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리 로랑생의 세계에 빠지다

글 입력 2017.12.3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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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림만이 영원토록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전시장 앞에 쓰인 마리 로랑생의 말이다. ‘벨 에포크 (La belle époque: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파리의 모습, 좋은 시대라는 뜻)’ 시대에 활발히 활동했던 유일한 여성 화가였던 마리 로랑생의 전시를 보고 나니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얼마나 그림에 대해 고뇌했는지, 홀로서기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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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체파와 야수파 속에서 마리 로랑생 스타일 찾기

 그녀가 처음 학교를 다니며 그림을 배웠을 때 그린 1905년의 자화상을 보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마리 로랑생의 그림 스타일과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명화처럼 그려진 그녀의 초상화에서 젊고 앳된 모습이 보인다. 20대의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별로 만족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필자가 봤을 땐 20대에 걸맞은 도전적인 모습과 유머가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화상, 1905년경, 목판에 유채, 40x30, Musee Marie Laurencin.jpg
자화상, 1905년경, 목판에 유채
40x30, Musee Marie Laurencin


 이후, 조르주 브라크에게 세탁선을 소개 받은 마리 로랑생은 본격적으로 그 당시 미술 트렌드에 물들게 된다. 피카소로부터 입체파 영향을, 마티스로부터 야수파 영향을 받은 마리 로랑생의 초기 그림들은 입체적이며 강렬했다. 선은 굵었으며 색 대조는 크게 드러났는데 그 예시로 1908년 파블로 피카소 초상화를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마리 로랑생은 사람의 머리를 도형으로 그렸는데 각이 진 큐비즘과 달리 부드러운 곡선을 더 강조해서 그렸고 눈은 길게 째지게 그려 이국적인 느낌을 들게 했다.


파블로 피카소, 1908년경, 캔버스에 유채, 41.4x33.3, Musee Marie Laurencin.jpg
파블로 피카소, 1908년경, 캔버스에 유채
41.4x33.3, Musee Marie Laurencin


 마리 로랑생은 평론가들로부터 입체파와 야수파 속에 낀 불쌍한 사슴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그녀는 자신만의 그림을 찾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한다. 게다가 남자들이 주로 그림을 그렸던 그 시기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소재를 찾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그녀는 유독 여성을 많이 그렸는데 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1908년에 완성한 ‘사냥하는 다이아나 여신’에서 그녀는 처녀여신을 그전 남성작가들이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과 다르게 과감히 육체를 완전히 드러낸 모습으로 그려냈다. 여성을 소재로 한 그림들은 남성작가들의 시각과 달랐으며 이는 그녀의 독창적인 그림으로 이어져 갔다.

 마리 로랑생은 세월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자신만의 색을 찾아간다. 굵었던 선은 이후에 사라지게 되고 진한 색보다는 파스텔 톤의 색이 들어가며 선명했던 그림은 몽환적으로 바뀌었다. 인생의 굴곡에 따라 그림 분위기는 달라졌으나 점점 성숙해지는 그녀의 그림 스타일을 보며 끝까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캔버스에 유채, 112x144, Musee Marie Laurencin.jpg
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 1913
캔버스에 유채, 112x144, Musee Marie Laurencin

성(城)안에서의 생활, 1925, 캔버스에 유채, 114.4x162.3, Musee Marie Laurencin.jpg
성(城)안에서의 생활, 1925, 캔버스에 유채
114.4x162.3, Musee Marie Laurencin



2. 그녀의 인생사와 함께한 전시

 이번 마리 로랑생 전시는...

1. 벨에포크 시대로의 초대
2. 청춘시대
3. 열애시대
4. 망명시대
5. 광란의 시대
6. 콜라보레이션

 이렇게 이루어져 있었다. 즉, 그녀의 인생 흐름에 따라 작품들이 전시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그녀의 인생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그때 그녀의 정서와 맞는 그림들을 보며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열애시대망명시대였다. 마리 로랑생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마리 로랑생이 처음 피카소의 화방 ‘세탁소’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피카소는 마리 로랑생을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오늘 자네 아내를 봤어, 비록 자네는 아직 모르지만,’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마리 로랑생과 기욤 아폴리네르는 완벽한 커플이었으나 기욤 아폴리네르가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몰리면서 그들의 5년 열애는 끝나게 된다. 비록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으나 둘 사이에 벌어진 틈은 다시 채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 ‘파시 다리’를 보면 그들이 자주 만났던 미다보리 다리는 저 뒤편에 놓여 있고 기욤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은 거친 물길로 인해 다시 만나기가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그들의 뜨거운 열애는 끝나고 불행하게도 독일인 귀족과 결혼하자마자 제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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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다리 (1914)


 1913년 ‘책 읽는 여인’ 그림은 사실 마리 로랑생의 자화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머리가 아픈 듯 미간을 살짝 찌푸린 여인은 책에 집중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그녀는 독일인 귀족에게 너무 빨리 빠져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결혼의 과정부터 결혼을 막 한 후까지 그녀는 후회와 고민을 많이 한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전쟁이 일어난 후 스페인에서 망명을 하고 있을 때의 그림들을 보면 어둡고 고뇌에 빠져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책읽는 여인, 1913년경, 캔버스에 유채, 91.5x72, Musee Marie Laurencin.jpg
책읽는 여인, 1913년경, 캔버스에 유채
91.5x72, Musee Marie Laurencin


“나는 아주 슬펐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검은색과 흰색이
주조를 이룬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분홍색, 푸른색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918년 ‘여자-말’ 그림을 보면 회색빛으로 그려진 한 여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마리 로랑생이 좋아하는 색인 연분홍과 파랑색, 그리고 강아지도 볼 수 있다. 이 당시 파랑색은 그녀가 파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리고 연분홍은 파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망명시기 그녀의 그림들은 이렇게 우중충하고 우울하다. 그 누구보다도 힘든 시기를 걸었지만 항상 희망만은 잃지 않았던 그녀, 결국 파리로 돌아오게 되고 다시 행복한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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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말 (1918)





 그녀의 인생은 굴곡이 많았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치열했다. 70세가 넘도록 붓을 놓지 않았던 것, 그리고 늦은 나이에도 삽화나 옷 디자인 같은 분야에 도전한 것은 사실 참 대단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그림은 어딘가 모르게 슬펐다. 우울한 생활은 지났어도 그 상처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걸까? 그녀의 '진정제' 시를 읽으니 마음이 아팠다.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마리 로랑생의 인생과 그녀의 그림들은 비단 그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예전 시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삶을 허우적대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열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준 것은 아닐까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보는 전시였다.


[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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