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분석하기 [도서]

우리 모두는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글 입력 2018.04.29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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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뮤엘 베게트(Samuel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이다. 부조리극이란 세계 1차 2차 전쟁 이후, 파괴와 무질서와 혼란만이 가득한 상황에서 생긴 연극사조이다. 이러한 부조리극의 주제는 보통 ‘불합리 속에서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러한 부조리극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와 유사한 주제를 보이고 있다. 이 희곡의 모든 인물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지니고 있지 않다. 바로 어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명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은 이런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전체적인 내용은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에 의해 전개된다. 디디와 고고는 나무 한 그루만이 있는 시골길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며, 그 끊임 없고 기약 없는 기다림의 과정에서 둘은 나름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러던 중 포조와 럭키를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결국, ‘고도를 기다리며’의 내용은 무엇인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고고와 디디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극의 전반에서 반복되는 아래의 ‘고고와 디디 사이의 대화’는 극의 내용을 잘 보여준다.

“우리 가세.”
“갈 수 없네!”
“왜 못 가나?”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네.”
“아, 맞다. 아, 우리는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할까!”

 이러한 둘의 대화를 보면, 현재의 시간을 메우고 고도를 만나기 전까지 견뎌내는 일이 고고와 디디의 숙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극의 내용을 이끌어가는 고고와 디디라는 인물은 과연 어떠한 인물들일까? 둘 외의 등장인물들은 또 어떠한 인물들일까? 우선, 고고는 상대적으로 감정적인 인물이다. 그는 가난하고 배고픔을 그대로 표출시키며, 포조의 고기뼈를 받아먹는 것에 있어서 망설이지 않고 행동한다. 이에 비해 디디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는 고고가 고기뼈를 먹는 모습에 대해 다소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많은 말을 한다. 디디만이 1막의 내용(어제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그의 이성적인 모습을 보다 부각시켜준다.

 이러한 고고와 디디가 고도를 기다리는 중에, 이 둘을 스쳐가는 인물들이 있다. 바로 포조와 럭키이다. 포조는 럭키를 끌고 다니며, 모든 것을 포조에게 시킨다. 즉 포조의 지배자인 것이다. 그는 고고와 디디와 함께 시간을 잠시 보내고 떠난다. 그리고 나서 2막에서 그는 장님이 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언제 어떻게 장님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또다시 인물의 정체성 혼란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그가 장님이 되었던지 간에, 장님이 된 포조는 1막에서와 달리 럭키에게 매우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1막에서는 명령을 내리고 지배하는 모습이었다면, 2막에서는 럭키가 없으면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그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포조가 어떠한 모습으로 럭키를 대하였던지 간에, 그와 럭키 사이의 끈은 여전하다.

 고고, 디디, 포조, 럭키 외에 극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로는 소년이 있다. 소년은 ‘고도’의 말을 전하는 심부름을 하는 인물이다. 소년은 1막에 이어 2막에서도 ‘고도’의 말을 고고와 디디에게 전하러 오지만, 그는 1막의 일(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불행하니?’라는 디디의 물음에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소년의 모습 또한 정체성의 혼란을 보여준다.

 극을 읽다 보면 이 극 속에서 확실한 것은 어느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고도가 누구인지, 각 인물들이 명확히 어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오직 하나 확실한 것은, 고고와 디디가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디디의 아래와 같은 대사는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야.
그리고 우리는 그 대답을 알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축복을 받은 거야.
이 무서운 혼란 가운데서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네.
우리는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결국, 그들에게 확실한 것은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뿐이다. 불확실함은 인간에게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것을 알기에 디디는 “우리는 그 대답을 알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축복을 받은 거야. 이 무서운 혼란 가운데서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네. 우리는 고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럭키라는 인물의 이름이 왜 Lucky인지도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Lucky는 행운을 지녔다는 의미이다. 포조가 시키는 일을 하는 럭키의 모습은 그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물리적인 끈으로 포조에게 묶여있는 럭키의 모습은 그가 어디에 묶여 있는지를 확실이 보여준다. 고고와 디디도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고도’에 묶여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들이 묶여있는 ‘고도’는 럭키가 묶여있는 포조와 달리 모호하고 확실하지 않다. 이처럼 럭키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확실함’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행운을 지닌(lucky)’ 인물일지도 모른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고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어쩌면 ‘고도’는 애초부터 어떤 것인지 정해지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베게트는 “내가 고도가 누구인지 알았으면 작품에서 밝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보면 그는 고도라는 것 자체를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쓴 것으로 보인다. ‘고도의 정체’와 함께 극에서 크게 드러나는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고도를 ‘무엇을 하며’, ‘어떻게’ 기다리느냐’이다. 결국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가 내게 제시한 문제는 1. 기다림의 대상인 ‘고도’는 무엇인가? 2. 정체가 불확실한 고도를 어떻게 기다리느냐?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문제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다리며, 각자 어떤 것들을 하면서 그것을 기다린다. ‘기다림의 대상’을 ‘목표’라고 생각해보자. 우리 각자는 항상 크고 작은 목표들을 설정하고 이에 도달하기 위해, 즉 목표를 만나기 위해 ‘여러 가지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 여러 가지 것들은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목표에 다가가는 데에 아무 의미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각자가 기다리고 있는 ‘목표’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는 것들’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고도’를 지니고 늘 그것을 ‘기다리며’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기다릴 것이 없는 삶은 공허한 삶이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고도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내가 향해야 할 곳 조차도 불확실하다면  방향성을 잃어 방황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소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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