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리움으로 찾아낸 기억의 조각들, 바나나우유 [문학]

글 입력 2017.07.20 22: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바나나우유.jpg
 

중학교 2학년 때, 급식실이 공사를 하는 바람에 한동안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던 적이 있다. 학교에서 주문하는 단체 도시락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 엄마는 매일 아침 내 손에 직접 당신이 새벽 아침부터 만든 도시락을 쥐어 주셨었다. 도시락은 또 얼마나 화려한지, 급식실 공사를 하는 세달동안 한번도 같은 도시락을 먹은 적이 없다. 어느날은 밥 위에 완두콩으로 하트가 그려져 있는가 하면, 또 어느날은 밥만 먹기 퍽퍽하지 않냐며 보온통에 미역국을 담아준 날도 있었다. 도시락에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도시락 통 위의 하트모양 포스트잇이었다. 우울하고 힘든 날에도 엄마의 쪽지를 보면 그런 기분들이 사르르 녹곤 했다. 어느새 급식실 공사가 끝이 나고 나는 급식의 일상으로 돌아왔으며, 거기서 더 많은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그때의 그 도시락통 속 식은 밥을 잊지 못한다. 추억 때문인지, 아직도 뜨거운 밥보다는 식어서 하나로 뭉쳐진 (도시락 느낌이 나는) 밥을 좋아한다.


2.jpg
출처 : 책 [바나나 우유]


누구나 하나쯤은 추억의 맛을 갖고 있다. 어떤 음식은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나쁜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바나나 우유.’ 오늘 이야기할 책의 이름이다. 책 표지부터 익숙한 바나나 우유가 그려져 있다. 책 속에는 50가지 정도의 익숙한 음식들과 그것들에 담긴 작가의 추억, 감정, 일상들이 담겨있다. 엄마가 해주었던 탕수육, 형제들과 아랫목에서 읽었던 만화책들, 따스한 밥냄새에서 받는 위로, 알덴테 파스타와 인생의 상관관계 등 일상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샌가 마음 저편 어딘가에 남아있던 그리운 음식들과 그 때의 추억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먹는걸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먹는것과 관련 된 추억들도 참 많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나에게 엄마가 “이것만 다먹으면 유치원 가자.”며 사주었던 커다란 빼빼로나, 동생이 일주일 동안 입원했을 때 동생을 간호하기 위해 병원에 있던 엄마 대신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없었던 아빠가 사준 순대 볶음 같은 것들 말이다. 처음 어금니를 뽑고 동태찜을 먹다가 가시가 잇몸에 박혀 운적도 있고, 자두를 먹다가 이가 빠지기도 했다. 엄마가 스무살 때부터 다닌 비빔밥 집은 내가 고등학교 친구들과 자주 갔던 단골 맛집이 되어있었다. 빼빼로 데이나 발렌타인 데이만 되면 엄마는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라며 머핀이나 쿠키를 구워주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아이가 준 사탕 세 개를 녹을 때 까지 책상 위에 올려둔 적도 있었다. 이렇게 추억이 담긴 음식들을 문득 마주치면 ‘그땐 그랬었지.’ 하면서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기쁘기도 하고, 어쩐지 눈물이 날것 같기도 하고.


3.jpg
출처 : 책 [바나나 우유]
 
  
항상 엄마가 차려주는 밥만 먹던 내가 어느새 자라 6개월차 자취생이 되었다. 처음 몇 개월간은 밥도 차려먹고, 반찬도 만들고 국도 끓이고 했으나, 워낙 인스턴트를 좋아하는 내 식성탓에 어느새 라면을 비롯한 갖가지 인스턴트식품들로 식단이 바뀌어 버렸다. 이젠 그마저도 귀찮다고 안차려 먹기 일쑤. 전화를 걸때마다 밥은 먹었냐고 묻는 엄마에게 “응, 당연히 먹었지.”하고 대답하고는 자연스럽게 라면을 꺼내는 내 모습을 보며 ‘이런게 어른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어른이라면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오랜만에 계란 장조림이 먹고 싶어 엄마에게 전화로 레시피를 물어보다가 그냥 만들지 않기로 했다. 내가 만든 장조림보다 엄마가 만든 장조림이 훨씬 맛있을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려가면 무조건 계란 장조림을 먹어야지.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은 것 같다.




명함.jpg
 
   
[이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