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워너원 논란으로 본 아이돌 팬으로 살아남기 [문화 전반]

팬은 가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것이 설령 판타지일지라도.
글 입력 2018.03.24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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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워너원 논란으로 본
아이돌 팬으로 살아남기
팬은 가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다.
그것이 설령 판타지일지라도.

 
며칠 전 일이다. 대세 그룹 워너원(Wanna One)은 컴백을 앞둔 인터넷 생방송 이전, 알 수 없는 원인으로 1분 여간 마이크가 켜져 방송이 나가는 줄 알지 못한 채 전파를 탔다. 방송 이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멤버들은 상당히 들떠 있었고, 방송 이전이라는 맥락과는 어울리지 않는 대화가 오갔다. 영상보다는 녹취본이라고 칭해지는 텍스트가 이미지로 더 많이 회자되었으며 심지어 화면에 잡히지 않은 멤버들의 얼굴이 확정적인 것처럼 편집되어 영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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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팬들은 실망하며 워너원을 질책했고, 일부 팬들은 사실이 아니라며 각종 해석을 내놓았다. 특히나 가장 논란이 되었던 욕설 의심 부분과 성적 발언 의심 부분은 기계음, 대따해라, 대답해라 등의 해석이 나왔고 심지어 중국집 이름이라는(중국집 이름은 ㅁㅁ각 이라는 이름이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 주장도 나왔다. 터무니 없어 보이는 주장에 여론은 팬들을 외면했고 '쉴드(방패, 스타를 옹호하는 것)치는 빠순이'라며 비난했다.

워너원의 소속사는 팬카페에 빠르게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무엇을, 어떤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지 알 수 없는 사과문은 오히려 여론의 반발을 샀고 팬들의 신뢰를 잃었다. 소속사가 나서서 논란을 진화하리라는 기대를 버린 것이다. 이에 팬들은 '내가수 직접 구하기'에 나섰다.

중심이 된 것은 하성운의 팬들이다. 하성운은 문제가 된 욕설 부분에 대해서 의심받고 있었다. 팬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디지털 포렌식(법의학) 감정 경력의 소장이 운영하는 디지털과학수사연구소에 해당 영상의 음성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욕설은 기계음으로, 성적 발언은 '대따해라' 혹은 '대답해라'로 판단된다는 분석 결과가 발표되었다.

여론은 상당수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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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들은 항상 멸시의 대상이 되어 왔다. 같은 아이돌 팬 사이에서도 좋아하는 가수, 팬덤에 따라서 서로를 싫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아이돌 팬이 아닌 경우 '빠순이', '빠돌이'로 무시되어 왔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린다며 답도 없는 빠순이 취급을 받았다. 대부분 이 경우 팬들은 여론에 압도당하여 화력이 죽거나, 열심히 댓글을 달며 논란을 종식시키려 머릿수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르다. 팬들은 직접 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했고 여론을 뒤집었다. (여전히 분석 결과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하성운 팬들은 다른 기관에 다시 분석을 의뢰했다.) 부정적이었던 기사들은 뒤집혔고 논란은 거의 종결되는 듯 보인다.

이제 팬은 단순히 뒤에서 응원만 하는 존재를 뛰어넘었다. 애초에 워너원이라는 그룹이 생성된 것도 팬들의 힘이었다. 팬들은 연습생을 가수로 만들었고, 원활한 가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워너원 팬들은 공식 팬클럽명 '워너블' 이외에도 각자 응원하는 멤버에 따라 'ㅇㅇ맘'이라고 불린다. 하성운 논란 종결의 힘을 보면 이 별명을 백분 이해할 수 있다.





해당 방송의 워너원에 대한 비판을 점검하자면 대부분은 터무니없다.

뽑힌 아이돌이라고 해서 정산과 힘든 생활에 대해서 불평할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의 댓가에 대해서 정당한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정당한 노동자의 처우가 아니다. 워너원은 활동 반경 제약, 과도한 스케줄 등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팬들의 지적을 받고 있었다. 이에 대해 불평을 했다고 해서 '너희는 뽑힌 아이돌이니 불평을 해서는 안돼!'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자꾸만 집 밑에서 대기하는 사생팬의 차량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도 방송에 나가지 않을 내용이라면 가능하다.

워너원의 영상에 따라오는 것은 이성적 비판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실망이다. 이는 워너원으로 증명되었을 뿐 모든 아이돌에게 적용된다. 팬은 나의 아이돌이 무언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워너원은 24시간 돌아가는 카메라 속에서 리얼리티를 진행하고 그 속에서 뽑힌 아이돌이며, 이후에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팬들에게 공개한 바 있다. 팬들은 'ㅇㅇㅇ 현실 말투' 등 아이돌이 카메라를 의식하고 보여주는 것과 다른 모습들을 찾아내고 열광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영상에서 보면, 그들은 영락없는 10대 후반 - 20대 초반 남성이다. 학급 친구 혹은 대학 동기라고 생각해보면 잠깐동안 반쯤 진심이 담긴 한심함의 눈길을 보내며 '으유..'하겠지만 이내 웃어넘길 것이다. 맥락과는 어긋나는 '나 오늘 아침에 똥쌌다!' 혹은 '내 전화번호 뿌린다 전화해라' 등은 그냥 그 또래 남자아이들이 장난치며 할 수 있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나의 아이돌은 조금 다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힘든 연습생 생활을 거치며 꿈의 간절함에 따라 성숙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전형적인 또래 남자들과는 다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래 남자아이같은 순간들을 좋아하면서도 나의 아이돌은 다르리라는 모순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이 모든 과정은 내가 겪은 사고 과정이다.





팬들은 아이돌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보고, 잠깐의 귀여운 이면을 보며 환상을 이어나간다. 설령 그것이 판타지일지언정 그들이 판타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보고 감동하며, 그들이 이뤄내는 멋진 무대와 노래에 마음이 동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기만인가. 스타가 모든 면을 보여주지 않고 좋은 면만을 보여주는 것이 완전히 팬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어차피 사람들은 서로에게 좋은 면만 보여주고 싶어한다. 스타라고 해서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 뒤에서 법 혹은 일반적 윤리에 어긋나는 일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팬과 가수는 서로를 응원하는 존재여야 한다. 누군가 상대를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관계는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한다. 하성운의 논란을 종결시킨 팬덤의 힘을 보면, 팬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가수를 응원하고 있다. (지나친 응원 혹은 잘못된 응원은 사생이라는 그릇된 애정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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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가수도 팬들을 응원해주었으면 한다. 모든 행동을 팬을 위해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들의 행동이 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 그리고 팬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항상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판타지와 현실 사이의 얇은 끈을 붙잡고 있는 팬들에게 그만한 위안과 응원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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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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