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흑인 인권의 역사 이야기, 영화 'Butler(버틀러): 대통령의 집사' [영화]

글 입력 2018.04.2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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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개봉한 영화 'Butler'는 Cecil Gaines라는 한 흑인의 일생을 통해 본 '흑인 인권의 역사' 이야기이다. Cecil은 미국 남부지방에 사는 두 흑인 노예 부부 사이에 태어난 남자아이였다. 그와 그의 부모는 모두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목화를 따며 지내는 흑인 노예였다. 이런 Cecil은 어린 시절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Cecil은 그의 어머니가 백인 주인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또 이에 발끈한 그의 아버지가 백인 주인에게 총살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이로 인해 Cecil의 깊은 내면에는 '백인에게 반항하면 죽는다'는 트라우마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Cecil은 자신의 고향에서 도망쳐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는 워싱턴의 백악관에서 Butler로서 일을 하게 된다. 이 일을 하면서 그는 그의 집을 가지게 되었고 사랑하는 아내 Gloria Gaines, 그리고 두 아들 Louis Gaines와 Charles Gaines과 함께 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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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정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Cecil과 그의 큰아들 Louis 사이의 갈등이다. 이 둘의 갈등은 평범한 사춘기 소년과 아버지 사이의 갈등과는 좀 다르다. 둘의 갈등은 '신념과 가치관'의 갈등이라고 볼 수도 있다. Cecil은 '본인과 가족을 위해서 백인을 위하는 일(Butler)을 한다'고 말한다. 즉, 백인에게 복종하고 그들의 필요를 잘 눈치채어 그것에 맞춰주는 것이 곧 그의 가족들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Louis의 생각은 이런 Cecil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Louis는 흑인인 본인 또한 미국의 국민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며, 미국의 한 국민으로서 '흑인 인권 운동'에 참여했다. 결국, Cecil의 가치관은 '백인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Louis의 가치관은 '우리 흑인들 또한 미국 국민이라는 것'을 바탕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런 Cecil과 Louis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어 서로 만나지도 않게 된다.

그러던 중, Cecil은 흑인에 대한 평등 사상을 지녔던 John .F .Kennedy 대통령의 암살 사건을 통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여러 대통령들을 Butler로서 모시면서 점점 흑인 인권의 현실을 보게 된다. 흑인 인권 문제가 더 이상 못 본 척, 못 들은 척 하기에 너무 끔찍하고 심각해진 것이다. 흑인 인권 문제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었던, 아니 어쩌면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다가올 결과가 두려워 그를 보지 않으려 했던 Cecil도 결국은 '흑인 인권의 현실'을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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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Cecil의 변화는 그의 태도 변화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Cecil은 Butler로서 백악관의 사람들이 흑인에 대한 어떠한 얘기를 해도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처럼 행동해왔다. 마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는 점점 이런 얘기들을 무시하기 힘들어졌다. 점점 못 본 척, 그리고 못 들은 척 하기도 힘들어진 것이다. 이런 그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Butler로서의 정체성은 잃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Cecil이 이를 통해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한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얻게 된 것 같다. 더 이상 '없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된 Cecil은 Butler 일을 그만두고, 흑인 인권 운동을 하고 있는 Louis를 찾아간다. 아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던 그가 드디어 아들과 같은 세계에서 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Cecil의 일생을 통해 '흑인의 정체성 변화' 또한 볼 수 있게 된다. Cecil의 정체성은 '백인들에게 저항하지 않아야만 안전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수동적인 정체성에서 '미국 국민으로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 국민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적극적인 정체성으로 변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형성된 백인에 대한 두려움에 묶여, 백인을 위한 일만이 그의 생존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흑인 인권 문제의 현실에 눈을 뜨고 이에 한 흑인으로서 주체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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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흑인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했던 때가 생각보다 옛날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사람의 일생으로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흑인 인권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와 흑인 인권이 보장받기 시작한 시기 사이의 간격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 역사적으로 봐도, 흑인들이 노예에서 해방된 것은 미국 남북전쟁 1865년 이후부터이지만 이들이 백인과 동등한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참정권을 가지게 된 시기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무렵부터이다. 이를 보면 흑인들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 지는 약 50년 정도밖에 안된 것이다. 멀지 않은 과거에 흑인 인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느끼게 되니,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있었을 때 한 흑인 친구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작년 11월에 있었던 미국 대선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던 Donarld Trump가 당선되자, 많은 흑인 친구들과 멕시칸 친구들이 슬퍼했다. 그 중 한 흑인 친구는 지금 이 상황이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이 무섭다고 했다. Trump가 대통령으로 뽑혔다는 것은 그를 뽑아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인데, 이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사람'을 뽑아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를 뽑은 사람들 중에도 물론,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은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을 크게 문제삼지 않았으니 그를 뽑아준 것이다. 친구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무섭다고 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있었던 문제이기 때문에, 다시 그 문제가 반복될까 무서운 것이다. 한국에 살면서 인종차별이란 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기회가 적었던 나로서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역사이야기로만 흑인 인권 문제를 들었던 나한테 흑인 인권 문제는 '완료'된 문제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그 친구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니, 흑인 인권 문제가 글로만 남아있는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흑인 인권의 역사 이야기는 흑인들의 문제, 인종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는 결국 크게 보면, '약자들의 인권'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 약자는 여성이 될 수도 있고, 신체적으로 불편한 곳이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조직 내의 말단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또 동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든 약자 혹은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영화 '버틀러'를 통해 '약자들의 인권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고,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윤소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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