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을 여행하는 모든 순간이 아름다워라 [공연]

글 입력 2018.04.0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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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시'. 거처를 두지 않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비유해서 이르는 표현이기도 하다. 방랑하는 자들은 그렇게 이 세계에서 구분되고 특정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방랑한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움을 탐색해나가는 인간 모두는 방랑자이다. 한 명의 집시로서,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끝없이 부닥치고 유랑하는 집시들을 초대한 저녁 식사에 다녀왔다. 공연, 하림과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의 [집시의 테이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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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시음악은 8세기 북인도의 집시들로부터 시작해 유럽 각지에 널리 퍼지며 하나의 문화예술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집시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집시음악은 다소 생소하게 받아들여진다. 대중적이지 않은 비주류 장르이기에 집시음악이라고 하면 대부분 요란하고 빠른 길거리 음악을 단순하게 연상한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시음악에 관한 정보를 이번에 처음 접했고, 사전지식은 거의 전무했다. 그래서 더욱 이끌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낯선 나라에 처음 발을 디딜 때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크기가 매우 작은 소규모 공연장이었다. 관객석과 무대는 분리되지 않았고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공연자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대에는 자그마한 테이블과 음식 모형들이 놓여 있었다. 하림과 아티스트들이 삼삼오오 모여 집시음악을 시작했다는 그곳, 카페 ‘물고기’가 떠올랐다. 이곳엔 관객과 아티스트를 구분하고 관객은 가만히 앉아 아티스트의 무대를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격식이 일절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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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시간이 되자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하림과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가 나와 무대에서 악기를 튜닝하고(무대에서의 격식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가운데 가면을 쓴 마임이스트가 맨발로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튜닝을 다 마친 연주진은 하나하나 자신의 소리를 쌓으며 여행의 시작을 알리고, 마임이스트는 자유를 갈망하는 듯한 몸짓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하림은 유럽의 민속악기 드렐라이어와 함께 두 목소리를 동시에 내는 배음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며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한다. 낯설지만 묘하게 이끌리는 여행으로의 첫 발걸음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결을 여행하는 ‘연어의 노래’를 첫 곡으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왜 떠나야만 하나
 
맨 처음 만난 바다는
날 꿈을 꾸게 하였고
돌아와 만난 강물은
날 편히 쉬게 하네

- 하림, 연어의 노래 中 -

 


여행


 여행을 테마로 진행되는 공연은 집을 떠나 프랑스, 그리스, 아일랜드를 여행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처음으로 발을 디디는 곳은 1930년대 프랑스이다. 파리의 정경을 연상케 하는 경쾌하면서도 부드러운 집시 스윙은 낯섦이 가득했던 첫 시작의 긴장을 풀어주며 정겹게 관객을 맞이하고, 집시 음악이 익숙지 않았던 관객들은 점점 경계를 허물고 여행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프랑스 여행이 끝나면 그리스로 간다. 느릿느릿하고 이국적인 음악에서는 지중해의 여유가 느껴지고 관객은 여행에 완전히 적응한 듯 아티스트와 소통한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아일랜드에 도착하면 모든 격식을 내던지고 몸을 들썩이게 하는 신나는 음악이 이어진다. 다 같은 집시 음악이라도 지역마다 상이하게 다른 분위기를 내는 것이다. 마치 여행 가이드와도 같은 하림은 드렐라이어, 아코디언, 부주키, 틴 휘슬 등 다양한 민속 악기들을 여행지를 옮길 때마다 바꿔 연주하면서 그 지역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온다.

 지역의 상징적인 분위기뿐 아니라 여행 그 자체를 재현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관광 명소가 아닌, 그 지역 골목골목을 드나드는 여행이다. 이는 각 지역의 공기를 그대로 흡수하고 그들의 고유한 예술성을 만들어내는 집시들의 음악을 표현의 방식으로 사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또한, 아일랜드 테마가 끝나면 여행 도중 느껴지는 익숙함 속 권태와 모국에 대한 향수를 재현하는 테마가 잠시 이어진다. 장소뿐 아니라 여행에서 만나는 사랑과 권태의 순간까지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관객이 실제로 여행하는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행의 분위기는 음악과 더불어 춤과 마임, 콩트 등의 종합 예술을 통해 다채롭게 표현된다. 공연 내내 여행자 역할을 맡아 여행 과정을 연기하는 마임이스트와 아일랜드 집시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아이리시 댄서, 집시 스윙 댄서들은 춤을 통해 흥을 돋우고 각지의 분위기를 살린다. 이들의 춤은 격식을 무너뜨리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관객이 나와 춤을 배우고 아티스트와 함께 춤을 추기도 하는 등 관객과의 소통의 수단이 되기도 했지만, 그들의 역동적인 에너지 그 자체가 공연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은 그 어떤 걱정도 존재하지 않는 방랑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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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임과 연기의 형식으로 공연 중 소소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도 공연의 재미를 배가한다. 여행자 역할의 마임이스트는 자유를 열망하다 불현듯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것에 낯설어하다, 익숙함에 젖어 권태를 느끼기도 하고, 현지인과 사랑에 빠지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에 웃음을 터트리기도, 그에게 몰입하여 그를 걱정하기도 한다. 춤과 마임과 이야기 그리고 음악이 모두 어우러져 공존하는 집시 예술의 총체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집시음악의 매력은 관객들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관객


 언급했듯이, 관객과 아티스트 간의 엄격한 구분은 이 여행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즉, 관객이 곧 아티스트가 된다. 공연장의 작은 규모 탓에 모든 관객의 소리가 다 들리는데, 그러한 연유로 관객은 음악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관객의 추임새는 악기가 되고 그들의 박수는 박자가 되어 음악에 흥을 더해준다. 또한, 술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함께한다. 이 여행에 참여한 이상, 아티스트와 관객은 그 구분에 얽매이지 않으며 모두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여행을 꿈꾸는 집시가 되는 것이다.
 


OPINION


 공연은 긴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평범한 일상의 특별함을 되새기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것으로 끝난다. 1시간 반이 조금 안 되는 러닝 타임 동안 신기하게도 아티스트와 또 관객들과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공연에 집중하기 위해 호응을 크게 하지 않는 편인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고 깔깔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치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여행자들과 함께 놀고 온 것처럼 공연을 회고하는 지금도 그 순간이 그립다. 이렇듯 방랑 중에서 만난 우연은 어떤 것도 그와 같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기억의 한 자락이 된다.

 집시음악은 단순히 ‘집시들이 하는 음악’으로 정의되기엔 그것이 내포하는 것들이 많다. 집시들은 정해진 거처가 없는데도 이 공연이 지역으로 테마를 나눈 것은, 어떤 곳을 가면 그곳의 집시로 자연히 스며드는 그들의 특성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집시들의 정서는 단일하지 않다. 그들은 집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방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는 곳곳마다 그들 고유의 뿌리를 내리며 장소와 예술적으로 조우하고 특색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주체적인 유랑을 즐긴다. 목적지가 없어도, 길을 잃어도, 그 모든 발자국은 음악이 되고 예술이 되고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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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랑을 싫어하는 세상이다.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면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길은 많고 오히려 다른 곳에 더 예쁜 풍경이 있을지도 모른다. 집시들의 예술은 세상을 유랑하는 모든 순간이 모두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길 바깥을 걷는 이들의 음악은 삶이라는 여행을 그대로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여행’이라는 소재로 탁월하게 비추인 이 공연을 관람한 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집시가 되어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여정은 그것이 목적지와 얼마나 가까운지와 상관없이 충분히 매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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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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