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어른들을 위한 동화소설 < 코끼리의 마음 > : 실패도 내 것이니까

글 입력 2018.02.0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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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소설 
< 코끼리의 마음 > 

- 실패도 내 것이니까 -



고슴도치가 소개하는 『코끼리의 마음』



[책 소개]

매일 나무에 오르고 떨어지는 코끼리를 통해 각자 다른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화 소설. 2017년에 출간되어 국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고슴도치의 소원>에 이은 톤 텔레헨의 두 번째 어른 동화 소설이다. 전작의 주인공이 소심하고 걱정 가득한 고슴도치였다면 이번에는 대책 없이 무모한 코끼리다. 코끼리는 조금 특이하다. 결국 떨어져 다치고 후회해도 매일 다른 나무에 오르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은 이해 못하는, 끊임없이 나무에 오르는 코끼리의 마음은 어떤 걸까.

톤 텔레헨이 그리는 작은 숲 속 세상에서 모든 동물들은 저마다 뚜렷한 개정이 있고, 우리는 그중 하나, 혹은 여러 동물들에게서 나와 닮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시, 소설, 산문, 희곡 등의 8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한 노년의 작가가 이 잔잔한 이야기 속에 비밀스러운 삶의 진실을 담아놓았기 때문이다. 이번 <코끼리의 마음> 역시 원서에는 없는 사랑스러운 일러스트 23컷을 수록하여 코끼리의 마음을 표현했다.


(책 소개 출처: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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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시를 쓴다. ‘시’를 만나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만남을 기록한다. 아무도 모르거나 혹은 소수만 알거나 혹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잘 알아서 별 것도 아닌 내용일지라도 적고 싶다. 그것이 ‘시’로 나타날 때가 좋다. 그러나 쉽지 않다. 명징하고 논리적인 사상을 정리하는 것도 아니고, 내 머릿속 상상도를 그림처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텍스트’라는 아주 한정적인 도구를 사용해 그들(텍스트)끼리 뛰어 노는 장을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이 기왕이면 아름답거나, 지독히 평범한 일상 속의 것이어서 놀랍거나, 독특해야한다. 즉, 완벽한 시에 대한 기준이나 답은 없다. 누군가에게 ‘좋은 시’라는 정도만 있을 뿐.
  
  창작을 하는 데에 있어 곤경에 처했을 때, 돌파하는 방식이라는 게 딱히 없다는 뜻이다. 스스로, 알아서, 잘 헤쳐 나가는 게 전부.
  
  나는 코끼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동물 친구들처럼, 코끼리의 마음을 내 방식대로 유추만 하고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나무를 기어오르며 춤사위를 벌이고 풀썩 곤두박질치는 게” 어떤 것인지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나도 항상 떨어지기 때문이다. ‘신춘문예’ 말이다. 매해 신년이 되면 문단에서는 신인을 발굴한다. 그리고 난 거기에서 떨어지는 거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음, 그래. 역시나.’ 하는 정도로 낙방을 전달하긴 하지만 사실 아프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를 만큼 말이다.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아낄 말조차 사라질 정도로 아프다. 나는 항상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는데 코끼리처럼 ‘윽’하거나 ‘쿵’하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지도 않는다. 그냥 떨어지고, 여전히 ‘무엇도 아닌 존재’로 남아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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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르려는 나무가 과분한가.

이 몸은 시에 적합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일까.

일부러 모르려고 하는 것일까.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이
정말 나한테만 의미 있는 것일까.

내 모습이 너무 비합리적이고 우스꽝스러운가.

난 어쩌면 열정이 없는 것일까.

‘언젠가는’이나
‘어쩌면 이번엔’이라는 덧없는 소망을
품기만 해야 하는 것인가.


