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의 놀이, 글 [문학]

글 입력 2017.09.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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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무엇일까. 이 것은 처음에는 심오한 질문이 아니었다. 에디터 분들, 그리고 이 사이트에 글을 쓰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사이트의 책 관련 카테고리에는 '문학' 밖에 없다. 그게 이상했다. 그래서 나온 질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문학소녀의 낭만적인 손가락과 함께한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그 낭만성을 가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기억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문학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책 관련 오피니언을 쓸 때마다 그 카테고리에 문학을 선정하는 것이 마치 아저씨의 집에 키티가 놓여 있는, 잘못 배송된 택배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폭력이다. 아저씨가 키티를 좋아할 수 있는데. 나도 모르게 스스로 '나는 문학 소녀가 아니야.' , '나는 비문학을 추구할 거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별성'에 나를 가둔 것이다. 그 껍질이 갑갑했다.


코스모스 밭, 김수희.jpg
학교 기숙사 앞의 해질녘 코스모스 밭. (photo by 김수희.)


코스모스는 문학 소녀들 같다.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으면 너무 예쁜 꽃밭. 나는 그 속에서 사진을 찍힐 자신이 없었다. 꽃놀이를 간 친구들은 도서관에 처박힌 나에게 코스모스 사진을 보냈다. 그래서 학교 앞에 있는 코스모스가 싫었다. 그렇게 가을은 날로 우울한 계절이 되었다. 왜 코스모스가 싫어? 자문해 보았다. 어쩌면 질투리라. 문학에 대한 케케묵은 질투.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문득 시인 L군 (임민혁, 20) 이 생각났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편의상 L이라고 부르고, 존댓말을 쓰겠다. 글쓴이는 S라고 칭하겠다.





L : (웃음) 내가 도와줄 게 있다면서요?

S : 뭔가 문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이랑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진지하게 써본 사람 말이에요.

L : 아, 그건 그렇고 창평고 관련 기사 잘 읽었어요. (L군은 창평고 동창이다.) 그 글도 상당히 문학적이었는데. 감동했어요.

S : 정말 고맙네요.. 사실 그게 문제에요.

L : 무슨 문제?
 

스핑크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jpg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와 그 것을 풀고자 하는 오이디푸스.


S : 아직 말로 표현하기에는 어렵지만, 해볼게요. 나는 성격 특성상 주위에서 글을 좋아하는, 그리고 쓰고자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왔는데, 특히 시라던가, 소설이라던가. 그런데 그 친구들이 추구하는 무언가는 나랑 뭔가 굉장히 달라보였어요. 일단, 나 같은 경우에는 모든 경우에서 타협 가능하지만 진리의 문제에 대한 경우에는 타협이 불가능할 거 같아요.
 
L : 추구하는 가치같은 거 말하는 건가요? 사람마다 다른 그런거?
 
S : 여기서 내가 쓰고 있는 너무 말들이 추상적이라서 (L군 : 음.. 조그만 풀어서..) 그러니까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기본적으로 전제가 깔리는 느낌이에요. 어떤 개소리를 늘어놓아도 좋으니 진리의 가치는 훼손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추구해야 한다! 그 방법이 깨부수는 방법이든 어떤 방법이든지!
 
L : 그게 당신이 만난 사람들이 추구하는거에요?
 
S : 물론 내가 모든 철학 토론의 장에 있어 본 적은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는.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나는 너무 좋고.. 막 두근두근해요.
그런데 문학은 뭔가 조금 다른 거 같아요. 흠 옛날에 내가 쓴 글을 한 번 보여 줄게요.
 
L : 네 (웃음)
   

약간의 회의와 대부분의 신념으로 세상과 사람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묘사한다. 
나는 이 일에 완벽주의적인 나를 사랑한다. 
인간에 대한 연구는, 그 실질적 무쓸모에도 불구하고, 이어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몇천년을 바라보고 지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몇천년의 사랑이다. 

우리네들의 삶은 마치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짧고 애매모호한 상황이다. 
필연적이지 못한 순간인 주제에 필연적으로 환상적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랑했다.


L : 철학에 대한 당신의 생각인가요?
 
