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 젊은 우리 사랑

글 입력 2017.06.0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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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적인, 너무나 확률적인
- 심보선
 
  오래된 습관을 반복하듯 나는 창밖의 어둠을 응시한다, 그대는 묻는다. 왜 어둠을 그리도 오래 바라보냐고, 나는 답한다, 그것이 어둠인지몰랐다고, 그대는 다시 묻는다, 이제 어둠인지 알았는데 왜 계속 바라보냐고, 나는 다시 답한다, 지금 나는 꿈을 꾸고 있다고, 그대는 내 어깨 너머의 어둠을 응시하며 말한다, 아니요, 당신은 멀쩡히 깨어있어요, 너무 오랜 고독이 당신의 얼굴 위에 꿈꾸는 표정을 조각해놓았을 뿐

 이 밤에 열에 하나는 어디론가 떠나고 열에 하나는 무척 외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열에 하나는 흐느껴 울기도 한다, 이 밤에 그대와 내가 이별할 확률(=0.1x0.1x0.1)을 떠올리면 내 얼굴은 저 높이 까마득한 어둠 속 백동전으로 박힌 달 표면처럼 창백해진다, 나는 다만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시간의 완곡한 안쪽에 웅크리고 누워 잠들고 싶은데, 지금 나는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잊고 번민으로 오로지 번민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모든 병든 개와 모든 풋내기가 그러하듯 나는 내 운명 앞에서 어색하기 그지 없다 그대를 오랫동안 품에 안았으나 내 심장은 환희를 거절하고 우울한 예감만을 가슴 복판에 맹렬히 망치질 하였다, 우연이란 운명이 아주 잠깐 망설이는 순간 같은 것, 그 순간에 그대와 나는 또 다른 운명으로 만났다, 그런 운명과 우연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다 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는 지금 서로의 목전에서 모래알처럼 산지사방 흩어지고 있는데

 그대에게서 밤안개의 비린 향이 난다, 그대의 시선이 내 어깨 너머 어둠 속 내륙의 습지를 돌아와 내 눈동자에 이르나 보다, 그대는 말한다, 당신은 첫 페이지부터 파본인 가여운 책 한 권 같군요, 나는 수치심에 젖어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묻는다, 여기 모든 것에 대한 거짓말과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진실이 있다, 둘 중 어느 것이 덜 슬프겠는가, 어느 것이 먼 훗날 불멸의 침대 위에 놓이겠는가, 확률은 반반이다, 확률이란 비극의 신분을 감춘 숫자들로 이루어진 어두운 계산법이 아닌가

 눈을 떴을 때 그대는 떠났는가, 떠나고 없는 그대여, 나는 다시 오랜 습관을 반복하듯 그대의 부재로 한층 깊어진 눈앞의 어둠을 응시한다, 순서대로하면, 흐느껴 울 차례이리라

-『슬픔이 없는 십오 초』중





 우리는 슬픔이 없는 십오 초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넉넉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사회는 나날이 최첨단이라는 단어를 남발해가며 인류의 진일보를 선전하지만, 정작 그 시대를 사는 세대는 망망대해의 매너리즘 속에서 나르시즘에 빠지거나 광적인 쇼비니스트가 되거나 그 자체로 無가 되어 버린다. 여러모로 우리는 상처입은 존재들이다.

 이러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란 회자정리적인 성격을 갖는다. 기술은 나날이 최첨단이 되어가는데 인간의 행동은 점진적으로 단순화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사랑'은 여전히 60억 분의 1의 한 인간을 열반에 오르도록 만드는 황홀경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사랑은 결혼이란 제도에 얽매여 매우 복잡하게 구성된 형국이다. 우리는 많은 연인을 거치게 된다. 어느 여자에겐 와이프라 부르게 되고, 어느 다른 여자에겐 전처라고 부르게 되며, 어느 또 다른 여자에겐 전 애인이라 부르게 된다.

 사회가 고도로 발전했지만 그만큼 예보다 난잡해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이 보잘것없는 생을 특별하게 해주는 단 하나의 마법이니까, 열쇠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방과 나 자신의 관계가 도무지 특별할 데가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이별한다. 이런 식으로 어떤 이는 와이프고 다른 이는 전처가 된다. 계속되는 '사랑'의 갈증, 쉴 새 없이 패배하는 사람들. 낙오자들은 하나둘 그릇된 사상에 심취하고 종내에는 도취하고 만다. 그놈의 시간, 영원하다는 게 대체 무엇이길래. 결국, 영원성이 문제다.

 우리는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다. 심보선 시인은 고통스럽게도 '사랑'이 시간에 대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노래한다. 절망적인 사랑을. 우리는 내일이면 손을 마주 잡고 연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레에는 오롯이 예전에 잠깐 만났던 사람이 된다. 교회오빠 OO기업 부장 대학 동기 알바생 등등…… 호칭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유한한 관계를 수용한다. 외로우니까, 나는 특별하니까. 허무맹랑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간다. 이 시인은 오늘날 사랑에 잠 못 이루는 청춘들의 씁쓸한 연애, 영원하지 않은 관계를 노래한다. 관계를 맺을 확률과 관계가 끊길 확률의 룰렛은, 지금도 돌아가고 있다.


[조현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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