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상으로 현실을 체험하다, < 호모 로보타쿠스 >

글 입력 2017.05.15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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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1. < 호모 로보타쿠스 >, 혜화동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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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도착해 입장권을 받았다. 다른 연극들과는 달리 티켓 형태가 아니라, 실제 연극에서 로보타쿠스 공장에 들어갈 때 받는 방문증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관객에게 무대 위의 일을 “체험하게” 하려는 시도의 일환인 듯 했다.
 
 나아가 객석도 일반적인 소극장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였다. 의자는 무대를 빙 둘러싸는 식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객석 사이 사이에 배우들이 사용할 예정이니 앉지 말아달라고 쓰여 있는 의자들도 있었다. 배우들이 들어오는 입구 쪽에도 관객 의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배우들의 앞면이나 측면만이 아닌 뒷면을 볼 수 있다는 점과, 앉는 자리에 따라서 보이는 장면이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신선했다. 4개의 벽면에는 프로젝터가 동일한 화면을 비추고 있었는데, 연극에서 어떤 식으로 쓰일지 기대가 되었다. 다른 관객들도 무대가 신기한지 사진을 찍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2. 에린 섬의 공학자들

 에린 섬에 위치한, 로보타쿠스를 생산하는 회사 R.H.C. 대표는 해리 도민이고, 수잔과 파브리, 제니, 알퀴스트는 그의 동료이자 직원들이다. 그들이 한 마음으로 로보타쿠스의 생산량을 늘려가던 중 회사로 인권운동가인 헬레나가 찾아온다. 그녀는 총리의 딸이며, 로보타쿠스들에게 인권을 찾아주려고 한다. 로섬의 직원들은 그녀를 적대시하지 않는다. 로봇에게 인권을 가르친다고 해서 그들이 깨우칠 거라는 생각을 단 1%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좋은 헬레나는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실현 될 것이라 기대도 되지 않는 인권 운동을 펼친다.

 한 쪽은 끊임없이 로봇을 생산하고, 한 쪽은 그 로봇들을 계몽하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평화로운 시절은 5년간 지속된다. 그리고 마침내 균열이 시작된다.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로봇에게 인권을 가르친 헬레나조차 로봇이 인간의 지배자가 되고 싶어 할 것이라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비현실은 현실이 되어 에린 섬을 덮친다.

 < 호모 로보타쿠스 >는 로봇과의 전쟁 신과 같은 장면은 자세히 비추지 않는다. 관련된 장면들은 벽에 비춰진 스크린으로 전개된다. 무대에서 조명되는 것은 에린 섬에 갇힌, 다섯 명의 로봇 회사 직원들과 헬레나이다. 5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되었을 지도 모르는 미세한 균열이 그들 자신을 파괴하는 그 순간이다.
 
 처음 시놉시스를 봤을 때는 연극이 원작 소설과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다를 지 감이 잘 오지 않았는데, 바로 이 미세한 균열이라는 점이 상당히 큰 차이점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원작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을 유지했다면, 헬레나의 인권 운동은 5년씩이나 지속하지 않아도 로봇들을 깨우치게 했을 것이고 로섬의 연구원 수잔은 로봇에게 영혼을 불어 넣는 실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로봇과 인간의 대립이 극의 중심에 놓였을 것이다.


연습 현장3.jpg
 

 그러나 연극 < 호모 로보타쿠스 >에서는, 로보타쿠스를 창조해낸 공학자들 자신도 내면적으로 번민하며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이상의 불일치가 인간의 멸종이라는 비극을 만들어 낸다. 로봇에게 인권을 되찾아주고자 했던 헬레나조차, 그 바람이 자신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산물임을 입증한다. 그녀의 바람대로 로봇들은 각성했지만, 그녀는 “싸우라고 말한 게 아니야.”라고 주장하며 원치 않는 결과였음을 드러낸다. 현재 R.H.C 또한 로섬이 설립한 회사이지만 그가 의도했던 대로 운영되지 않는다. 이처럼 각자의 이기심이 뭉쳐져 만들어진 결과물인 로보타쿠스들이 창조주인 인간들을 파괴한다는 사실은 욕심으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는 인간의 습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로섬 직원들이 스스로, 또 서로 갈등하며 번민하는 장면은 총 러닝타임 90분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 알퀴스트 단 한 명만이 지구상의 유일한 인간으로 남는 것이다. 이제 지구에 인간은 한 명, 나머지는 로보타쿠스이다. 그리고 알퀴스트는 로보타쿠스들에게 로봇을 생산하는 방법을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생산 비법은 곧 자손을 낳는 방법이며, 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즉 이제 세상에 인간이든 로봇이든 새로운 “생명”은 태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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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퀴스트는 무언가를 본다. 로보타쿠스 해리와 헬레나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본다. 그들의 결혼식을 주체하고 주례를 선다. 결혼식을 마친 로봇 해리와 헬레나에게 “떠나라”고 말한다. 어디론가 떠난 그들이 지구상의 새로운 종을 탄생시킬지 없을지 아무도 모르는 채로, 극이 막을 내린다. 이 짧은 연극은 역사의 한 단면을 잘라 보여주는 듯 하다. 얽히고 설킨 신념들이 파멸로 치달아 인간을 비롯한 지상의 것들을 파괴하는 순간을, 그리고 그 폐허 속에서 돋아나는 새싹을.

 로봇의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사람 수만큼 무수한 신념과 이기심이 만들어낸 변화 속에서 살고 있다. < 호모 로보타쿠스 >는 로봇 혁명이라는 그럴 듯한 배경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신념에 따르는 책임감의 필요와 무분별한 욕망의 실현이 야기할 비극을 일깨우고자 한다. 무대 위의 세상에서 돌아와 현실을 돌아볼 수 있도록. 현재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희망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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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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