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우리 선희 >, 얽히고 설킨 선희와 세 남자의 이야기 [시각예술]

요약할 수 없다. 비현실적인, 그러나 현실적인.
글 입력 2017.04.0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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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상수의 영화는 혼란스럽다, 고 흔히 말한다. 필자는 홍상수의 영화를 처음 보았기에 그의 영화가 어떻다고 함부로 논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여타 영화들과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수많은 독립영화들과도 매우 다른 무언가 독보적인 것이 있다. 독립영화, 다큐영화, 심지어 실험영화들을 다양하게 접해본 필자에게도 <우리 선희>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사실 서두를 써내려가는 지금도 어떤 방향으로 글을 전개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특정한 메시지를 강요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부러 다른 이들의 평을 찾아보지도 않았고 더욱이 감독이 어떤 의도로 이 영화를 구성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솔직하게 느꼈던 그대로를 담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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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 동현, 문수


  영화 속에는 '선희'라는 이름의 한 여자와 세 명의 주변 남자들이 등장한다. 등장 순서대로, 선희의 학생시절 교수 '동현', 전 남자친구 '문수', 선배 감독 '재학'. 등장인물 모두 영화와 관련되어 있고, 그 탓에 간간이 영화 혹은 영화계에 대한 감독의 생각들이 대사에 녹아 나타나기도 한다. 세 남자 모두 선희에게 아주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먼저 사건의 발단으로 선희는 유학 추천서를 받기위해 옛 지도교수 동현을 찾아 간다. 그리고 우연히 전 남자친구 문수를 만나게 되는데, 어쩌면 맥락없이 이어지는 상황들 속에서 둘은 술은 먹게 된다. 그리고 문수는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자신의 영화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말한다. "내 인생의 화두는 너야." 아직 접지 못한 마음을 터놓으며 그 때 왜 헤어지자고 했느냐, 묻지만 선희는 피할 뿐이다. 나중에,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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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인물들은 어느 누구도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대화를 하고 있지만 결코 쌍방향적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인물들이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듯 보인다. 조언으로 가장한 오만. 나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곤 제멋대로 해결책을 내놓는다. 마치 그것만 따르면 된다는 양 내뱉는 충고아닌 충고들은, 사실 그이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한다. 한 우물만 파라. 끝까지 가야 나를 알 수 있다. 진짜 감독이 전달하고 싶은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물들은 상투적이고 추상적인 말만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매우 극단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새 누군가에게 하고있는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해본 적조차 없으면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고서 그를 탓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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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는 그들의 이상하디 이상한 관계가 선희의 잘못된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자 셋과 여자 하나이기 때문에.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결코 그렇지 않다. 교수와의 관계는 추천서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희가 그의 마음을 이용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이든 교수와 어린 제자의 관계에서 교수가 이성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처음부터 제자에게 이상한 추천서를 써주었던 교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문수와는 이미 끝난 사이다. 그녀에게는 이미 정리된 마음이건만 문수의 마음에 남은 미련은 선희의 탓이 아니다. 재학에게는 진실되지 않은 마음에 술김에 부응한 것 정도가 아닐까.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깎아내려선 안되지만 세 남자가 순수하게 선희를 사랑했다고는 누구도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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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그녀는 셋 중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을 것 같다. 세 남자 모두 '자신의' 선희를 판단하고 정의하려 했고 선희를 그 속에 가두려 했다. 어쩌면 그녀는 빈껍데기같은 그 관계들에 누구보다 회의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많이 지쳤을 것만 같아서 어쩐지 그녀를 변호해주고싶은 마음이었다.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현실적이고 어쩌면 촌스러운 영상이, 그들이 지금 거리 어딘가에서 우리를 스쳐 걸어가고만 있을 것처럼 생각하게 한다. 저렇게나 얽힌 관계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어디에 있을까 싶지만 가까이에 있을 것 같다. 이것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가진 매력일까. 그의 다른 영화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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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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