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녀가 바라본 세상의 색채, 마리 로랑생 전 [전시]

색채로 그려낸 감성
글 입력 2018.01.01 00:0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208 마리로랑생 전 포스터.jpg
 
 

Prologue.


한 해를 마무리할 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내가 그동안 가장 중심으로 두었던 삶의 가치는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 싶어졌다. 이럴 때마다 역시 도움이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발자취이다. 반드시 성찰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대부분 꽤 즐거운 일이니. 화가 마리 로랑생에게는 아무래도 삶의 중심이 그림, 그 중에서도 ‘색채’였던 듯 싶다. 그림이 자신 삶의 중심이었고, 그 중심에도 자신이 서 있었기에 서로에게 중심이었던 그림과 마리 로랑생. 그 안에서 펼쳐진 색채의 향연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감상하는 동안 나도 그녀의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픔을 마주하다


아픔을 마주하는 것은 누구를 막론하고 참 힘든 일이다. 시간이 지나가주기를 바라거나 아픔에 맞서 당당히 마주보거나 하는 것 모두 나름대로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전자는 자신에게, 후자는 외부에게 힘을 쏟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 로랑생은 아픔을 겪는 동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면서도 작가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의 전쟁이라는 아픔, 개인적으로는 사랑을 잃은 아픔을 전 생애에 걸쳐 자신만의 화풍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스스로의 뮤즈이자 영감으로 치열하게 마주해갔다.
 
 
1208 마리로랑생 전 성 안에서의 생활.jpg



색채로 그려내다


작품마다 감성이 묻어나는 색채로 그녀는 색채의 연금술사라 불리고 있고 이번 전시의 제목도 색채의 황홀이라 명명되었을 만큼 주인공이 된 ‘색채로 그려낸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그녀가 파랑, 회색, 분홍, 초록을 작품의 주요한 컬러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표현주의나 인상주의 계열, 심지어 비슷한 계열의 컬러가 자주 등장하는 로코코 풍을 보아도 작품마다 등장하는 색은 다양하다. 하지만 그녀는 매번 다른 모델과 이야기를 그려내면서도 같은 색들을 고집했다. 고집은 곧 그녀만의 화풍이 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이가 사랑하는 작품 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두 번째 의미는 말 그대로 색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자세히 보아도 오브제나 모델, 배경 사이에서 윤곽선을 찾아내기는 힘들다. 이는 동양화에서 나타나는 몰골법(윤곽선을 따로 그리지 않고 먹의 농담만으로 색채를 조절하는 동양화법의 하나)과도 비슷하다. 물론 그녀가 실력이 부족해서 이런 화풍으로 작품을 그려낸 것은 아니다. “우아함은 콘트라스트의 미묘함에서 시작된다.”는 작가 본인의 말처럼 마리 로랑생은 대비를 줄여 모든 오브제, 모델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데서 우아함을 찾고자 했다. 콘트라스트contrast-대비-를 통해 주가 되는 이미지의 포커스를 색상-채도-명도에서 조절하는 기존의 기법과 반대로 어느 것에도 중점을 두지 않고 분산시킨 것은 그녀가 느꼈던 아픔을 표현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stage_05.jpg
 

 
여성 화가의 여성적 화풍(?)


이렇듯 독특한 그녀의 작품에 담긴 미묘한 아름다움과 부드러운 색채는 분명한 트레이드 마크로 전시장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런 묘사가 상당 부분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과 그녀의 ‘여성적’ 화풍을 설명하는 데에 쓰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그녀의 작품은 ‘여성적’이지 않다. 관습적으로 핑크와 우아함, 부드러움은 ‘여성적인 것’과 연결되어 버리지만, 부드러운 색채라면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모델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아 미묘함을 담아낸 모딜리아니 등의 남성 화가를 반례로 들 수 있다. 그래서 여성적이라는 화풍으로 종종 묘사되는 마리 로랑생의 작품이 워딩에 갇혀버리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또한, 그녀가 여성이라는 것이 많이 주목되고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에 여성 화가가 귀했고, 당시에 함께 활동하던 다른 화가들과 구분하고자 여성이라는 말을 굳이 앞에 붙이는지는 모르겠으나 별다른 구분 없이 그녀의 작품을 여성이어서가 아닌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의 것으로 감상하는 관점도 분명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작품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예술같은 삶. 이번 ‘색채의 황홀-마리 로랑생 전’이 삶과 작품을 통해 많은 이가 위로받고 자신만의 감성을 더해가는 의미있는 전시가 되었길 바란다.


1208 마리로랑생 전 마리로랑생.jpg

 
[차소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