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도래하다, 혹은 접촉하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3.2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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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하다, 혹은 접촉하다
Arrival or Contact



*
강력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영화를 보실 분은 다 보시고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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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루이스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시작한다. 딸을 낳고부터, 놀아주던 기억, 밤에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던 기억, 싸웠던 기억, 희귀병(암)에 걸려 죽음을 맞는 딸의 기억…. 루이스는 한 때 엄마로써 딸에게 많은 애정을 쏟았던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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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12개의 미확인 비행물체, 연구를 위해 군대라는 또 다른 세상에 떨어진 언어학자 루이스. 그 누구도 제대로 이해해주는 이 없고,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에 떨어진 그녀의 처치는 전혀 다른 세상에 떨어진 외계인과 비슷하기마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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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마자 외계인을 만나러 가는 루이스의 심정은 복잡하다. 불편하고 숨쉬기 힘든 옷들을 껴입고 기괴한 외계인들 앞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다음 날 루이스는 칠판을 들고 외계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지구에 온 목적은 무엇인가What is your purpose on Earth?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수많은 과정―물음이라는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부터―이 필요하건만, 단순히 ‘빨리하라’며 재촉하기만 하는 대령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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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방사능에 오염될지도 모르지만 루이스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기 위해,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불편한 작업복을 벗고 나온다. 그리고 외계인과 의사소통을 하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아이와의 기억을 자꾸 떠올린다.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시달리는 루이스를 보는 우리는 왜 루이스가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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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무정부상태가 되고 국가는 혼란해졌으며 점점 더 빠른 해결을 요구하지만 문제는 복잡하고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 와중에 중국의 섕Shang장군 외계인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동맹국들도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루이스는 이를 답답해하지만 해결법은 눈에 보이지 않고, 과거 기억들의 괴롭힘은 심해져만 간다.

드디어 지구에 온 목적을 물어보았으나, 외계인은 ‘무기를 제공하려고Offer Weapon’라고 대답하며 세계의 심기를 건드린다. 게다가 몇몇 외계인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군인들이 폭탄을 설치해 외계인과의 조우도 힘들어지게 된다. 루이스는 해명하려고 외계인이 있는 비행물체 쪽으로 다가가고, 드디어 벽 없이 외계인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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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도착하고 헵타포드(외계인의 명칭)와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헵타포드가 여자아이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자, 루이스는 관객들을 경악하게 할 만한 질문을 한다. 

“이해가 안 돼. 이 여자아이는 누구야?”

‘사용하는 언어가 사고방식을 바꾼다’라는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이다. 헵타포드Heptapod의 비선형적 문자와 비선형적 시간개념을 익힌 루이스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미래를 볼 수 있게 된다. 헵타포드는 그 힘을 사용하라며 떠났고, 자신이 헵타포드의 언어를 설명한 책을 펴낸 미래를 읽은 루이스는 헵타포드가 말하려던 것이 무기Weapon가 아니라 선물Gift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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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공격 태세로 전환한 중국을 막기 위해 미래를 읽어 섕장군을 만났던 미래를 읽어 알아내고 그의 아내의 유언을 전화로 전하면서 마음을 돌린다. 그리고 루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인생사를 알게되고,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동료 수학자 이안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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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인생사를 다 안다면 바꿀 것인가?’
이안은 우물쭈물하다가 이 대답에 ‘끌리는 대로 할 것 같다.’라고 대답하고, 둘이 포옹을 하고, 루이스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면서 끝난다. 이후 영화의 첫 장면을 보면 결국 이 영화 자체도 ‘비선형적인’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이다. 영화 처음이 곧 결말이고, 결말이 곧 시작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헵타포드 보다 어쩐지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끼리의 소통이 더 어렵게 표현되는 것은 아이러니이자 현실 같기도 하다. 어쩌면 상호간 의사소통의 이해도는 언어 너머의 무언가―감정적인 부분―가 차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현재에 끌어오는 연출방식은 이 영화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겠다. 사실 갑작스러운 장면 이동 등은 과거를 회상하는 씬으로 인식하고 있던 우리는 감독에게 한 방 먹었다고 해도 될 것이다.

루이스에게 미래를 알려준 헵타포드와 아이에게 미래를 알려주는 루이스의 모습이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미래에서 무언가 바꾸러온 헵타포드와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루이스의 모습이 대비되어 보이기도 한다. 루이스는 왜 미래를 바꾸지 않았을까?

루이스는 미래에서 힌트를 얻고, 과거의 경험으로 일을 해결해왔다. 따라서 그녀의 인생도 ‘원형적 구조’가 되어버린 것이다. 루이스에게 시간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졌으며, 미래도 과거도 그녀의 전부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인생을 바꾸지 않았던 게 아닐까?

만약 당신은 자신의 인생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알게 된다면, 그것을 바꿀 것인가?


[고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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