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병구는 과연 지구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 연극 < 지구를 지켜라 > [공연예술]

글 입력 2017.10.21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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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외계인'으로부터'지구를 지켜라'


병구는 대기업 재벌 3세 강만식을 납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유는, 그가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외계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만식은 이 황당무계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 이유가 돈 때문이라 여기고 협상을 시도한다. 그러나 병구는 돈 때문이 아니라며, 알수 없는 외계인 얘기만 계속 할 뿐이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병구를 그저 미친놈으로 여긴다.(사실 그의 복장과 행동, 그리고 같이 있는 순이를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갈수록 관객들은 병구의 사연들과 함께 우리 사회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대해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병구의 신파와 만식의 코미디


병구는 아버지의 가정폭력 아래에서 자랐다. 아버지를 죽여 소년원에 가고, 친구와 일하던 간장공장에서도 무시를 당하며 살았다. 대기업의 부실공사 사고로 여자 친구를 잃고, 같은 기업의 갑질로 인해 어머니마저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던 와중 서커스단 공연에서 우연히 순이를 만나게 되고, 순이에게서 연민을 느낀 병구는 그녀에게 ‘지구를 지키자’고 제안한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건이 외계인이 한 짓이라고 여기고 병구는 순이와 외계인을 소탕하기 시작한다. 병구의 서사는 처참하다. 급격하게 우울해지는 극 전개에 관객들은 혼란스럽지만 곧 병구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게 ‘흙수저’, ‘금수저’에 대한 불편함이 자연스럽게 극에 묻어나온다.

만식은 외계인으로 의심받으며 말도 안 되는 심문을 받고, 고문을 당한다. 그러나 곧 기세는 만식으로 넘어가고, 만식은 병구의 장단에 맞춰주기 시작한다. 어머니를 살리기 위한 주문이랍시고 말도 안 되는 외계어를 병구에게 시키기도 한다. 분명 만식은 납치당한 입장이지만 결국엔 쩔쩔매는 쪽은 병구인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우위에 서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흙수저’의 현실을 볼 수 있다.

만식이 주문을 외울 때 관객석에서는 큰 웃음이 터진다. 순이의 짧은 원피스를 입고 코믹한 자세로 외계어 주문을 하는 만식은 이 극이 ‘코믹극’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결국 슬픈 건 병구가 다 하고, 웃긴 건 만식이 다 한다. 이렇게 또 두 인물이 대조되고 만다.




결국 병구는 지구를 구하지 못한다. 연극 < 지구를 지켜라 >는 우리 사회에 유쾌하면서도 직설적으로 덤비는 극이다. 공연은 마지막까지 웃음을 주고, 즐거운 커튼콜로 마무리 된다. 하지만 공연장을 나서면서 결말과 바뀌지 못한 현실에 마주할 때의 씁쓸함은 떨쳐낼 수 없다. 다음에 이 공연이 다시 올라올 때, 우리 사회는 과연 조금이라도 변했을까?


[박희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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