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이를 사랑이야기라 했는가 < 미스사이공 >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3.1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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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미스사이공, <캣츠>와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은 봤으니 아직 <미스사이공>은 보지 못했었다. 왜 그럴까? 하면, 아무래도 접근성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워낙 뮤지컬 넘버가 유명하고 또 리메이크, 혹은 다른 콘텐츠로 제작되었던 다른 작품들만 많이 접하다보니,<미스사이공>에는 큰 관심을 갖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으로서, 많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이제야 <미스사이공>을 보게 되었다. 아쉽게도 현장관람은 아니고, 25주년 기념 영화로 접하게 되었다. 반가운 얼굴이 중간에 보이는데, 바로 튜이 역을 맡은 뮤지컬배우 홍광호였다. 수많은 외국 배우들 사이에서, 한국 배우 특유의 제스처가 보이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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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1부까지 봤을 때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어지기 힘든 두 부류의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그런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흔한 소재지만, 언제고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2부에 접어들면서 이 이야기는 더 이상 사랑이야기가 아니었다. 온전히 ‘킴’의 이야기였다. ‘킴’은 전쟁 중 가족들을 끔찍하게 잃고 고아가 되어 모두 다 잊고 살아남기 위해 홍등가로 온다. 순박한 그녀는 그 곳에서 ‘크리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친다. 그리고 함께하기로 약속한다. 여기까지는 누가 봐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이야기일 것이다. 2부는 전쟁이 끝난 후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킴’의 정혼자였던 ‘튜이’는 권력을 손에 쥔 실세가 되었다.

 ‘크리스’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 줄 알았던 ‘킴’은 다시 홀로 남겨졌다. 그리고 ‘킴’은 그녀와 크리스의 아들 ‘탬’의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먼저 ‘튜이’라는 장벽을 넘고, 베트남이라는 장벽을 넘는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살인을 저질렀고, ‘엔지니어’의 밑에서 원하지 않았던 춤도 다시 추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다 할 수 있었다. 아들 ‘탬’울 지키고, ‘크리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해. 하지만 끝내, ‘엘렌’이라는 장벽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엘렌’이 아니라 ‘크리스’가 마지막 장벽었을지도 모른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와 함께 할 거라는 믿음은, ‘엘렌’이라는 부인을 둔 ‘크리스’의 상황에 좌절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장벽을 넘지 못한 채 끝을 맞는다.

 사실 그녀의 죽음은 예견된 것이었다. ‘크리스’가 건네줬던, 그리고 3년 내내 계속 간직했던, ‘튜이’를 쏜 총, 그리고 ‘탬’을 위해 목숨도 내바치겠다던, 그리고 끝이 다가온다고 말하는 그녀의 노래들. 그녀가 비장하게 갈무리한 마지막은, 예견됐었으나 그럼에도 아리게 다가온다. 사랑을 위해, 그리고 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여성의 마무리가 이렇게나 비참할 일일까? 그녀의 죽음으로 엔딩을 맞는 순간, 영상에서는 모두가 환호하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음이 허하고 슬퍼서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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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없고, 살릴 수 있는 요소들을 모두 다 살린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크리스’가 ‘킴’을 하룻밤 사이에 사랑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3년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서 그것이 단지 ‘동정’이었다고 치부해버린다는 점. ‘크리스’의 동료였던 ‘존’의 급격한 심경변화 등이 아쉬웠다. ‘크리스’는 스스로도 하룻밤에 이럴 수가 있나 싶으면서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결혼노래를 부르는 그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헤어지는 순간, 내 아내가 저 밖에 있다고 소리치며 그녀를 최대한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3년 후, 현재의 아내 ‘엘렌’ 앞에서 그것은 모두 동정심 같은, 하나의 책임감이었다고 말한다. ‘킴’이 자신을 남편이라고 말한 것에 분개한다. 아내와의 관계를 위해서였을까? 하지만 많이 아쉬웠다. 적어도 ‘킴’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죽음이었으면 했다. ‘킴’이 사랑한 사람이, 이렇게 하찮지는 않았으면 했다. 망나니 같은 모습을 하던 ‘존’이 그들의 아이들, ‘부이도이’를 위한 자선단체를 만든다. 이와 같은 심경의 변화는 유의미하고 또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하지만, 망나니 같던 그가 이렇게 신사적으로 변한다고 해서 그 죄와 잘못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너무 쉬운 이야기를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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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에, 지나가는 하나의 캐릭터에도 슬픔을 부과하고, 그 시대의 슬픔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인상 깊었다. 미스사이공을 꿈꾸던 지지의 경우, 아니 그 드림랜드의 모든 여성들은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여기서 드림랜드란, 과연 남성들의 환상적인 꿈을 이루어주는 곳일까, 아니면 이런 방식으로 베트남을 벗어나고픈 여성들의 꿈이 모여 만들어진 곳일까? 어쩌면 둘 다, 그리고 어쩌면 후자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만큼 그녀들이 간절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들은 모두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새로 온 첫 날 미국인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게 된 ‘킴’에게도 행복을 빌어준다. 질투하지 않고. 또한, ‘킴’과 ‘크리스’가 헤어지던 날, 상황은 마치 두 사람의 극적인 이별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그 속에는 버려진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상황에 쫓겨 도망치듯 벗어나는 미국인들. 도망치고 싶지만 아무데도 갈 수 없는 베트남 사람들. ‘거기가 아니면 나는 죽어요!’라는 외침이 들릴 듯 말 듯, 공허하게 맴돈다.
    
*

 미스사이공은, 자극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던 뮤지컬이었다. 15세 관람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그 시대의 참모습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치부되기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많은 슬픔을 담고 있는 뮤지컬이었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 미스사이공;25주년 기념공연>


[김미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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