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올해의 작가상 - 송상희 [시각예술]

보고, 보듬고, 노래하다
글 입력 2017.11.2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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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_Incredulity_of_Saint_Thomas-Caravaggio_(1601-2).jpg
Caravaggio -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02
Oil on canvas, 42 1/8 x 57 1/2, Neues Palais, Potsdam


본다

‘본다’라는 말의 무게를 실감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본다는 것의 의미는 눈꺼풀을 열고 들어오는 빛을 받아들이는 감각적 의미의 봄(see)이 아닌 의식적 ‘선택’이 담긴 봄(look)이다. 선택은 둘 이상의 것에서 하나 또는 일부를 고르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는 것을 의식적 행위로 좁혀 들어가면 그 의미는 상당히 제한적이고 편협하다. 즉, 우리가 보는 것은 전체의 매우 일부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보는 대로만 생각하고, 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 무관심하다. 선택받지 못한 것은 남겨진다. 그대로 두는 것뿐이지만, 어쩐지 남겨진 것들의 주변 공기는 차분하고 쓸쓸하다. 세상은 어쩌면 이런 근소한 차이로 만들어지고 또 갈라진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본 적 없거나 보지 않은 것들은 두렵고, 무섭고, 꺼려졌던 것이었다. 보지 않는다면 영원히 관계없는 일이 될 줄 알았지. 하지만 보지 않았을 뿐, 모든 것들은 다가오고 있었다. 다만 외면했을 뿐이다. 오히려 봤다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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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듬다

이전의 공간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커튼을 젖히면, 송상희의 공간이 나온다. 넓은 방 안에 두 개의 작품이 있다. ‘세상은 이렇게 종말을 맞이한다 쿵 소리 한번 없이 흐느낌으로’(이하 ‘세상’)와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이하 ‘아가’)가 그것이다. 

‘세상’은 네덜란드의 델프트 블루(delft blue) 타일로 만든 작품이다. 델프트 블루 타일은 중국에 그 유래를 두고 있으며, 가격이 비싸 집 안을 장식하기 위해 주로 사용한 것이다. 송상희는 이것을 이용해 폭발장면을 묘사한다. 원자폭탄이 폭발할 때 생기는 버섯구름, 가미카제 등을 묘사한 이미지는 그 내면에 섬뜩함과 고통스러움을 지닌다. 첫눈에는 이것이 고급스러운 타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응시하고 있으면 부조화의 이미지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모노크롬(monochrome)의 경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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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의 한 가운데에서는 다양한 언어로 인사말이 나온다. 이것은 태양계로 보낸 무인 탐사선 보이저 1호에 넣어 놓은 골든디스크(훗날 이것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외계의 생명이나 미래의 후손들에게 남기는 과거의 소리를 담은 레코드)의 내용 중 일부를 구글 음성 번역기로 재생한 소리라고 한다. 사실 골든디스크는 실용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장치다. 우리가 모르는 세상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생명체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우리 인간은 멸종되지 않을 것이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이처럼 ‘세상’은 한쪽에서는 인류의 공멸을, 다른 쪽에서는 영원을 이야기하며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마주칠 수 없는 방향으로 나간다. 하지만 양극단은 하나의 축이 되어 서로를 지탱한다. 마치 한 쪽으로만 무한해질 수 없다고 말하듯 균형을 잡는다. 그것을 인식할 때쯤 그 둘은 하나처럼 보인다. 앞면과 뒷면이 모여야 동전이 되는 것처럼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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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돌면 송상희의 두 번째 작품 ‘아가’가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아기 장수’ 설화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총 세 개의 채널로 이뤄지며, 각각 아기 장수 설화의 이야기 구조에 따라 태어난 아기 장수, 죽임을 당하는 아기 장수, 부활하는 아기 장수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전체적인 모티브와 구조는 설화에 유래를 두지만, 그 속의 이야기는 작가가 채집해온 다양한 장소, 장면, 역사의 파편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맥락으로 이어진다. 영상에서 흔히 말하는 몽타주(montage)라는 편집 기법이다. 인터뷰 내용을 덧붙이자면, 송상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파편화시키고 그것을 모아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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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장수설화는 여타의 영웅설화와는 다른 구조를 가진다. 일반적인 영웅설화의 구조는 ①비범한 출생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②이를 질투하는 존재의 미움을 받아 위기를 맞고, ③후일을 도모하며 수련하고, ⑤마침내 극복하며 무언가를 이뤄낸다. 하지만 아기 장수 설화는 조금 다르다.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지하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백성들 사이에 ‘아직도 지하에서는 말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퍼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비범하지만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영웅이라는 설정은 안타깝지만, 아기 장수 설화의 맹점은 거기에 있지 않다. 바로 언젠가는 태평성대가 올 것이라는 백성들의 염원이 담긴 ‘희망의 문학’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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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송상희의 작품 ‘아가’를 이루는 핵심 구조다. 영상에 등장하는 장소는 체르노빌과 아우슈비츠 등 단순히 장소라고 명명할 수 없는 이유를 간직한 곳이다. 위험하고 수고스러울 수도 있지만, 송상희는 마치 역사적 소명을 띈 것처럼 그곳에 간다. 직접 캠코더를 들고 방문해 낱낱이 그 흔적을 담고 장소가 간직한 역사를 호명한다. 그렇게 마주한 장소는 그녀가 바라봄으로써 더는 과거의 굴레에 갇힌 공간이 아니게 된다.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고,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고 있는 땅이다. 송상희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듯 과거의 아픈 상처가 남긴 자리를 직시하고, 그곳에 돋아난 새 살을 바라본다. 그 때문에 영상에서 보이는 것들은 절망적이고 참혹하기보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마치 낙원이 다가오는 것을 준비하는 것처럼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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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기

‘세상’은 당장에 종말 할지도 모르는 인류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미래를 기약하는 인류, 이 둘 사이를 연결한다. ‘아가’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머무르는 한편,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며 변화하는 현재의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종말과 미래, 아픔과 회복, 과거와 현재. 이처럼 송상희가 파편으로 만들어 가져온 메시지는 양극단에 서 있다. 하지만 마주치지 않을 것 같던 서로 대조되는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이끈다. 어쩌면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인간의 속성은 이러한 대조 속에서 그 자체로 명백한 희망의 메시지가 된다.

사실 송상희의 이야기는 범인류적인 이야기를 지극히 올바른 방식으로 다룬다. 누구나 슬퍼할 만한 것을 슬퍼하고, 그 슬픔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희망’이라는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형화된 플롯(plot)으로 이끌어 간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가 만들어낸 커다란 틀은 아쉬운 면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부르는 희망의 노래에는 힘이 있다. 사람들이 보지 않은 것을 보고, 그것을 두 손으로 보듬는다. 끊임없이 또 오랫동안 지속해온 그녀의 ‘바라봄’과 ‘보듬음’이 마침내 그녀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되었을 때, 그것은 꿈이 아닌 멀지 않은 현실처럼 느껴진다. 비가 온 뒤에 무지개를 약속할 수 없지만 부푼 기대로 비 온 뒤를 기다리는 것처럼, 송상희는 관람객의 시선을 보이지 않는 무지개로 돌린다.


[공정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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