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착한 나의 친구에게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3.2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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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나의 친구에게


 친구야, 네가 울며 전화한 게 벌써 몇 번째인지. 오늘도 너는 한참을 흐느끼다 말을 이어갔다. 너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네가 무슨 말만 하면 되바라진 아이라고 하였고, 누군가는 네가 일을 잘 한다며 은근슬쩍 자신의 몫까지 너에게 넘겼다. 또, 누군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너에게 민망할 정도의 면박을 주었고, 누군가는 추파를 던져 너를 수치스럽게 만들고도 오히려 왜 이렇게 민감하냐고 했다. 그래도 너는 나에게 이야기를 하며 서러운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는지 그래도 꾹 참았다고, 나 많이 착해지지 않았느냐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친구야, 미안하게도 많이 착해지지 않았냐는 너의 말에 나는 울컥 화가 났다. 내게는 참 소중하고 예쁘기만 한 너인데 사람들이 함부로 대한 게 너무 화가 났고, 그럼에도 꾹 참고 다 들어줬다는 네가 너무 답답했다. 상처받았을 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지만 본래 말을 예쁘게 하지 못하는 나는 그건 착한 게 아니라 멍청한 거라고, 바보 같은 거라고 되려 성을 냈다. 너는 왜 착하기만 해야 하냐고 나는 물었다. 너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들을 너는 왜 소중하게 대하려 하느냐고 따졌다. 위로받고 싶어 했을 전화인 걸 알면서도 너무 속이 상해 앞으로 그 사람들이랑 인연 안 끊으면 너는 진짜 바보라는 말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를 끊고 나니 후회가 밀려오더라.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았을 너에게 내가 또 다른 상처를 준 건 아닐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한 나 자신도 사실 너와 비슷한 것 같아서, 막상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나도 그렇게 웃어넘길 것 같아서 자조적인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곧 너에게 연락이 와 마음을 놓았다. 관계에 묶여 자신을 잃을까 걱정했던 나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너는 단단했다. 너는 그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이유를 밝혔고, 사과를 요구했고, 관계라는 사슬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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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한 잔 사들고 수업에 가던 오늘, 잠시 시간이 남아 서점에 들렀다. 여느 때와 같이 베스트셀러들을 훑어보다 보니 네가 겪었던 일들이 비단 너와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있던 어떤 책은 관계와 환경으로 인해 '나'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조언하였고, 어떤 책은 인간관계 중 중요한 부분에만 신경을 쓸 수 있도록 신경 끄기의 기술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어떤 책은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처럼 보였다. 관계에 대한 책이 한 권도 아니고 세 권 씩이나 베스트셀러에 자리하고 있다니. 생각보다 우리처럼 관계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나 보다.

 너에게 선물을 해 줄 겸, 그리고 나도 읽을 겸, 그중 한 권을 사들고 왔다. 책을 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어쩜 내가 너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그대로 있더라. 얼른 더 읽어보고 너에게 선물해줘야지 싶었다.

 어쨌거나 친구야, 내가 이렇게 잘 쓰지도 않던 편지를 쓴 것은 책을 읽다 보니 더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책에서 보니 나를 막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어떠한 대처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막 대하고 있어도 오히려 그걸 받아주거나 웃어넘기면 그 사람들은 그게 잘못된 행동인 줄도 모르고 계속, 오히려 더 심하게 그런 행동들을 할 거라고. 그러니까 친구야, 네가 착한 건 알지만 우리 가끔은 좀 나빠지자. 그 사람들한테 조금 나쁘게 대하더라도 너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너를 사랑할 테니깐.


2018년, 꽃샘추위가 심한 어느 날.
너를 참 좋아하는 친구가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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