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는 것이 사랑이다, 도서 「다르면 다를수록」 [문학]

생물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지구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면.
글 입력 2018.01.23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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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오래된 친구와 간만에 놀이공원 나들이를 갔다. 작은 놀이공원인데다 춥고 흐린 겨울날이라 거의 전세를 낸 수준으로 한참을 쏘다녔다. 지칠대로 지친 친구와 나는 바로 옆에 위치한 동물원은 패스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즐겨보던 ‘위 베어 베어스’라는 곰돌이 애니메이션이 눈에 아른거려 곰만이라도 보자,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만화의 포동포동하고 푸근하고 말도 할 줄 알고 심지어 인터넷까지 할 수 있는 곰을 상상한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오랜만에 우리 안의 곰을 마주한 건 충격이 컸다. 비좁고 빛이 잘 들지 않는 감옥 같은 공간, 촘촘한 창살, 비릿하게 고여있는 요상한 색의 물… 푸른 풀들을 마음껏 밟으며 살아가도 부족할 것 같은 큼지막한 발은 콘크리트 재질로 사방이 둘러싸인 공간에서 움츠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도저히 쳐다볼 수 없어 마음만 상한 채 황급히 나왔고,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곰을 보러갔는지 자책했다.
 
 사실 생명, 생물, 자연과 같은 것들을 연상할 때면 자책으로 그 생각이 끝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 오존층을 더 이상 파괴하지 않고 열대 우림을 보호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만 더우면 에어컨을 틀었고, 보신탕을 먹는 친척들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내다가도 “왜 개만 안되는 건데?”라는 반문을 들으면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래서 외면하고 있었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 말마따나 나는 자연 앞에 너무도 작고 미개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복잡함으로 끝맺는 주제는 자연히 머릿속에서 연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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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나에겐 「다르면 다를수록」이 완벽한 처방이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생물편 알쓸신잡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책은 담백한 문체로 자연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기이한 동식물들의 습성들을 설명해주어 육성으로 감탄사를 이끌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인간 사회의 왜곡된 모습을 꼬집기도 하며, 지루하지도 않게 가끔 번식(인간 포함) 이야기로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어느 날 공원 관리인이 원숭이들에게 주려고 고구마를 한 바구니 들고 가다 실수로 몰두 모래사장에 쏟았다. 원숭이들은 배가 고픈 나머지 각자 고구마를 하나씩 들고 먹기 시작했으나 입속 가득 씹히는 모래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때 ‘이모Imo’라는 이름을 가진 두 살배기 소녀 원숭이가 그 모래투성이 고구마를 물가로 가져가 씻어 먹더라는 것이었다. 일본 영장류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그 후 그 원숭이 집단에는 고구마는 물론 다른 음식도 모래가 묻으면 씻어 먹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 104p. 파괴당하지 않을 권리 中


“…그러나 산아제한 교육과 출산억제 정책 덕분에 정작 출산율이 떨어지자 이제는 ‘역사적 사명’까지 들먹이며 여성들에게 출산의 희생을 강권하는 우리 사회는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의 사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듯싶다. 우리 사회의 저출산이 마치 여성들의 ‘출산 파업’에 의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 58p. 자연선택론의 의미


“우리가 그처럼 가슴 설레게 즐기는 섹스 역시 위기관리를 위해 진화한 적응 현상이라면 믿겠는가. 자손을 불리는 방법으로는 무성생식이 유성생식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구태여 암수를 만들 필요 없이 암컷만 낳으면 훨씬 많은 자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지구상의 많은 생물들은 다 암수가 있어 섹스를 즐기도록 진화했을까? 무성색식을 하는 생물들은 모두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공은 거둘지 모르지만 결국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 절멸하고 만다.” 

- 119p. 놈팡이 개미의 역설 中


 비록 그 실천은 생각에 못 미치지만, 평소 ‘앎’이라는 가치에 대해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두고 살아가는 편이다. 박학다식을 추구하는 건 아니고, 어떤 걸 알고 있고 인지하고 있다는 건 또 어떤 ‘가능성’을 항상 열어주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도덕수업에서 쓰레기통 앞에 휴지가 마구 떨어져 있고 그 앞을 지나가는 두 사람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한 사람은 휴지가 떨어져 있는 걸 더럽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알면서 지나치는 사람이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두 사람 중 휴지를 주워 주변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은 후자였다. 얼핏 생각하면 알면서도 안 치우니까 더 나쁜 것처럼 보이지만, 설령 더 나쁘더라도 어쨌든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알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르면 다를수록」을 앞서 완벽한 처방이라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자연 속에 살아가는 한 포유류과 동물로서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자연이 어떤 존재인지 조금씩 알아감으로써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이 내게 부여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가능성이 있다는 기분 좋은 느낌은 진짜로 그 변화로 나아가기 위한 추동력을 심어준다. 다르면 다를수록, 알면 알수록, 나는 더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고 겸허히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격언에 저자가 덧붙였듯, 아는 것은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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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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