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대 위의 등장인물은 배우가 아닌 '우리'였다 [공연]

글 입력 2017.07.1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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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젊은 청년들이 목도하는 세상과 세대를 막론한 부재감에 대하여
연극 ‘붉은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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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쳐 쭉 걸어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나온씨어터’. 여기서 극단 竹竹의 연극 <붉은 매미>의 막이 올랐다.

  ( *극단 竹竹 : 2001년 혜화동 1번지 3기 동인으로 시작해 연극의 전통성과 현대 연극이 지닌 시대적 의미를 공유한 이들이 함께 창단하였다. 다양한 시도와 거침없는 개성을 지닌 집단으로 다양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동서고금의 현실과 연극문화를 연구하여 매년 창작 위주의 현대극 작품과 무대언어 개발을 위한 고전작품을 공연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다.)



  “<붉은 매미>는 사건 자체의 재연이 목표가 아니라 그러한 일련의 사건들과 환경, 세대의 틈바구니에 끼인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억눌린 현실, 감추고 있는 감정들을 통해 현대 인간의 잘려나간 정신 단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 인간은 늘 어딘가를 떠돌며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어 하지만 세상과 관계 맺기는 늘 요원함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속해 있는 이 세상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연극 팜플렛 中



1막: 임신한 딸과 직장 상사와의 갈등/ 밤늦게 돌아오는 딸을 마중 나가려는 아버지와 그의 길을 막는 옆 단지 주민/ 다친 딸을 도와주려는 옆 단지 사람들을 막는 아버지
2막: 자신을 구해준 옆 단지 여자를 따라간 딸/ 여자를 따라간 누나(임신한 딸)를 보며 원망하는 남동생
3막: 아이를 낳길 원하는 남편과 옆 단지 여자(아내)의 갈등/ 임신한 아이를 낙태한 딸



▸ 독백으로 느껴지는 대화


  크게 세 개의 막으로 구성된 이 극은 하나의 연결된 등장인물들이 나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특별한 무대장치 보다는 간소한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가 돋보이는 극이다. 극을 보는 내내 관객들의 속은 답답하고 타들어간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두 명의 인물은 자신의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그 대사들이 대화로 들리기 보다는 독백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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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신도시 느낌을 자아내도록 꾸밀 예정이에요. 세 개의 장에서 벤치나 큐빅 등 동일한 대도구를 사용하는데 배치를 다르게 한다든가 해서 서로 다른 의미를 담아낼 계획입니다. 조명도 달라지도록 할 거고요. 극장의 벽면을 활용해 아파트 입고, 병원 근처 공원, 패스트푸드점을 표현해내려 하는데, 장면마다 분명한 구분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도록 구성할 예정입니다.”
-김낙형 연출가



  임신으로 인해 배가 나온 여자, 그 여자를 모델로 사진을 찍어야 하는 작가. 이 둘의 갈등을 시작으로 무대의 막이 오른다. 분명 한국어로 말을 이어나가지만 극을 처음 보는 관객들은 그저 어리둥절하다. 분명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둘의 대화는 얼핏 보면 이어지는 것 같지만 이해하기 위해 자세히 집중해서 들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언어들이 난무한다. 그들은 과연 대화를 하는 것일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일까?

  극이 계속 될수록 내가 개입하여 상황을 중재하고 싶은 마음이 충동적으로 들기도 한다. 극이 진행되는 110분 동안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현기증이 나기 시작한다. 대체 이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 현실 같지 않은 현실 속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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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뉴스의 제목이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세상의 모습을 연극 <붉은 매미>는 무언가를 첨가하거나 가감하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어와야 할 딸이 걱정되어 마중 나가려는 아버지의 길을 가로막고 이쪽 길은 옆 단지 주민들의 소유이기 때문에 돌아서 가라는 남자. 아무도 보지 않는 밤이니까 그냥 보내줘도 될 것을 무엇을 위해 저리 필사적으로 아버지의 길을 막는가 싶지만, 아버지가 자신이 이 길로 지나가면 안 되는 이유를 반복해 물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밤길을 돌아오다 크게 다쳐온 딸의 모습을 보면 ‘나중에 싸우고 일단 돌아서 딸을 데려왔어야지.’라는 답답한 마음이 동시에 몰려온다. 극에서 잠시 빠져나와 생각해보면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이다. 아파트 단지 내의 빈부격차와 그들의 갈등, 자신들의 단지 내 놀이터에 다른 단지 아이들의 출입을 막는 어른들, 급기야 아파트 울타리에 등장한 뾰족한 가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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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막의 내용도 우리가 사회 속에서 겪을만한 갈등이다. 매일 일로 인해 바쁜 남편과 외로운 아내,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남편과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아내의 갈등. 아이를 갖게 되면 양육의 부담은 모두 아내가 짊어질 것이 너무도 뻔히 보이는 둘의 갈등이었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혼자만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저 아이를 만들고 싶은 자신의 욕심을 아내에게 강요한다.

  극의 마지막은 꽤나 충격적이다. 임신으로 배가 나온 딸은 조용히 혼자 무대 밖 화장실로 가 자신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죽인다. 화장실의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여자는 주체할 수 없는 양의 피를 흘린 채 힘겹게 몸을 이끌며 다시 무대로 나타난다. 임신중단, 낙태가 불법화 된 우리사회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의 열약한 환경과 고통을 나타낸다. 그녀는 왜 화장실에서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는가?



▸ 아쉬웠던 점


  이번 연극에서 김낙형 연출가가 중점으로 둔 것은 ‘언어유희’라고 한다. 그러나 연극을 보는 관객들에게 이 작품이 전하고 싶은 바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극의 흐름 속에서 나오는 등장인물은 비중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 같지만 금세 사라지고 만다. 주인공으로 느껴지는 딸의 역할도 처음과 마지막에만 주요하게 등장할 뿐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돋보이지만 정신없이 돌아가는 극의 전개는 극에 완전히 몰입하기 힘들게 만든다. 어쩌면 극에 완전히 빠져들어 감상하게 보다는 잠시 극과 분리되어 극의 내용과 현실을 계속 비교하길 바라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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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의 막이 내려간 뒤 밖으로 나오면 무언가 찝찝하고 답답한 마음에 불편한 기분이 든다. 대화 없이 자신의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사회, 보고 있자니 답답한 현실 속에서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 제 3자가 되어 멀찍이서 이 상황을 바라볼 때, 그제야 “내가 이 무대 위 등장인물 중 한 명이었구나.”라고 느낀다. 낙태한 여자가 쓰러진 채 막이 내려가는 이 극의 진정한 마무리는 답답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문화리뷰단_ 박이슬



[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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