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2.0] 공감의 색으로 물들이는 일 뿐이다.

글 입력 2017.10.14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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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제관계에서 함의를 갖는 갈등과 분쟁에 대해 조사하고 영어로 15분 간 설명을 하는 수업이다. 눈앞에 몇 가지 선택지들을 놓고 심사숙고하던 중 지난 학기 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가 ‘위안부’를 주제로 발표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한 선배가 ‘역사에 얽매이면 발전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는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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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선배가 유별난 것은 아니다. 위안부에 대한 논의가 불거질 때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이고,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매번 씁쓸해진다. 일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게 고통스런 역사의 산 증인인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을 위로하는 것보다 중요할까? 당장 자신의 친구가, 동료가, 자식이 그런 아픔을 겪었다고 해도 과거니까 흘려보내야 한다고 말할까?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되는 질문들, 벗어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다 문득 그녀들이 느껴야 했을 배신감이 떠올랐다. 영화 <귀향>처럼, 귀향만을 꿈꿨을 그녀들을 기다렸던 건 위안부에 끌려갔던 사실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차가운 ‘몸이 더렵혀진 사람’이라는 시선들이었다. 그로부터 비롯되었을 배신감, 마음 놓고 원망할 수도 없었던 시간을 견뎌낸 지금, 그녀들을 향한 사회의, 주변인들의 시선은 과연 좀 나아졌을까? 분명 나아졌을테지만, 여전히 그 선배같은 사람들이 흔한 걸 보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위안부 할머님들이 바라는 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다. 쓰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배상금 몇 푼이 아니라.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사과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아픔, 공감 받지 못한 과거에 더해 그것을 덧나게 했을 배신감을 씻겨내 드려야 한다. 미래니, 경제니 하는 건 국가를 책임지는 이들의 몫이지 우리 같은 대중들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영화 <아이캔스피크>는 이러한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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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나옥분(나문희 역)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기피 1순위다. 구청에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민원을 넣으러 오는 도깨비 할매라 불리고, 운영하는 수선집이 있는 시장통에서도 소위 ‘또라이’라고 불릴 정도다. 유일한 친구는 진주댁이라 불리는 슈퍼마켓 주인과 함께 영어 공부를 하며 친해진 구청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역) 정도.

 몇 십 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 넘어 박민재와 티격태격, 알콩달콩 가까워지던 중, 그런 나옥분 할머니가 사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 이후부터 큰 줄거리는 나옥분 할머니가 같이 위안부 시절을 겪었던 친구를 대신해 미국에서 위안부 결의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성공적으로 증언을 하는 이용수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건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반응’ 이었다.


 엄마! 나한테 "욕봤다"라고 한마디만 해주었으면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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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옥분 할머니가 연설을 하기로 마음먹고 난 뒤 엄마의 무덤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그녀는 말한다. 왜 나한테 평생 숨기고 살라고 했냐고. 욕봤다고 안아주기나 하지 왜 그랬냐고. 나옥분 할머니는 그게 서러웠던 것이다. 무슨 일을 겪더라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엄마에게조차 입단속 하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 엄마도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시대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본성을 거스르고 상처를 은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최소한 엄마에게 만큼은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었던 ‘소녀’ 나옥분이 무덤 앞에서 그 배신감을 토해 냈던 것이다. 그러면서 말한다. 이젠 그 약속 못지킨다고, 아니 안지킨다고.


 서운해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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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많이 늦어졌지만 자신과 함께 터전을 가꾸어 가는 시장 사람들로부터 위로받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옥분 할머니를 싫어할 때도 옆을 지키던 진주댁이 위안부 피해 사실을 밝히고 난 뒤 자꾸만 할머니를 피해 다닌다. 내가 다 섭섭할 정도였는데 나옥분 할머니는 오죽했을까. 그녀는 진주댁을 쫓아가 붙들고 이제 같이 말도 섞기 싫은 것이냐며 따지고 든다. 그랬더니 진주댁이 하는 말이, 서운해서 그랬단다. 그 마음을 어떻게 혼자 앓고 지냈냐며, 왜 자신한테 말하지 않았냐며. 묵직한 덩어리 같은 말들을 울컥 쏟아내 버린다. 그 진심어린 투정에, 매일 원수처럼 으르렁대던 젊은 족발집 사장이 수선집 문 앞에 낙엽처럼 두고 간 선물에, 할머니를 피하기만 하던 구청 직원들의 응원에, 그녀의 과거가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이제야 제 위치를 찾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원래부터 그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전혀 아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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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세월호도, 위안부도 노란색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하는걸까. 그토록 힘겨운 사연과 죽음을, 개나리나 병아리와 같은 색으로 칠하는 것일까. 진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노란색이 따듯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노란색이 봄날의 햇살만큼, 병아리의 솜털만큼 부드럽고 포근해서, 아직 다 흘러가지 못한 과거를 꼭ㅡ감싸 안아주려 하는 것이라고.

 예나 지금이나 나옥분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변하지 않는다. 매몰차게 거절했던 조국도, 가족도 그 자리에 있다, 일본은 1940년대에도, 2017년에도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았으며 결론적으로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캔스피크가 보여준 공감의 모습은 노란색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것이 말이든, 행동이든, 물건이든 나옥분 할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이 노랬다. 그래서, 예전과 지금은 아주 많이 다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뿐이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견해가 아니라, 그녀들에 대한 진심어린 공감, 그리고 이해. 그렇게 세상을 조금씩 개나리빛으로 물들여 그녀들의 과거를 환하게 위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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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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