S : 네. 이 글을 쓰고 철학과에 가겠다는 마음을 세웠거든요.. 근데 내가 생각하는 '이야기'와 문학이 생각하는 '이야기'는 조금 달라보였어요. 혹시 저 위의 선언을 읽고 당신의 생각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나요? 그게 뭔가 접점일 거 같아서!
 
L : 나는 미안한데 철학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다만 철학이 당신 생각처럼 몇천년을 이어온 보편적인 사랑이라면 문학은 일시적인 그 순간의 애정이고 좀 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부류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는 어렵다..라고 한숨을 쉰 후 계속했다.)
 
애초에 (문학은) 진리가 없는 쪽이라서 작품마다 진리가 있고 가치관이 다 다른 거 같아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논할 수 없는 거 같고.. 흠.. 이게 지금 이야기의 논점이 맞는 걸까요?

(고민 후 한참 뒤에)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사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그냥 지금 아니면 못 느끼는 걸 생각으로 쓰는 거 거든요. 문학 자체에 무슨 의견이나 소신이 있다기보다는 일기 쓰는 느낌 이에요.. 학문으로 접근하지 않아서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어요.
 
S : 헉 내가 너무 학문적으로 접근했다면 미안해요..
 
L : (웃음) 아니 그건 아니야 철학이나 문학은 답이 딱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서 그래요.
 
S : (고민 후 한참 뒤에) 흠 그러면 질문을 좀 바꿔서, 문학에게서 감동을 얻는 건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음.. 당신이 말한 대로 문학을 창작하는 자가 스스로의 일시적이고 이기적인 감정을 불어넣어서 그 문학을 창작했는데, 왜 사람들은 그런 감정에 대해 감동을 받는 걸까요?
 
L : 공감할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무언가에 부여한 의미가 좀 더 새롭게 다가올 수 있게 받아들이는 건 뭐랄까 삶을 풍족하게 한다 해야 하나 (후, 오랜만에 생각이라는 걸 해보네)
 
S : (잠시 웃음) 내가 지금 신기해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내가 철학에 감동받는 이유도 공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L : 오 비주류끼리 통하는 게 있나 봐요.
 
S : 이 세상 모든 인문학적인 글들은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걸까요?
 
L : 결국 다 사람 사는 이야기고 내가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의식하지 않은 거니까 다른 사람이 내 삶에서 끄집어주고 보여주는 느낌도 있어요.
 




나뭇잎.jpg
나뭇잎은 시간이 지나면 색이 달라 진다. 그렇다면 초록색 나뭇잎은 참인가, 거짓인가?


S : 당신은 글을 쓸 때, 스스로 이 글이 참이라고 생각하고 쓰는 편인가요, 아니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쓰는 편인가요?
       
L : 정말 시시한 말이겠지만 참이라고도 생각 안하고 거짓이라고도 생각 안해요. 쓸 때는 진심이었는데 쓰고 나면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들이 담겨 있을 때도 있고 의도와는 다르게 글이 나올 때도 있어요. 근데 그걸 참 거짓으로 나누는 게 어려워요. 그냥 그런 생각을 안하고 글을 써요. 가끔은 진짜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나 적을 때도 있고요.
 
S : 하지만 나는 의도와는 다른 글이 나오면 스스로 참과 거짓을 헷갈려하고, 다른 누군가가 그런 내 글을 읽고 공감을 해내면 어떤 의뭉스러움에 빠지는 거 같아요. 그래서 처음 의도를 찾을 때까지는 그 글을 놓지 못하고 계속 쓰는데..
 
L : 내 의도가 있더라도 누군가가 다르게 해석하면 낯설어지기도 하고요.
 
S : 맞아요.. 결국에는 읽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내기도 하고
 
L :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해석하라 말하는건 좀 아니니까요
 
S : 오해 속에서 만들어지는 글..
 
L : 맞아요..
 
S : 참 이상해요. 공감하지 못하면 분명 이해하지 못하는 게 ‘글’인데도 동시에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어요
 
L : 그게 나쁜 건 아니라고 봐요. 다들 똑같이 공감하고 이해해버리면 그건 슬픈 일이거든..
 
