남이란 영원히 요원한 존재일까.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곳일까. 이야기의 힘이 여기서 발휘된다. 이야기는 심해에 다가서는 탐침이요, 타인의 바닷속에서 숨을 쉬게 해줄 산소마스크다. 사형수의 일기에 눈물을 흘리고 살인자의 기억을 좇고 고아의 성장담을 응원하며, 우리는 우리 인식의 외연을 확장한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리완 다른 결의 인물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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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야기가 관계를 서사화한다면 예상치는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개인들이 등장할 거다. 서로 다른 인물은 서로 다른 속성 때문에 사랑에 빠지던가, 갈등하던가, 행복해지던가, 파국을 맞던가 하겠지. 연극 <하이젠버그> 역시 이해하기 힘든 두 개인의 만남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서로가 보기에도 관객이 보기에도 가늠하기 힘든 상대다. 두 사람도 내일도 예측할 수 없긴 매한가지다.
 
 
 
수다스러운 미국 여자와 엉엉 우는 영국 남자


이 관계 서사의 종착지는 희망이다. <하이젠버그>는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시작해 막연한 희망으로 나아간다. 두 사람의 관계 속엔 커다란 사건이나 역사적 소용돌이가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두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고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결과로 나아가느냐다. <하이젠버그>의 포석은 익숙하다. 거의 양극단에 있는 두 개인을 불러와 우연한 만남을 만들고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 색다른 맛은 없지만 그렇다고 진부하진 않다. 익숙함 속 섬세함들이 <하이젠버그>의 다른 우주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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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 죠지와 알렉스의 설정부터 살펴보자. 그들이 지닌 성질은 거의 정반대의 것들이다. 40대 여성 죠지는 미국 사람인 반면, 70대 남성 알렉스는 영국 사람이다. 죠지는 쉴 새 없이 재잘댄다. 욕도 맛깔나게 한다. 반면, 알렉스는 경직된 사람이다. 울음 장애를 가지고 있어 갑자기 엉엉 울기도 한다. 죠지는 자유분방한 사람이다. 거침없이 움직인다. 반면, 알렉스는 루틴에 맞춰 사는 사람이다. 매주 60파운드씩만 은행에서 뽑는다. 이처럼 양극단에 있는 두 사람은 우연한 사고로 만나게 된다. 죠지가 알렉스의 뒷덜미에 키스하자 접점 없던 두 사람에게 급작스러운 접점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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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불협화음도 이런 불협화음이 없다. 당연히 두 사람의 대화는 ‘아-어-이-다’가 맞지 않는다. 한 사람이 뭘 말하면 한 사람은 또 다른 소리를 해댄다. 상대에 관해 묻기 바쁘다가 다시 자기 얘기를 펼쳐 놓는다. 이 불협화음은 캐릭터의 성격 탓인가? 싶을 때, 극작은 알렉스의 입을 빌려 성격의 문제는 아니라고 못 박는다. 한 사람은 여러 가지 행동들이 합쳐져 만드는 것이라고, 늘 바뀔 수 있는 것이니 무의미하다고 말이다. 그렇담 두 인물은 백지상태다. 그런 인생을 살아왔던 그런 알렉스가 있을 뿐이고, 이런 인생을 살아와서 이런 죠지가 있을 뿐인 거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단어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두 개인은 서로의 인생사를 듣고 상대의 결여를 느끼며 함께 성장해나간다. 두 사람의 성격처럼, 두 사람 앞에 닥칠 사건들도, 두 사람의 미래도 불확정적이다. 알렉스가 죽을 수도 있고 죠지가 떠날 수도 있음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현재라는 한 점에서 ‘기꺼이’ 함께 탱고를 춘다. 살날이 얼마 남았을지도 모르고 헤어질 가능성도 있지만, 기꺼이 왼발 한 번, 오른발 한 번을 뗀다. 내일 일은 모르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지레 겁먹지 않고 오늘을 사는 것. 그래서 기대되는 내일. <하이젠버그>가 말하는 인간사 불확정성의 원리다. 타인의 심해도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인생사도 기대할 수 있는 삶. 그곳엔 막연한 낭만과 희망이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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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낭만적인 서사는 군더더기 없이 펼쳐진다. 지나친 의미부여로 뜬구름 잡는 소리만 했다면 이 작품의 품위는 산뜻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반된 남녀의 만남이라는 구성을 뻔하지 않게 만드는 건 간결한 대사의 힘이다. “내 남자친구 할래요?” “당신은 예측하기 쉬운 사람이에요.” 등과 같이 대사는 과하지 않고 묵직하지 않게 전달된다. 산뜻하다. 잔뜩 힘이 들어간 대사 없이 툭툭 던지고 툭툭 받는 대화의 흐름은 이 작품의 가장 큰 힘이다. 어긋나는 초반부 대사 흐름으로 인해, 관객의 집중이 흐려질 가능성은 왕왕 있지만, 그들의 담화를 따라가다 보면 간결한 대사들이 곳곳에서 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무대도 다소 심심한 편. 지도와 수식이 잔뜩 쓰여 있는 바닥과 배우들이 움직이는 벤치와 테이블 역시 딱 필요한 정도로만 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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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은 건 객석이다. 사선의 좁은 무대를 스테이지석이 감싸고 있는 형태인데, 죠지와 알렉스의 모습을 약 세 방향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관객이 어느 곳에 앉느냐에 따라 볼 수 있는 모습이 달라지는 거다. 센세이셔널한 무대 사용은 아니지만, 이 역시 작품의 메시지와 맥을 같이 하며 상징을 만든다. 죠지가 알렉스를, 알렉스가 죠지를 완벽히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관객 역시 죠지와 알렉스란 캐릭터의 모든 모습을 알 순 없다. 때로는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볼 테고 때로는 울고 있는 옆모습을 응시할 테다. 가끔 전사를 만들고 스토리를 짜는 작가보다 작품을 사랑하는 마니아들이 캐릭터를 더 잘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지만, 이 작품은 그것도 어렵다. 객석에서 파악하는 죠지와 알렉스 역시 작은 행동이 만든 모습일 뿐, 완벽히 그들을 설명할 순 없는 것이다.

