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아남았기에, 울려 퍼지는 귀곡성 - 연극 ‘트로이의 여인들’ [공연]

글 입력 2017.08.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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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화의 여신이 내던진 사과 한 알은 전쟁을 야기했다. 승리의 열쇠가 된 ‘트로이의 목마’라는 작전은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이 내부를 무너트리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전쟁과 유명한 작전의 이름을 제외하고 ‘트로이’가 언급되는 부분은 많지 않다. 신화와 역사는 조금 다르지만, 트로이의 존재와 외부에 의한 멸망이 확인되었으니, 마냥 신화 속의 이야기로만 여길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인다 했던가. 패배한 트로이의 장군들보다 지혜와 용맹을 뽐내며 승리한 그리스의 군사들의 이야기로 ‘트로이 전쟁’이라는 신화가 회자되는 것이 사실이다. 짓밟힌 도시와 살육당한 남자들, 그 사이에서 살아남은 여인들의 귀곡성이 연극과 동시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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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왕비 헤카베(위), 그녀의 딸 카산드라(아래)>

 
  연극의 주요 화자는 멸망한 트로이의 왕비 헤카베. 자신을 비롯해 살아남은 트로이의 여인들의 운명이 승전국인 그리스에 의해 결정된다. 망국의 왕비는 그 현장을 바라보며 자신을 깎아내리는 심정으로 딸들을 보낸다. 자신들을 무너트린 나라의 품으로 자신의 딸들을 보낸다.

“트로이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우리도 이미 트로이의 왕족이 아니다.
운명은 변했다. 견디어 내는 수밖에”
 
  그녀들은 반항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침대 시종으로, 누군가는 부엌 시녀로, 누군가는 수행 몸종으로 보내진다. 가기 싫다고 버티거나, 왜 그래야 하느냐며 항의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운명에 따를 뿐이다. 먼저 가는 이들을 향해 부르는 노래는 아우성의 일종이다. 살아남았기에 울려 퍼지는 그녀들의 귀곡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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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있는 트로이의 여인들, 연극의 시작>
  
 
  그녀들은 살아있다. 그녀들은 살아있나? 숨은 붙어있지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한 채, 죽을 자유도 없는 그녀들은 과연 살아있나?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못하기에, 자신들이 사랑한 땅도, 나라도, 남편도, 자식도 잃었으나 원망스럽게도 자신은 살아남았기에 울려 퍼지는, 울려 퍼질 수밖에 없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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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오른쪽),
그리스의 전령 탈티비오스(왼쪽),
갓난 아들을 넘겨주는 안드로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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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김대경, 기타 엄태훈>

  
  연극은 작년 봤던 ‘왕과 나’라는 연극을 연상시켰다. 화려한 무대장식이나 효과가 아니라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를 중심으로 무대를 채웠다. 배경이 시각적으로 바뀐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를 따라가며 우리는 성 위에 있기도 했고, 불바다가 된 트로이를 바라보기도 했다. 빈 곳을 채우는 음악 역시 비극적 분위기를 살리기 충분했다. 다만 궁금했다. 꾸짖음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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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여 앉아있는 트로이의 여인들>


  전쟁은 힘의 논리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 승자는 역사를 쓰고, 패자는 역사의 뒤로 사라진다. 몇 천 혹은 몇 만 명. 단순히 숫자로만 전해지는 패전국 피해자들의 죽음. 역사의 흐름 속에서 개인적인 아픔은 숫자 뒤로 지워진다. 개인적인 아픔을 통해 시대의 뒤틀림을 비판하고, 도덕적, 철학적으로 부당한 행동임을 지적하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트로이 전쟁이라는 역사적(혹은 신화적) 사건을 통해 피해자들의 개인적 아픔을 들춰내는 것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본디 기획한대로 억압자들을 향한 철학적 비판을 제기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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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의 여인들 무대 인사>


[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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