S : 뭔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어쩔 수 없는 관계,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뭔가 더 반짝반짝하고 그런.. 하지만 동시에, 저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를 소개하거나, 내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의지 같은 게 글을 쓰는 힘이 되는데, 가끔씩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해주면 뭔가 슬퍼지기도 하는 것 같긴 해요. 글로조차 나를 설명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L : 문학은 확실히 나의 창작물이니까 그런 생각이 들긴 하지요
 
S : 그런데 그럴 때가 있어요. 그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이해한 것은 글을 쓴 '나'가 아니라 글을 읽은 그들이라는 걸 알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요. 그러니까 글 읽은 얘들한테 이런 말 자주 듣잖아요. "내가 생각해 왔던 것들을 말로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야!"라는 말..
 
L : 그게 글을 읽을 때 좋은 자세겠죠.
 
S : 흠, 당신은 주로 무슨 말을 들어요?
 
L : 내가 주로 듣는 말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라는 말이에요.
공감이랑은 좀 동떨어지긴 하지요. 내가 추구하는 건 내가 유니크하게 생각할 수 있는 느낌을 글로 쓰고 감동을 주자는 거거든요. 새로운 표현을 찾고 참신한 소재를 쓰고 통속적인 것에서 최대한 벗어나보자 뭐 도전적인 걸 써보자 이런거에요. 그렇게 해서 감동을 주고 싶거든요.
 
S : 그러니까 당신은 공감을 얻는 것 보다는 감동을 받는 게 좋은 거에요?
 
L : (고민) 그게 더 좋은거 같아요. 하지만 공감을 해야 감동을 하는거니까.. 복잡하다
 
S : 그런 경우도 있잖아요. 그 너무 특별하고 우월하면 그냥 입 떡 벌리고 보게 되는 거. 그러니까 신을 보는 시선처럼..
 
L : 시인 이상처럼? 근데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S : 음.. 근데 공감의 문제라면, 이상 시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공감 가능하지 않나요?
 
L : 그렇죠. 물론 읽으면 알겠지만 하나하나 파고들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S : (고민) 흠, 파고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L : 시어 하나하나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는 거 말이에요.
 
S : 아 (웃음) 그렇다면 그건 인정할 만 하네요. 아 근데 이상 시 중 ‘이런 시’라는 시가 있잖아요.
   

이런 시(詩)
- 이상 -
 
역사(役事)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木徒)들이 그것을 메고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變怪)로다, 간데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詩는 그만 찢어 버리고 싶더라

 
L : 맥락이 없는 시긴 하지요.. 근데 구절 하나가 감동적이라서 입에 오르내리는 거고요.
 
S : 흠 그런가.. 나는 그 감동적인 부분보다 위에 부분 돌 이야기 부분에서 엄청 아픈 느낌이었어요. 아래 부분은 그냥 포장 같고.. 어떻게든 그 아픈 상황을 예쁘게 끝내보려는 거 말이에요.
 
L : 저는 포장이 너무 아파보이더라고요. 예쁘게 끝낸 느낌보다는 자학하는 느낌이었어요.
 
S : 흠.. 일단, 나는 자학이라는 거 자체가 예쁘게 끝내보려는 연극적 행위라고 생각해요. 어떤 이야기 속에 자신을 위치시켜서, 자학이라는 필요성을 끄집어 내서, 스스로 자학함으로서 자신 속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예쁘게 풀어 내는 것.

그러니까 자기가 각본 쓰고 연출 하고 연기까지 해서 울고 싶은 거 운다는 거죠. 그리고 내가 문학을 굳이 철학과 분리시키고 싶었던 이유는, 어쩌면 그런 연극성 때문일 지도 모르겠어요.. 혹자는 그런 문학의 과정을 승화라고 하지만.. 음.. 그냥 그게 진리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나봐요.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 A를 때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뭔가 문학은 인형 놀이를 하면서 사람 A와 동일시한 인형 A를 나와 동일시한 인형 Z로 때리는, 어떤 인형 놀이를 하는 기분이에요.
 
어쩌면 이런 제 추구를 위대한 '진리의 길'이라고 부르는 것 보다는 그냥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하고 이리 보고 저리 본다고 보는 게 정확한 거 같아요. 그래서 ‘인형 놀이’에서 '벗어난', '비'문학이 적절한 표현인 거 같기도 하고요.
 
