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곳엔 삶이 있었네 : < 불후의 명작; The Masterpiece > 展 [전시]

글 입력 2018.01.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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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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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작; The Masterpiece> 展에선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걸작을 소개한다. 100여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작품들은 가히 ‘불후의 명작’이라고 부를 만하다. 그림 안에 담긴 통찰과 예술성은 그림을 통해 100년 후의 관객에게도 전해진다. 그리고 그 맥락엔 한국 근현대의 사회상이 도도히 자리하고 있다. 굳이 ‘민족혼’, ‘애국’이란 수사로 그들의 작품을 한정하고 싶진 않다. 역사를 맥락으로 한 통찰과 예술을 만나면 그만.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건 민족이니 애국이니 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림 속 사회상과 개인의 생애이기 때문이다.


2-아기예수의 탄생.jpg
김기창 ,아기예수탄생 Nativity of Christ (1952-1953)
 

민족의식이 높았다, 민족의 기상을 드러냈다 하는 설명들이 따라붙지만, 분명한 건 그 예술성 속엔 한국이란 맥락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김기창의 <만종의 기도> (1967)와 <예수의 생애> (1952-53) 연작에선 서양의 작품을 원용하여, 지극히 한국적인 오브제와 한국적인 채색기법으로 작품을 완성해냈다. 이 유래 없는 시도는 전통 안에서 성서를 재해석하며, 고착화된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에 균열을 일으킨다. 김기창이 <예수의 생애> 연작을 완성한 1950년대가, 오리엔탈리즘이 극심했던 시대였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예수의 생애>는 도전적이고 선구자적인 작업의 소산인 것이다.
 
김기창의 그림이 곳곳의 디테일을 찾는 재미와 선지자적 상상력에 대한 놀라움으로 발길을 끈다면, 박수근의 <우물가(집)> (1953)는 이유 없이 발을 멈추게 하는 작품이었다. 거기엔 어떤 드라마나, 사건이 없다. 다만 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 색이 탁한 초가집, 닭 두 마리, 빨랫줄에 걸린 빨래, 열린 대문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어딘가 뭉클한 <우물가(집)>는 당시의 생활상을 담담하게 관조한다. 특히 화강암의 표면 같은 마티에르는 작품에 토속적인 색채를 더해준다. 물감층을 여러 겹 쌓아서 만든 마티에르는 세련되고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울퉁불퉁하고 거친 느낌을 표현하면서, 자연스럽게 1950년대를 화폭에 담아낸다.

 
 
그곳엔 삶이 있었네

   
천경자의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앞에선 차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더라. 드넓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코끼리 위에 앉아, 발가벗은 몸을 잔뜩 웅크린 여자의 모습은 내내 눈에 밟혔더랬다. 어딘가 외롭고 울적해 보이는 여자는 토닥여주기도 힘든 깊은 어둠을 안고 있는 듯했다. 왜 여자는 킬리만자로, 바우바우, 사자, 기린, 코끼리, 멧돼지, 칠면조, 갈대 안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흰 몸을 겨우 그러안아야 했을까. 이국적인 곳에서, 야생의 맹수에 둘러싸여, 홀로 외로움을 감당하고 있는 여자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여자는 익숙한 곳에선 외로움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곳엔 안아줄 사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대신 맹수들 속에서 고독을 감내하길 원했을 것이다.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종이에 채색, 130x162cm.jpg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고독과 상념에 잠긴 채
코끼리 등에 엎드려 있는 나체 여인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작가 천경자의 삶이 어땠다고는 가타부타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녀가 나체 여인이 자기 자신이라고 밝혔을 때, 인간 천경자가 느낀 삶의 고독과 상념은 아주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작품에 대한 도슨트의 설명에 한 어르신이 첨언하셨다. “천경자가 좋은 며느리, 좋은 어머니는 아니었어.” 전시되어있는 여자의 고독과 그 고독을 향하는 평가. ‘가정 내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나무람. 그래서 여자는 군중 속이 아니라, 저 먼 아프리카 초원에서 고독하길 원했던 걸까.
 
물론 우리가 보는 여자는 천경자의 일생 중 일부일 수 있고, 여자로 천경자의 삶을 읽어내는 건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다. 혹은 여자는 그저 그림 속 고독한 여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 분명한 건 이것뿐이다. 내가 목격한 여자는 고독해 보였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은 작가를 닮아있었고, 또 다른 여성들을 닮아있었다는 것. 그게 누구라도,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에선, 한국 사회 속 여성의 삶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작가 천경자는 타국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그녀가 남긴 삶의 페이지는 여전히 전시되어 누군가의 평가를 받기도 하고, 누군가의 삶이 투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웅크린 여자는 지금쯤 어디서 고독을 느끼고 있을까. 바라건대, 이곳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전시회 정보



INTRODUCTION


전시명
《불후의 명작;The Masterpiece》展
 
기간
2017. 12. 8(금) - 2018. 6. 10(일)(예정)

장소
서울미술관 제 3 전시실

출품분야 :회화

참여작가
김기창, 김환기, 도상봉
박수근, 유영국, 이중섭, 천경자

작품 수 : 총 49 점

주최‧주관 : 서울미술관
www.seoulmuseum.org


INFORMATION

관람일 | 화요일~일요일
휴관일 | 월요일

전시장 관람시간 | 10:30 – 18:30
(전시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석파정 관람시간 | 10:30 – 17:30
(전시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가능)

관람요금
성인 | 9,000원
대학생 | 7,000원 (학생증 지참)
학생(초/중/고) | 5,000원 (학생증 지참)
미취학 아동(3-7세) | 3,000원
우대 | 7,000원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복지법에 의한
장애인 및 장애 3급 이상 장애인의 동반자

단체관람 | 20인 이상 20% 할인

단체관람예약 | 02-39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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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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