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이야기] 틀 바깥에서도 괜찮아

세 번째 이야기, 로알드 달의 이야기들
글 입력 2017.11.16 17:4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3515201536_38383c6123_b.jpg
 

  <마틸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아북거 아북거>, <멍청씨 부부 이야기>,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로알드 달' 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라도 그가 쓴 작품은 국내에 많이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의 유년시절 책을 읽으며 알게 모르게 로알드 달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나 역시 어릴 때 로알드 달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 어릴 때는 작가 이름을 신경쓰지 않고 읽는 경우가 많은데도 이상하게 로알드 달 만큼은 예전부터 알고 있던 작가 중 하나였다. 로알드 달의 책마다 볼 수 있는 퀸틴 블레이크의 개성있는 삽화와 삽화만큼이나 개성 강한 내용 덕분이다. 그리고 중요한 점 한가지.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은 재미있다.


0-nFvByn2y0kn2b8K0.jpg
작가 로알드 달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됨으로써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재미는 이야기의 필수요소다. 로알드 달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고 그의 작품 다수가 뮤지컬 또는 영화로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도 그의 작품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 재미는 로알드 달의 작품이 일반적인 어린이책의 틀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

  어린이책에는 흔히 똑똑하지만 작고 힘없는 주인공, 그리고 그런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안락한 주인공의 세상을 위협하며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은 보통 주인공의 세상 바깥에 있는 외부인이다. 그러나 로알드 달의 소설에서 주인공을 위협하는 인물은 화나면 아이들을 해머 던지듯 집어 던지는 교장('마틸다'), 조카에게 폭언을 일삼는 고모들('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처럼 이미 주인공의 세상 속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그들은 이미 주인공의 가장 안락한 세상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겪는 갈등은 몇 배로 힘들어진다.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는 부모님이나 친척, 선생님이 로알드 달의 소설에서는 오히려 주인공에게 역경을 주는 것이다.


복숭아는 계속해서 굴렀다. 그 굴러간 자리 뒤로는 물컹이 고모와 꼬챙이 고모가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잔디밭에 엎어져 있었다. 마치 책에서 오려 낸 종이 인형처럼 납작하고 얄팍하게......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72쪽


  이야기가 진행되며 주인공의 기지 또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주인공과 대립하던 인물은 최후를 맞이한다. 그 최후란 거대 복숭아에 깔려 납작해지거나('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껌을 너무 많이 씹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우스꽝스럽고 기괴하다. 갈등이 해결될 때 있을 법한 화해와 용서, 반성의 과정은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다.


이윽고 3명을 태운 차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붕 떠났다. 마이클은 차 뒷유리를 통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웜우드 씨 부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마틸다>, 240쪽


  결말 또한 예상 밖이다. <마틸다>의 마틸다는 자신을 무시하던 부모님과 헤어져 선생님과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에서 마법약을 먹은 조지의 할머니는 너무 작아져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윌리 웡카의 경고를 무시해 몸이 변해버린 아이들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결말 부분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교훈을 주려는 일반적인 어린이책과 달리 로알드 달의 작품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만 할 뿐 굳이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무엇을 느끼든, 무엇을 배우든 그건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30567170444_e5a9e73902_b.jpg
 

  전형적인 어린이책의 틀에서 벗어난 로알드 달의 작품은 사람에 따라 낯설고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다. 몇몇 부모님들은 과연 이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보여 줘도 될지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이책'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라는 단어의 탄생과 함께 만들어졌을 거다. '어린이'라는 단어가 없을 때 어린이는 그저 몸집이 작은 어른 취급을 받았다. 그 때는 어린이만을 위한 이야기도 당연히 없었으므로 아이들은 옛부터 전해내려오는 설화나 민담, 신화를 들으며 자랐다. 옛 동화들이 지금의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근대에 접어들어 '어린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달라졌다.

  틀을 만들고 그 틀 안에 있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안정감을 느낀다. 언어는 강력한 틀이다. 어떤 대상을 한 단어로 지칭할 수 있다는 건 그 대상을 정의할 수 있다는 뜻이고 정의할 수 있다면 통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지나왔음에도 쉽게 그 시절을 잊는 어른에게 어린이는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린이'라는 단어의 틀에 현실 속 어린이를 가두었다. 어린이는 순수하고 착하며 천진난만할 것이며 그래야 한다는 막연한 환상은 현실의 어린이와 동떨어져 교훈에만 치중한 이야기를 만든다. 어렸을 때는 정해진 어린이의 틀을 벗어나는 게 무척 죄책감이 드는 일이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자라나는 짖궂고 엉뚱한 생각들은 언제나 날 불안하게 했다. 그런 생각이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오를 때면 화들짝 놀라 스스로를 질책하기 바빴다. 어쩌다가 내 생각을 어른들에게 내비칠 때면

  '어린 애가 무슨 그런 생각을 해?'

  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 반응에 더욱 위축된 나는 특정 생각을 품는 것만으로 스스로가 아주 나쁜 사람이라 생각했다.


34224495813_f89e5f0887_b.jpg
 
   
  하지만 어린이가 사는 환경이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 세상에는 화목하지 않은 가정도 많으며 못된 선생님들도 분명 존재한다. 어린이는 동화처럼 자라지 않는다. 어떤 어린이는 기쁨보다 슬픔, 분노를 더 많이 느낀다. 정해진 '어린이'의 틀 바깥에도 많은 어린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동화가 아닌 예측 불가능한 현실을 살아가며 수줍은 아이가 도망갈 수 있는 최후의 장소는 자신의 머릿속이다. 잔소리를 퍼붓는 괴팍한 할머니가 사라지길 바라는 게 큰 죄일까? 날 상대해 주지 않는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싶다 생각하는 건 잘못된 일일까?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생각의 바다 속을 헤매며 틀에서 벗어날까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로알드 달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로알드 달의 소설은 우리 내면에 은밀하게 자라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그런 이야기도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그것도 매우 재미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현실의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에 비해 어른들이 기대하는 '어린이의 틀'은 너무나 협소하다. 나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단지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느라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는 거다. 지나친 자기검열로 괴로워했던 지난 날의 나와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수많은 '착한' 어린이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교훈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번 더 웃을 수 있는 로알드 달의 이야기일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