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음으로 떠나는 기타 여행', Musicscape' [공연]

눈에 비친 풍경을 음악으로 은유하다.
글 입력 2017.11.04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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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지 적적하다했더니 무심코 접어든 초가을이다. 역시나 뜻대로 되지 않은 오늘, 너무 많이 들어서 질려버린 노래들, 매일 매일이 익숙한 귀갓길의 거리는 오늘따라 더 지루해 보인다. 모든 것이 변하지 않았으면 싶으면서도 무언가 색다른 것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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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하루쯤은 수고한 나를 위해 나만의 시간을 갖자, 하고 찾아온 곳. 일찍이 티켓 하나를 받아 들고, 괜스레 경건해진 마음으로 착석하면서 깊게 숨을 내쉬었다. 무거운 코트를 내려놓으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조용한 객석과 텅 빈 무대가 하나둘씩 제 자리를 찾으니 공간의 모든 불빛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수많은 눈빛들은 일제히 한 곳만을 바라본다.

 차분한 기다림 끝에, 무대 위로 덩그러니 기타 하나를 든 연주자가 걸어 나와 간소한 의자에 걸터앉아 익숙한 듯 조율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들의 미세한 차이를 찾아 제자리로 돌려놓은 후, 드디어 마이크를 집어 든다.
 
“안녕하세요. 기타리스트 최인입니다.”

 짤막한 인사와 함께 무대가 미세하게 환해지고, 가을의 귀한 날에 찾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그의 말에 환한 미소로 대답하는 눈빛들. 역사, 자연, 음계에 대한 고뇌와 감정을 찬찬히 풀어내며 본격적으로 시작을 준비하는 최인의 자세는 사뭇 진지했다.


최인3.jpg
 

 Music, Landscape. 그는 눈에 비친 풍경들을 마음으로 그리며 음악으로 은유했다. 과거의 것들은 한데 모여 그의 손을 통해 살아 숨 쉬었고, 동양의 감성을 서양의 것으로 연주하는 이질성 속에서 합일의 조화를 느꼈다.
 
 곡들이 차례로 지나갈 때 마다 작품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조금씩 달라져 갔다. 기타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고, 때로는 마이크 없이 기타 한 대가 내는 선명한 울림과 미미한 떨림을 느끼기 위해 지그시 눈을 감기도 했다.

 첫 번째 곡 <서>에서는 침착히 한 획을 긋는 선비의 호흡, 직선과 곡선, 꺾임이 드러나는 여러 필법들을 소리에 녹여냈다. 
 자작곡 중 <감포 앞바다에서>는 플루티스트 이은미와 함께 무대를 올렸다. 역사를 통해 바라본 우리의 사상과 얼이 기타와 플룻을 타고 고스란히 나에게로 전이되었으며, 다양한 연주 기법과 힘 있는 강약 조절, 동양적인 음색들은 모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역사와 철학을 음악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새롭고도 다루어볼만한 시도라고 느꼈는데, 전반적인 컨셉은 동양적인 느낌을 살리되 각 작품들마다 도드라지는 특색이 있어 새로운 곡이 등장할 때 마다 신선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들었던 작품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곡은 단연 Hidden dimension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곡은 소장하고 싶었을 만큼 익숙하고도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마이크나 스피커 없는 무대는 청중을 더욱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고 싶게끔 만드는 것 같다. 마지막 현을 퉁기는 순간에는 흐르던 잔잔한 파동과 울림이 끝날 때 까지 가만히 눈을 감으며 숨을 죽이곤 했으니까.
 

 나는 공연이 끝난 후에도 중력이 잡아당기는 듯 한참동안 여운이 쉽사리 가시지 않아서, 그저 100분의 러닝타임이 아쉽게만 느껴졌다. 독주회답게 심플한 무대 구성이었음에도 공간의 여백을 채울 만큼 한 사람과 그의 손에 들린 악기 하나가 가지고 있는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다.  때때로 남길 것만 남기고 다 비워낸 미니멈이 어설프게 채워 넣은 것들보다 꽉 차있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최인 기타 리사이틀 Musicscape 포스터S.jpg

 
[성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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