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아빠와 아이스크림
언젠가 한번 아빠와 단 둘이 외출을 한 적이 있었어요.
외출의 목적은 심심하니 둘이 뭐라도 하고 오라는 엄마의 지시에 따른 동네 마실.
외출의 목적은 심심하니 둘이 뭐라도 하고 오라는 엄마의 지시에 따른 동네 마실.
엄마가 아닌 아빠와의 외출은
평소 엄마가 하지 못하게 하는 행동들을 할 수 있는 날이지요.
평소 엄마가 하지 못하게 하는 행동들을 할 수 있는 날이지요.
우선 아빠 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자 창문부터 다 내리고 바람을 즐겼어요.
기관지가 약해서 조그만 바람에도 금방 기침을 해서
한번도 창문을 모두 내리고 달려본 적이 없었는데,
이때다 싶어 차의 온 창을 열고 달려보았답니다.
기관지가 약해서 조그만 바람에도 금방 기침을 해서
한번도 창문을 모두 내리고 달려본 적이 없었는데,
이때다 싶어 차의 온 창을 열고 달려보았답니다.
뭘 하고 싶냐는 아빠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다 떠오른 것은 아이스크림!
잠시 생각하다 떠오른 것은 아이스크림!
이 또한 목이 약해서 찬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기침을 해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온전히 먹어본 것이 손에 꼽혔기 때문에
이때다 싶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아이스크림 하나를 온전히 먹어본 것이 손에 꼽혔기 때문에
이때다 싶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31개의 종류로 가게를 시작했다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갔어요.
너무 많은 종류에 뭘 먹어야 하나 쭉 살펴보다
특이한 이름에 아빠와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힌
엄마는 외계인이라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골랐어요.
너무 많은 종류에 뭘 먹어야 하나 쭉 살펴보다
특이한 이름에 아빠와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힌
엄마는 외계인이라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골랐어요.
특이한 이름에 갸웃거리며 주문하는 아빠와
곧 손에 쥐어진 아이스크림 하나는 그날의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주었어요.
곧 손에 쥐어진 아이스크림 하나는 그날의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주었어요.
아이스크림 하나만을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창문을 열고 오후의 차지 않은 바람을 즐기며
동그란 초코 아이스크림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야무지게 먹었던 시간으로 꽉 차있었지요.
창문을 열고 오후의 차지 않은 바람을 즐기며
동그란 초코 아이스크림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야무지게 먹었던 시간으로 꽉 차있었지요.
사실 오늘에 와서는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31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따로 있지만,
그곳에 갈 때마다 생각이 나는 아빠와의 아이스크림 외출.
아마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던 날이라 이렇게 기억에 남아있나 봅니다.
31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은 따로 있지만,
그곳에 갈 때마다 생각이 나는 아빠와의 아이스크림 외출.
아마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할 수 있었던 날이라 이렇게 기억에 남아있나 봅니다.
#56 두 동생
친 동생은 아니지만
지금의 친 동생이 생기기 이전에
저의 동생이었던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친 동생이 생기기 이전에
저의 동생이었던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모라고 부르는 엄마의 절친한 친구의 딸로,
저보다는 1살, 4살이 어린 두 친구는
어린 날의 저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동생이었지요.
저보다는 1살, 4살이 어린 두 친구는
어린 날의 저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동생이었지요.
바쁜 부모님이 일을 마치고 오시기 전까지
매일같이 이모네 집에 가서 동생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매일같이 이모네 집에 가서 동생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집 앞 놀이터에서 누구인지 모르는 또래와 놀거나,
역할을 나누어 세상 누구보다 진지하게 연기를 하고,
언니인 제가 잘 못하는 종이접기를 열심히 연구하여 알려주기도 하며,
매일 만나 놀지만 헤어짐이 아쉬워 하루의 끝을 보내려 같이 잠들기도 하고.
