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끝까지 뻗어라, 나의 목소리. 연극 < 트로이의 여인들 >

색다른 연출 안에서 피어난 그녀들의 기개
글 입력 2017.08.18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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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연극 < 트로이의 여인들 >
에우리피데스  원작
이수인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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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종로구에 있는 소극장, ‘예술공간 서울’에서 그녀들을 만났다. 표정을 잃은 얼굴, 갈 곳 없는 눈동자, 떨리는 몸…. 잔인하고도 야속한 운명을 두고 가냘픈 어깨를 애써 진정시키는 그들에게서 나는 부드러운, 그러나 확고한 용맹함을 보았다.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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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트로이전쟁이 끝난 이후, 전쟁에 패하고 그리스에 끌려온 여인들은 한 명씩 앞으로의 삶을 배정받는다. 누군가는 원수의 아내로, 누군가는 적장의 시종으로…. 자신의 갓난아기를 빼앗기면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 것을 알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미는 결심에 서, “데려가시오.”라고 말한다.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끔찍한 운명을 받아들이되 굴복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들의 정신이다. 비록 지금과 앞으로의 삶이 괴로울지언정, 적이 만든 길에 서서 울지 않는다. 보란 듯이 꼿꼿이 서서 그 길을 똑바로 걸어간다. 국가를 잃어도 신념은 잃지 않는 그녀들의 용감한 모습에서 무사의 기개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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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는 내용 자체가 어두우므로, 자칫해선 분위기가 쉽게 가라앉을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극단 떼아뜨르 봄날은 이를 다양한 요소를 접목시키며 이색적인 무대로 승화시켰다. 연출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배우들은 약 70여 분의 극 전반에 걸쳐 현대무용과 같은 안무, 혹은 그와 같은 몸짓을 활용하고 규칙이 느껴지는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등 그 연기에 있어 신선함을 가미해 보여주었다. 이는 음악적 요소와도 긴밀히 연계되어 이루어졌는데, 무대 오른편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콘트라베이스와 기타 이외에도, 탈티비우스의 지명 및 북 치는 소리, 배우들의 일괄적 속삭임, 각종 효과음 등을 상당 부분 사용하여 청각적 요소를 극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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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와 같은 현대적 안무나 잦은 음악적 요소 및 효과음의 도입이 편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형태가 다소 난해하게 다가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대를 함께 진행해 나간다’ 라기보다 한 치 떨어져서 신기한 무언가를 관람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몰입을 저해한다고 해석하기보다는 또 다른 집중력을 자극해 한 발 바깥에서 계속 살펴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실험적인 무대는 언제나 새롭고, 우리는 그곳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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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소화해낸 배우들의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무엇보다 연출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떼아뜨르 봄날이 말한 대로, 그들이 추구하는 독창적 미니멀리즘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절제된 양식미, 시적-음악적 화법 등은 그들이 가지 않는 길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그들의 용감함을 응원하며 이처럼 신선한 자극을 일컫는 무대를 더욱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바이다.





작품은 오는 일요일(20일)까지 예술공간 서울에서 무대에 오른다.






사진 및 이미지 출처: 아트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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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게시물은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의 문화 초대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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