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들에게는 환상이 필요하지,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글 입력 2018.01.1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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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람들에게는 환상이 필요하지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아는 그러면 안 되지.
아는 이렇게 살면 안 되지.
더 잘 살겠지.



이번 아트인사이트의 문화초대는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입니다.

2018년 1월 2일,
새해 첫 연극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상황들의
반복인 연극이었습니다.

저는 웃음보다 슬픔이 더 가까이 와닿아서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참 좋은 연극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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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실, 가난, 불가능

 본 연극의 간단한 플롯을 정리해보자면 '비정규직으로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3년 차 부부인 종철과 선미에게 아이가 생기고, 부부는 가난한 현실 상황 속에서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고민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소극장 연극의 경우, 드라마나 영화, 뮤지컬보다도 가장 현실에 맞닿아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겪어본 바로는 그런 것 같습니다. 가장 현실 속에서 벌어지기 쉬운, 아니 많이 벌어졌을 이야기들을 무대에 올리고 그 현실을 관객들에게 직시하게 합니다. 그 가운데서 진짜 그런 현실에 공감하며 웃기도 하고, 그 현실의 중간에 있어서 울기도 합니다. 그게 바로 '공감'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감정을 가지는 일, 이는 어떠한 콘텐츠에서도 주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인데 연극은 가장 어떠한 콘텐츠보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요소들을 굳이 구현하려 하지도 않고 보이는 그대로를 올려놓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은 그런 현실을 무대 위에 세운 극입니다. 그래서 많이 웃었고, 또 정말 슬펐습니다. 제 3자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 우리가 겪고 있을지 몰라서 말입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이슈는 지속적으로 논의가 되고 있고 최근 조금은 더 나아가려는 시도들이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 것 역시, '저출산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아이'가 주는 가치가 기쁨이 아니라 부담이 될 수 있는 현실입니다. 경제적인 풍요의 부재는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에 제한이 생깁니다. 연극 속에서 종철과 선미 부부가 경제적인 한계로 인해 아스파라거스가 아니라 구운 파를 가니쉬로 사용하는 것처럼요.

 그럼에도 연극 속에서 종철과 선미는  버텨나갑니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래도 그들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면서 '그들은 이정도면 충분하지', '이정도면 괜찮아', 한 달에 한 번은 데이트를 나가는 3년 차 부부인 그들은 행복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런 둘의 일상에 '아이'가 등장하면서 현실과 이상이 분리가 되는 상황에 도달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자 선물인 '아이'가 부담으로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책임질 수 없다는 불안감, 경제적 제한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생각,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현실적인 고민들에 두 부부의 행복이 살짝씩 금이 갑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선미와 아이를 낳아봐야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종철의 입장은 섬세하게 서술됩니다.

 둘은 본 연극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장면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으로 더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이 장면이 제게는 최고의 장면이었고 많이 웃었으며 또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왜 연극 제목이 '경남 창녕군 길곡면'인지 후반부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선미와 종철이 살고 있었던 곳, 결말은 달랐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과 똑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힘듦과 아픔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겪고 있음이 말해주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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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환상, 상상, 미래

 연극의 시작은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선미는 하와이를 꿈꾸죠. 종철도 졸린 와중에 맞장구를 쳐줍니다. 극 속에서 전반적으로 선미는 낙관적인, 종철은 현실적인 사람으로 묘사가 되는데, '사람들에게는 환상이 필요하지'라는 대사는 종철이 이야기합니다. 극 속에서 환상과 상상을 하며 무대를 마구 뛰어다니는 것도 종철이 합니다. 현실적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종철이지만 그 안에 갇혀있는 어떠한 욕망,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 유유자적한 휴양지에서 쉴 수 있는 삶, 그런 환상같은 미래들을 상상하고 꿈꾸는 '사람'입니다. 선미과 종철이 현실 속에서 그래도 본인들만의 행복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런 환상들, 상상들입니다.

 종철은 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좀더 현실직시적인 시선으로 봅니다. 환상과 상상을 마음껏 펼치지 못합니다. 선미는 그 끈을 놓치지 않습니다. 현실이 힘들고 불가능하다고 해도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종철을 설득합니다.

 항상 누구나 더 좋은 미래를 꿈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사람이 가지는 좋은 재능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단순히 환상이고 상상이니 허상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미래는 어떻게 흐를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최근에 본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한 대사가 있습니다. '어제를 살아봤다고 해서 오늘을 다 아는 것을 아니니까요.', 현실을 다 알고 불가능하고 가난하다는 것만으로 다가올 미래를 부정하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3. 정체성, 나의 역할

 본 연극에서는 정체성, 직업적인 역할, 나의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종철은 그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깔끔하게 설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매일 아침에 자동차 키를 꽂고 출발하는 운전 기사가 30명이야.'라고 말하며 종철은 막 설명하려고 애씁니다.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학력이 높아야 하며 공부를 해야 하고, 자기는 그럼 어떤 사람인가를 그는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그냥 어떤 사회의 한 부품은 아닐까하는 그런 마음들을 서툴게 표현합니다. 그 풀리지 않는 답답함까지도.

 저는 이런 생각을 꽤 자주 하는 편이고, 사회에 제 역할,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차츰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어느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고 신해철님의 강의 내용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것으로 그 역할을 다했으니 이제 행복하기만 하면 돼요.', 이 말을 듣고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아찔했습니다. 굳이 어떠한 역할을 찾아 자신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보다 그냥 나는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임을 잊고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누구나 결국에는 행복한 삶을 꿈꿀 테니까요. (행복의 기준은 개개인이 다르겠지만서도 말이죠.) 그런 고민에 힘들어하는 종철에게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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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인극의 힘

 2인극 연극은 참 보고 나면 배우님들이 존경스러워집니다. 배우가 많고 무대 연출, 구성이 화려하다면 관객들의 시선이 분산되니까 배우님들의 부담이 조금을 줄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 연극은 처음과 끝을 제외하고 완전히 암전이 되지 않고 두 명의 배우님들이 무대 위 소품을 움직이고 조정하면서 90분의 극을 이끌어가십니다. 완전히 말이죠. 그래서 2인극이 더 몰입도가 큰 것 같습니다. 종종 2인극 연극을 마주해본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2인극은 제 상상 이상의 만족도를 선사하는 공연들이었습니다. 실망하지 않도록 말이죠.

 그리고 저는 김선영 배우님, 이주원 배우님의 공연을 봤습니다. (선미는 더블 캐스팅이라 김선영 배우님, 주인영 배우님이 번갈아 출연하십니다.) 두 배우님의 열연으로 웃고 또 울었으니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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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 연극으로 아주 만족스러웠고
그 소극장에서 느꼈던 감정들의 부딪침이
제게는 오랫동안 남아 머물 것 같습니다.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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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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