역할을 나누어 세상 누구보다 진지하게 연기를 하고,
언니인 제가 잘 못하는 종이접기를 열심히 연구하여 알려주기도 하며,
매일 만나 놀지만 헤어짐이 아쉬워 하루의 끝을 보내려 같이 잠들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를 무슨 놀이를 그렇게 했는지
스마트폰도 없고 티비를 많이 보지도 않았는데
그 많은 시간을 동생들과 즐겁게 보내곤 했었답니다.
스마트폰도 없고 티비를 많이 보지도 않았는데
그 많은 시간을 동생들과 즐겁게 보내곤 했었답니다.
동생들과 함께한 일들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참 많지만
특히 이야기 하고 싶은 기억이 있어요.
특히 이야기 하고 싶은 기억이 있어요.
앞선 유년의 기억 글들에서도 말했지만
어린 시절 저는 꽤나 소심하고 말이 없던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누군가와 싸운 일도 한번도 없었는데,
어느 날 동생들을 위해 화를 내고 싸우게 되었답니다.
어린 시절 저는 꽤나 소심하고 말이 없던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누군가와 싸운 일도 한번도 없었는데,
어느 날 동생들을 위해 화를 내고 싸우게 되었답니다.
셋이 함께 수영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셔틀버스 안에서
한 못된 남자아이가 저의 두 동생을 놀리고 괴롭혔어요.
한 못된 남자아이가 저의 두 동생을 놀리고 괴롭혔어요.
동생들에게 말로만 듣다가 괴롭히는 장면을 보니
처음으로 버럭 화를 내게 되었어요.
동생들을 괴롭히지 말라고. 나의 동생이라고.
평소 조용하던 아이가 화를 내는 모습에
잠시 놀라서 벙쪄있던 못된 아이는 곧
너가 뭔데 소리를 지르냐며 큰소리를 내었어요.
잠시 놀라서 벙쪄있던 못된 아이는 곧
너가 뭔데 소리를 지르냐며 큰소리를 내었어요.
잘못했으니까 화를 내지. 나는 얘네 언니야!
라고 다시 소리를 지르자
이내 할말이 없어진 건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건지
아무 말 하지 않고 동생들을 괴롭히려고 일으켜 세웠던 몸을 고쳐 앉았어요.
이내 할말이 없어진 건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건지
아무 말 하지 않고 동생들을 괴롭히려고 일으켜 세웠던 몸을 고쳐 앉았어요.
동생들을 지켜줬다는 생각에 뿌듯해진 순간이었어요.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 건 잘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지만
소중한 나의 동생들을 언니로서 보호해주었던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당당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지요.
더 어른이 된 것만 같았어요.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 건 잘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지만
소중한 나의 동생들을 언니로서 보호해주었던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 당당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지요.
더 어른이 된 것만 같았어요.
이야기를 쓰니 새삼 보고 싶은 두 동생들,
곧 만나야겠어요.
곧 만나야겠어요.
#57 전학에의 선물
이제 좀 친구도 사귀고 학교에 완전히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될 즈음
두 번 째 초등학교를 떠나게 되었어요.
두 번 째 초등학교를 떠나게 되었어요.
원치 않는다고 전학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도,
나이도 아니었기에 받아들여야만 했어요.
마지막 날, 청소까지 다 마치고 학교 1층 현관으로 나가는데,
친했던 친구 4명이 달려왔어요.
친했던 친구 4명이 달려왔어요.
이별이 아쉽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친구들은 잘가라고 인사를 건네었어요.
그리고는 한 아이에 손에 들려 있던 손바닥만한 분홍 수첩을 건네 주었지요.
그리고는 한 아이에 손에 들려 있던 손바닥만한 분홍 수첩을 건네 주었지요.
꼭 나중에 보라고 신신당부하는 친구들의 말에
가방 속에 잘 넣어 두었다가
짐을 다 정리하고 떠나는 날 차 안에서 꺼내보았어요.
가방 속에 잘 넣어 두었다가
짐을 다 정리하고 떠나는 날 차 안에서 꺼내보았어요.