  이 무력함. 내 인생의 병적인 무기력과 무모한(?) 글쓰기들이 단지 ‘시’ 때문은 아니겠지만 ‘시’ 역시 내 삶이다. 그게 없으면, 나는 없다. 코끼리의 말대로 ‘이런 방식으로 불행할 일’도 없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없는 사람이 김해서라고 설명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항상 그런 근거 없는 고집으로 버텨왔다. 떨어지고, 떨어지며. 그런데 < 코끼리의 마음 >을 읽어 내려가는 중, 내가 ‘흠칫’ 멈추고 만 부분이 있다.
  

“나무에 오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떨어지는 건 예술 같은 거니까.
나만의 작품.”
  

  실패와 도전을 격려하는 문장은 수없이 많기 때문에 이 문장 역시 아주 특별할 건 없는 생각이다. 그런데 ‘떨어지는 예술’, 그러니까 ‘떨어진 나만의 작품’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단 한 번도 신춘문예에서 떨어진 작품들을 다시 읽어본 적이 없다. 떨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다시 들여다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선이 된다고 해도 새로운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내쳐지고 버려진 작품 말고 새 것으로 말이다. 아무리 빛나는 시구가 이전 작품 사이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절대 다시 사용하지 않았다. 차라리 새로 창작을 하면 했지. 탈락했다는 이유로 그 시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이미 충분히 내 작품’인 것을 인정도 못하고, 더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볼 생각도 못했다. 훨씬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없었을 뿐 아니라 새로 창작하고 그 작품을 열심히 퇴고하는 쪽이 훨씬 질이 높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난 자존감이 낮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위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거 정말 좋은 시도였고 정말 좋은 표현들이니 버릴 수 없는 거야’ 라는 거. 내 것인데, 사랑하는 게 민망했다. 실패 앞에서 쿨해지고 싶었던 걸지도. 분명히, 다른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어서 시를 적었던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그 문장이 소중해서 계속해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아무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코끼리의 마음. 나 역시 절대 그 코끼리의 ‘눈’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그 비슷한 것을 갖고 싶다. 큰 의미부여 없이, 그래서 낯간지러워할 이유도 없이, 했던 대로, 바로 이대로. 떨어지면, 다시 또 올려다보고, 조금 끙끙대다가 쿵, 떨어지고. 소중하니까, 내내 생각하는 것.
  
  저 코끼리처럼.





본문 속 '밑줄긋기'


코끼리는 입술을 깨물고 코를 목 뒤로 넘긴 뒤 눈을 꾹 감았다. 인생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공평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무 공평해서 코끼리만 넘어지고 다른 이들은 아무도 넘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이 세상 모든 것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공평한 일인지도 모른다. 코끼리는 그동안 올랐던 나무들을 모두 떠올려보았다.

p. 16



어느 저녁, 코끼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꼭 나 자신에 대해 뭘 생각해봐야 하나?’ 계속 쓸데없는 것만 떠올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아니면 누가? 코끼리는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개미에게 한번 물어볼까. 개미야, 너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개미는 머리를 갸웃할 것이다.

p. 25



그러나 그들은 내가 될 수 없다.

나무에 오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떨어지는 건 예술 같은 거니까.
나만의 작품.

p. 184



나에게 부족한 건 내가 언제나 떨어진다는 깨달음이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오를 뿐이다.

나에게 그런 깨달음이 있다면 다시 오르지 않겠지.
앞으로 다시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결코 그렇게 불행하지도 않겠지.
아무도 겪어보지 못했을 법한 불행.

나는 깨닫고 싶지 않고,
맞서고 싶지 않고, 무언가를 알고 싶지 않고,
계산하고 싶지도 않아.

나는 그냥 코끼리이고,
그냥 나무에 오른다.

p. 182



나는 옳은 결정을 좋아하지 않아.
이제야 알겠어.
현명하고, 신중하고, 숙고 끝에 내린 결정들.

나는 잘못된 결정이 좋아.
즉흥적으로 내린,
매일 되풀이하는 그런 결정들.

p.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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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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