 
 
만나볼 만한 텍스트의 힘

 
‘불명확한 것’들로 작품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을 터. 작품의 가장 큰 힘은 텍스트가 안고 있다. 새로운 시선이나 독특한 연출은 없다. 오히려 정형화된 연극이라고 느껴지기 쉽다. 거기에 텍스트의 손을 놓쳐버리면 지루함에 몸이 배배 꼬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람을 만날 때 ‘충실한 기본’만큼 필요한 게 또 없으니, 불확정성의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면 기차역에서의 만남은 꽤나 진진할 것이다. 작품이 어떨지 모르니, 죠지가 알렉스가 어떤 캐릭터일지 모르니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떨까. 지루할지 아니면 감동적일지는 역시 예측 불가능하지만 이 불확정적인 삶엔 기대를 걸만한 낭만과 희망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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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도 모를 내일도 ‘기꺼이’ 사랑할 수 있길. 나다운 게 뭔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남의 심해에서 허우적거리기 바쁜. 우리 존재, 부디 건승.



공연정보




INTRODUCTION


공연명
연극 <하이젠버그>

공연 기간
2018년 4월 24일(화) - 5월 20일(일)

티켓 가격
R석 50,000원
S석 35,000원

공연 시간
화-금요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3시, 6시
일요일 오후 4시

공연 장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관람 등급 중학생 이상 관람가

주최/ 제작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홍보/ 마케팅
리앤홍 인터내셔날
070-8795-6767


CREATIVE STAFFS
 
작가 사이먼 스티븐스

연출 김민정
 
프로듀서
박용호, 석재원

출연
알렉스 프리스트역(Alex Priest)- 정동환
죠지 번스역(George Burns)- 방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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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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