그 수첩에는 자신들의 어머니께서 앨범에 소중히 넣어두었을
더 어린 시절의 사진들이 붙어있었고,
글씨만 보아도 누구인지 딱 알아챌 수 있는 편지들이 적혀있었으며,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에 대한 짤막한 추억 거리도 쓰여 있었어요.
(볶음밥의 이야기도요.)
더 어린 시절의 사진들이 붙어있었고,
글씨만 보아도 누구인지 딱 알아챌 수 있는 편지들이 적혀있었으며,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에 대한 짤막한 추억 거리도 쓰여 있었어요.
(볶음밥의 이야기도요.)
각자의 집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끝으로
수첩은 반 정도만 채워진 채 뒤는 백지로 남아있었어요.
아마 짧은 인연을 뜻하는 것 같았어요.
수첩은 반 정도만 채워진 채 뒤는 백지로 남아있었어요.
아마 짧은 인연을 뜻하는 것 같았어요.
그날 그 수첩을 보고 아무도 몰래 많이 울었어요.
고마움과 아쉬움의 감정이었겠지요.
고마움과 아쉬움의 감정이었겠지요.
친구들의 관계는 나름 몇 달간의 전화 통화로 이어졌지만
몸이 멀어짐에 따라 자연스레 소원해질 수 밖에 없어
결국에는 연락이 두절되었어요.
몸이 멀어짐에 따라 자연스레 소원해질 수 밖에 없어
결국에는 연락이 두절되었어요.
게다가 그 수첩은 찾을 수가 없어졌어요.
그렇게 소중한 수첩을 어디에 버렸는지, 왜 없앴는지
스스로가 미워지는 순간이지만
그렇게 소중한 수첩을 어디에 버렸는지, 왜 없앴는지
스스로가 미워지는 순간이지만
그래도 세 번째 초등학교로 전학을 온 후 100번은 넘게 본 수첩이기에
이렇게 기억에 있으니 다행이다 싶어요.
이렇게 기억에 있으니 다행이다 싶어요.
또 이별에 정성스러운 선물을 준 친구들이 너무나 고마워요.
결국엔 이름도, 연락처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도 고맙답니다.
#58 부반장
학급 임원이 되는 것에 아직까지 큰 욕심도, 관심도 없던 저에게
처음으로 맡아본 임원은 두 번째 초등학교에서의 2학년 2학기 부반장입니다.
처음으로 맡아본 임원은 두 번째 초등학교에서의 2학년 2학기 부반장입니다.
전학 온 아이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지,
말 안하고 종일 앉아 있기만 하는 아이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지
어쨌든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옆 반까지 세간의 관심을 받았고
말 안하고 종일 앉아 있기만 하는 아이에 대한 궁금증 때문인지
어쨌든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옆 반까지 세간의 관심을 받았고
조금 지켜보니 모자란 아이는 아닌 것 같다는 판단과
왜인지는 모를 반 아이들의 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이 적극적인 임원 추천에까지 이어져 단독 후보로 부반장이 되었지요.
왜인지는 모를 반 아이들의 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은
이 적극적인 임원 추천에까지 이어져 단독 후보로 부반장이 되었지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
부반장이라는 책임이 부담스럽고 싫었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대화하며 학교에 적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부반장을 함으로서 학급 일을 돕고,
1학기에 이어 2학기까지 반장을 한 아이가
이제와 생각해보면 아이들과 대화하며 학교에 적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부반장을 함으로서 학급 일을 돕고,
1학기에 이어 2학기까지 반장을 한 아이가
제가 존재하지 않았던 학급의 시간 속 일들까지
많이 이야기해주어서가 아닐까 해요.
많이 이야기해주어서가 아닐까 해요.
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에는
이 역할을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부반장의 책임을 즐겁고 성실하게 수행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이 역할을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부반장의 책임을 즐겁고 성실하게 수행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이후
학급 임원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임원으로서의 기억과 감정이 남아있는 것은 이때가 유일하답니다.
학급 임원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임원으로서의 기억과 감정이 남아있는 것은 이때가 유일하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