(침묵)

L : 자기 위로가 맞겠지요..

S : 자기 위로..




  
숲 속.jpg
곧 색이 변할 숲 속을 믿으며 천천히 걸어가 본다.


S : 아 근데 당신은 왜 문학을 좋아하게 된 거에요?
 
L : 나도 잘 모르겠지만 시집 읽는걸 좋아했어요!
 
S : 오.. 그건 마치 내가 비문학 책 읽으면서 ‘와 이 작가는 어떻게 이 글자 다음에 이 글자를 집어 넣을 생각을 했지!’ 하면서 좋아하는 거랑 비슷한 걸까요? 사실 시집 읽으면 어려워서.. ‘왜 시집은 팔리는 걸까’라는 생각도 해보고 궁금해했거든요
 
L : 맞아 맞아 그런 느낌이에요. 나는 진짜 중학교 때 할 게 없어서 책을 읽었어요. 근데 쉽고 짧은 시에 흥미가 생겼거든요. 그렇게 찾다보니까 이제 시가 일상이 된거에요.
   
S : 아..일상.. 덕후는 통하는 거 같아요. 어느 샌가 일상 속에 녹아 있죠!!





코스모스 밭 2, 김수희.jpg
다시, 학교 기숙사 앞의 해질녘 코스모스 밭. (photo by 김수희.)


S : 그렇다면 평소 일상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긍정적인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L : 부정적인 생각이 더 많지요.
 
S :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나도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편인데 계속 부정, 부정, 부정 하다가 한 순간 긍정! 이 떠오르면 그 때 좋은 생각들이 반짝반짝 떠오르니까 그런 상황을 즐기는 건 그렇다 치고 부정적인 생각을 의도적으로 하는 사기꾼 같은 기분이에요. 다음 창작을 위해서 말이에요.. 당신은 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해요?

L : 부정적인 생각을 왜 하는 진 모르겠지만 작문할 때는 도움이 되는거 같아요.
  
S : (혼자 생각하다가 웃음) 나는 지금까지 내가 접한 당신의 글이 뭔가 희망적이어서 ‘참 밝은 생각 속에서 사는 친구겠구나’ 했는데.. 내 편견이었나 봐요. 뒤통수 맞은 기분이라 신기해요.
 
L : (웃음) 사실은 되게 슬픈 시들이에요..

S : 근데 분명 다른 점은 있었던 거 같아요. 나 같은 경우에는 슬픔을 글로 쓸 때 비꼼이나 화냄으로 표현하는데 얘는 좀 다르네? 하고. 이런 시를 쓰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나 궁금했어요 (웃음) 좀 더 밝게 살 수 있나 이런 생각 말이에요. 그리고 서정 문학이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 있어서..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을 정확히 아는 기분이야. 그래서 질투하기도, 궁금해 하기도 했던 거 같아요.

 



창평.jpg
어쨋거나 기억 속에 있을 창평.


L : 나중에 또 하고싶은 말 있으면 말해줘요! 같이 생각해보게.. 우리 덕후잖아요

S : 응응 정말 고마워요. 맞아.. 멸종위기종

(웃음)







난 어쩌면, 영화를 만드는 일로,
신의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이랑, 신의 놀이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작가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요구를 제외하면 다음의 네 가지 이유로 글을 쓴다고 했다.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충동.
4. 정치적 목적.

나는 저 번호들 중 하나에 수렴된다기보다는 그 행간 어딘가에서 늘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태초의 의도를 찾아 가는 과정인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코스모스는 저녁이 되면 꽃송이만 남아 둥둥 떠다닌다. 그래서 저녁에 혼자 코스모스 밭을 걸어가다 보면 곁에 요정들이 있는 기분이 든다. 나도 모르는 소리들로 속살거리는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남기는 것은, 내가 혼자 밤의 코스모스 밭을 걷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반딧불이인줄만 알았던 벌레를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 앞에서 사라진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 또한, 단지 좋아하기 때문이다.




성채윤.jpg
 

[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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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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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선
    • 익숙한 코스모스를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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