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90년대 디즈니 공주들의 꿈 [영화]

그리고 90년대 출생 여대생의 꿈
글 입력 2017.11.1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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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고 있다.

어린 애도 아닌데, 무슨 디즈니 영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러나 그 영화들 중 한 편만 본다면 ‘내가 어렸을 때 봤던 그 영화 맞나?’하고 갸우뚱할 것이다. 어렸을 때 비디오로 애니메이션을 보던(여기서 90년대 생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원래 문학 등 예술 작품들은 지금 보는 것과 10년 후, 20년 후에 보는 기분이 다르다고들 하는데, 그래서 그런 걸까? 분명한 것은, 어린 시절보다 오히려 지금, 디즈니가 하려는 이야기에 더욱 공감을 하고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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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1993) 이후 모든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내가 본 디즈니 영화들은 2000년대 이후 픽사와 합작해서 만든 최근 작품이 아니라, 1990년대 즈음 크게 히트를 쳤던 2D 애니메이션들이다. 누군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공주 캐릭터의 성향’에 따라 1세대부터 4세대까지로 나누었는데 이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1세대 작품은 흔히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린 <백설공주>, <신데렐라>와 같은 작품들이고, 2세대는 페미니즘의 흐름에 따라 자기주도적인 모습을 비교적 강조한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등이다. 또 3세대는 본격적으로 유색 인종 여성캐릭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뮬란>, <포카혼타스>, <알라딘> 등이고, 4세대 작품이 최근의 3D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일컫는 것이다. 내가 본 작품은 <인어공주(1991)>, <뮬란(1998)>, <포카혼타스(1995)>, <알라딘(1993)> 등이니 2, 3세대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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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1992)


There must be more than this provincial life!
분명 이 시골 마을의 삶보다 더 멋진 것이 있을거야!
 

인어공주와 뮬란, 포카혼타스, 그리고 <알라딘>의 재스민의 공통점은 그들이 항상 ‘말괄량이’처럼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실이 방종하다거나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싶고, 결국 자유로워지고 싶은 사춘기 소녀들일 뿐이다. 그 소녀들의 모험심과 호기심을 번번이 좌절시키는 것은 그들을 얽매는 사회다. “바깥세상은 위험해, 너는 공주니까 궁전에 있어, 너에게 ‘걸맞은’ 사람과 결혼해” 등등, 그들을 가로막는 장애물 앞에서 소녀들은 끝없는 절망에 빠져 눈물을 흘리며 노래한다. 그러다 기회가 생기면 모험을 감행하고, 귀여운 동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세상으로 용감하게 나선다. 그리고 죽을 뻔 한 위기를 감수하고 해피엔딩. 누구에게나 익숙한 스토리구조다. 소녀들을 얽매는 사회가 주로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로 대표되고(왜 꼭 아버지여야만 하는가?) 결국에는 위험천만한 모험 끝에 아버지의 포기(?) 혹은 인정을 받아 자신이 사랑하는 ‘남성’과 결혼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포카혼타스는 제외하고. 그래서 포카혼타스를 가장 좋아한다. 이러한 틀은 4세대 애니메이션에서 깨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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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1991)


 When’s it my turn?
Wouldn’t I love, love to explore that shore up above?
Out of the sea wish I could be part of that world...

내 차례는 언젤까?
저 해변 위를 탐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바다를 떠나, 그 세계의 일부가 되었으면...
 

그런데 난, 왜 이제야 이런 뻔한 스토리에 눈물 짓고 감동을 받고 있는 걸까?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상에 달린 유튜브 댓글들을 가만히 읽다보면 이렇게 나이 먹어서(?) 공주들에게 감정 이입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왜? 나는 공주도 아니고, 그처럼 엄한 아버지도 없고, 바다 속이나 궁전에 갇혀 지내며 꼼짝 없이 정략결혼이나 해야 하는 신세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꿈을 꾸기에 자유로운 사회는 아닌 것 같다. 나를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몰아붙이는 사회, 그 속에서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는 조바심, 부담감 때문이다. 꼭두새벽부터 깜깜한 밤까지 조그만 책상 앞에서 하염없이 자유를 꿈꾸기만 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기억, 아등바등 노력해서 들어온 대학에서 더욱 아등바등 살아가는 동기들, 3학년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져 행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선배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면서도 은근한 압박과 눈치를 주는 부모님, “여자는 그저 복지 좋고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지.”라는 억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회의 통념… 그 속에서 나는 점점 갈피를 잃고, 나의 목소리를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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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란(1998)


Who is that girl I see Staring straight back at me?
Why is my reflection someone I don’t know?
Somehow I cannot hide Who I am though I’ve tried...

나를 똑바로 보고 서있는 이 소녀는 누군가요?
왜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내가 모르는 사람의 얼굴일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어쨌든 나는 내 자신을 숨길 수가 없어요...
 

내가 용기 있게 그 모든 것들에 저항하려 해도 나를 도와줄 동물 친구들이나 버드나무 할머니(<포카혼타스>), 마법의 양탄자(<알라딘>) 따위는 없을 거라는 걸 안다. 어찌어찌해서 왕자님과 만난다고 해도(21세기 대한민국의 왕자님은 누굴까? 건물주?), 그와의 키스가 화려한 해피엔딩이 아닐 거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내가 애니메이션이나 보면서 감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주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에게는 언제나 ‘영원한’ 해피엔딩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며.
 
이 글이 비관적인 글이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쩌다보니 신세한탄이 되고 말았다.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세상은 녹록지 않은 것이겠지만, 90년대에 태어나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대생인 나에겐 이 세상이 더욱 만만치 않다. 그래서인지 90년대의 디즈니 영화들의 색채가 눈이 시리게 아름답게 다가온다(요즘의 3D 영화가 대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특히 공주들이 노래 부르는 장면이 참 먹먹하다. 상심한 듯,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습이지만 희망과 간절함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눈빛이 나 같아서. 나의 이야기도 그들의 것처럼 해피엔딩일까, 자꾸만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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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혼타스(1995)


Should I choose the smoothest course Steady as the beating drum?
Should I marry Kocoum? Is all my dreaming at an end?
Or do you still wait for me, Dream giver, Just around the riverbend?

북소리처럼 안정된 순조로운 길을 택해야 할까?
코코움과 결혼해야 할까? 내 꿈은 모두 끝난 걸까?
아니면 아직도 나를 기다려 주고 계신가요, 꿈을 꾸는 자여, 구부러진 강가에서?




채현진.jpg
 

[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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