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헤어지고 본 '이터널 선샤인' [영화]

조엘, 클레멘타인, 그리고 나
글 입력 2017.12.0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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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개봉한 이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봤다. 전 남자친구와 사귀던 중 10주년 기념으로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보자고 말했었는데 결국 나 혼자 보게 됐다.
 
영화는 반복되는 무료한 생활에 찌든 조엘(짐 캐리 분)이 출근길에 회사가 아닌 몬탁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몬탁은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순 없지만 어쩐지 마음이 끌리는 곳이었다.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조엘은 소다색 머리를 한 여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분)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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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사랑할 수 없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상대를 보는 것이 힘들어 기억을 지운 두 사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둘은 인연이 시작된 곳에서 다시 만난다. 기억을 지우기 전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사랑이 피어나려는 순간 서로가 과거의 연인이었으며 자발적으로 각자의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변화하려는 엄청난 의지와 노력, 더불어 사랑을 끝까지 지켜나갈 것이란 확신이 없는 한 아마도 고스란히 현실이 돼 또다시 그들을 괴롭힐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내가 이 영화를 보고 깨달은 게 있다면 ‘간직할 만한 추억’의 존재였다. 꽤 오랜 기간, 오직 한 사람과 만나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곧 먼지로 날아가 버릴 관계의 조각들 앞에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좋은 기억이 참 많았다. 당시 나를 웃게 하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 준, 그냥 놓아버리기엔 아까운 고마운 추억들이 있었다. (물론 모든 추억엔 나뿐만 아니라 상대까지 함께 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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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별은 그 대상이 누구건 최악의 경험이다. 특히 숙성된, 어쩌면 곪아서 문드러지고 있는 것들과의 이별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감히 공감하기 힘든 엄청난 것이다. 내가 겪은 첫 이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과 마주하는 것으로 차마 맨 정신으로 견딜 수 없는 낯선 것이었다. 두렵고 무섭고 가끔은 후회하기도 했으며 무너지는 내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좌절했다.
 
이 상태에서 조엘과 클레멘타인을 떠올려본다. 기억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솔직히 말하자면 변할 자신도 없고 또 상처받는 것도 두렵다. 다시 만나서 사랑을 시작하면 좋겠지. 그런데 그 다음은? 나도 나지만 내가 파악한 전 남자친구 역시 ‘변화’라는 불확실한 대상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래서 이별의 상처를 극복하는 데 조금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좋은 기억을 곱씹으며 새로운 사랑을 준비하는 게 맞다. (세상에 남자가 혹은 여자가 그 사람 하나뿐이라면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그렇지 않으니.)
 
나를 더 사랑해줄, 내가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이별의 늪에서 묵은 때를 불리고 나와 가벼운 몸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을 시작하겠다.
 
 
[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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