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극 '1984' , 21세기의 디스토피아 [공연예술]

글 입력 2017.10.2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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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연극으로 재탄생되었다. 1949년 발간된 '1984'는 강렬한 서사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전체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가 상상한 1984년은 이미 지나갔지만,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수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대명사가 되었다.

나 역시 '1984'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단어 하나부터 머릿 속에 잠들어 있는 생각까지 통제당하는 사회, 상상 그 이상의 지독한 디스토피아를 매우 체계적이면서 생생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 뿐만이 아니라, 전체주의 사회를 피상적으로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던 우리 모두에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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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1984'를 연극으로 풀어낸다면 어떤 모습일까,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특히 책 속에서 상세하게 설명된 전체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시킬 것인가가 궁금했다. 복잡한 논리로 이루어진 그 이론이 대사와 시각적 요소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리고 결론은, '그렇다'였다. 물론 책을 읽고 난 다음 감상해야 더욱 이해도와 몰입도가 클 것이라는 건 자명했으나, 내 생각보다 연극은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무궁무진한 매체였다.





연극은 소설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각색되었다. 시대적 배경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재'인 것이다. 극은 이미 빅브라더 시대가 지난 후에, 사람들이 독서모임에서 한 책에 대해 토론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책은 윈스턴 스미스가 쓴 '1984'다. 그들은 최소한 전체주의 사회가 무엇인지 의식하고 있는 사람들로, 책의 내용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며 이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논한다.
 
그리고 연극은 책 속의 내용, 윈스턴이 겪었던 1984년으로 전환된다. 초반에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장면에 혼란스러웠으나, 계속해서 펼쳐지는 강렬한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니 서사 전체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책 속에서 다뤄졌던 사소하지만 중요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체제 전복을 꿈꾸는 윈스턴과 그 최후'라는 큰 흐름에 중심을 잘 맞춘 훌륭한 각색이었다. 또한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 감시의 눈을 연상케 하는 빨간 조명, 무대 전체를 장악하는 텔레스크린 등 모든 것이 지배되는 디스토피아를 작은 공간 안에서도 효과적으로 시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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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배우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승헌(윈스턴 역), 이문수(오브라이언 역) 등 배우들의 소름끼치는 연기 덕에 극 속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빅브라더를 의심하며 불안해하다가, 형제단을 만나 희망찬 꿈을 꾸지만,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윈스턴의 모습이 처절하게 전달되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부당원의 위압적인 이미지를 완벽히 소화한 이문수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모든 감정과 신경이 극으로 치닫는, 긴장감 넘치는 100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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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속 책 '1984'는 원래 소설과 그 결말이 조금 다르다. 윈스턴이 당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독서토론 회원들은 자신들이 그 시대와는 다른,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연극은 그 자유마저도 조작된 것임을 암시하며 막을 내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자유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통제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어쩐지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연극 '1984'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소설 '1984'를 현대로 가져온다. <1984>가 오래된 소설이 아니라,  지극히 동시대적인 작품임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박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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