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쓰기'의 시작

글 입력 2018.01.14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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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시작
_ Prologue




  ‘쓰기’에 유능한 사람. 그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현재 내가 품을 수 있는 질투의 최대치가 그에게로 향하지 않을까. 글을 쓰는 일, 시간을 쓰는 일, 사람을 쓰는 일. 모든 ‘쓰는 일’들에 대해서 프로의 모습으로 일관할 수 있다고 상상해본다. 얼마나 충만한 기록들이, 얼마나 특별한 경험들이, 얼마나 다양한 인연들이 가득할지. 현재 내겐 ‘인생 롤모델’이라 부를 만한 사람은 없다. 구체적인 이상형이 없다지만 이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피곤하다. 나는 열등감 덩어리니까. 절대적 ‘결핍’. 그게 항상 문제였다. 뭐든 잘하고 싶다는 내 안의 성급한 아이 말이다. 결핍은 어떤 식으로든 달래 보는 것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채우기는 영 어려운 녀석이다.
  
  나도 알고 있다. 사랑받을 만한 글을 쓰는 일, 풍부하고 의미 있게 시간을 쓰는 일, 함께 할 사람을 잘 찾아 쓰는 일. 내가 갈망하는 것들은 절대 단숨에, 한꺼번에 쟁취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쓰기’에 유능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마음 쓰는 일’에 탁월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해 글을 쓰고, 마음껏 누리는 시간들을 살고, 마음 써서 상대를 대하는 것. 그 성실함이 선행되어야만 문장도, 기회도, 인연도 찾아온다. 가까스로.
  
  그런데 마음이라니.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희미해서 천 원짜리보다 부질없는 것이고,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무거운 존재라 불가능의 영역에나 있는 ‘어떤 것’. 그래, 근데 그걸 ‘잘’ 써야한다. 어쭙잖게도 나, 라는 사람이 그걸 잘 쓰고 싶어 하니까. 누군가에게 편지 한편 쓰는 것도 겨우겨우 해내는 인간이면서.
  
  ‘요즘 마음 쓰이는 사람이 있어.’
  
  무슨 뜻일까?
  
1. 아직은 그 사람에게 진심을 건네주진 못했다.
2. 진심을 주고 싶은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3. 그런데 신경이 쓰인다.
4. 당황스럽다.
5. 그러나 무시할 수가 없다.
  
  마음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관심을 두고 있다’, ‘기억하고 있다’ 정도의 의미 이상일 것이다. 왜 그러냐고? 내 마음 공간을 ‘축내고 써버리는 것’이니까. 누군가의 가슴에 세 들어 산다는 말도 있지 않나. 마음은 정말로 ‘쓸 수 있는 것’이기에 마음이 관여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단절될 때, 사랑이 식었을 때 우리는 흔히 마음이 ‘소진’되었다고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쓰다’는 그저 피상적으로 받아들일 단어가 아니라 ‘굳이 시간을 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겐 그렇다.) 왜 저 사람에게 마음을 쓰고 있는 거지? 어떤 식으로 마음 쓰는 중이지? 이 정도에서 시작할 수 있는 거다.
  
  그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물음. 어쩌면 ‘마음 쓰다’의 주체는 내가 아닌 내 밖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언가가 이미 내 마음을 쓰고 있는 것 말이다. 사랑이 그러하듯이. 시인이 동물이나 식물도 아닌 책상, 냉장고 따위를 어떤 생명체나 생태계보다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글감으로 여기면서 무턱대고 사물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시인에겐 그렇게 다가왔을 테니까. 그렇게 마음이 쓰였으니까. 그러니 ‘마음을 잘 쓰고 싶다’라는 욕망은 ‘무언가가 내 마음을 잘 써주기를 원한다’와 비슷한 의미일지도. 시인이 책상 다리의 모습이나 냉장고 소음을 은밀한 춤사위 혹은 유일한 목소리로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한 마디로, 무언가 많은 것들이 내 안에 북적북적 살기를 원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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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식으로 ‘쓰기’에 유능해지고 싶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내 마음을 열고 들어와 나를 닳아질 때까지 썼으면 좋겠다. 내 가슴에 낙서도 하고, 가슴에 기대 단잠을 자며 침도 몇 방울 흘리고, 대못도 쾅쾅 박고, 촌스러운 색깔로 페인트칠도 하고, 얼음장 같이 차가운 물도 끼얹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나를 그렇게 ‘씀’으로써 나도 나를 글 ‘쓰게’ 하고 싶다.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설원은 깜냥이 못되지만 뭐든지 채울 수 있는 백지 정도는 되고 싶다. 최초의 발자국을 찍어보고 싶게 만드는 부드럽고 연약한 백지.
  
  이제부터는 나를 붙드는 ‘쓰기’에 대하여 글을 남겨보려 한다. 먼지의 들썩임보다 미세한 움직임일지라도, 집중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의 결핍이 들통 날까 두렵다. 아니, 결핍 자체가 나라는 사실을 들킬까 두렵다. 어쨌든 이것도 ‘기록’ 아닌가. 하지만 내 결핍이 무슨 거창한 불행을 짊어진 주인공의 사연이나 되는 것 마냥 전전긍긍하는 마음도 접기로 했다. 그것도 오만한 마음인 것 같아서.
  
  백지. 나는 그저 백지다. 내 앞에 놓이는 것이 곧 내가 될 것이다. 일단은 쓴다. 나를 쓰게 하는 것들을 위해, 홀린 듯이. 세상이 나를 쓰고 나도 세상을 쓰는 아름다운 통신을 상상하며. 내 위로 무수한 발자국들이 겹쳐질 것을 그려보며.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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