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래에서 현재의 사랑을 말하다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예술]

로봇이 인간에게 걸어주는 행복해지는 최면.
글 입력 2017.03.0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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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겨울, 추운 날씨로 꽁꽁 얼어붙어 버린
우리의 몸과 마음을 녹여준
따스한 뮤지컬이 찾아왔었다.

엄청난 인기 하에 막을 내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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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2050년, 미래를 얘기한다. 주인공인 올리버와 클레어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사람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들이다. 자, ‘로봇’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프로그램화가 되어 주어진 명령만을 수행하는, 감정이 없고 딱딱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일 것이다. 또한 사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섬세함, 상황에 따른 융통성 등은 로봇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대부분 생각한다.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인간 모형의 로봇이 아직 대중에게 통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떠오르는 로봇의 이미지는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몇 작품들에서는 로봇을 결코 한정된 모습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한 로봇들, 휴먼로이드들이 자주 등장하곤 했는데 <어쩌면 해피엔딩>에서의 헬퍼봇들도 마찬가지이다. 휴먼로이드 헬퍼봇. 겉으로 보아서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그들이다. 하지만 행동에서 우리는 저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감사해요”라는 말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올리버가 “천만에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저들은 로봇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외형은 사람이지만 로봇의 전형적인 특징을 삽입하여 둘의 경계를 모호하면서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가끔 로봇이 감정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곤 한다. 감정은 예전부터 인간 고유의 특징인가 아닌가에 대해 많은 논란을 가지고 있는 키워드이다. 일단, 이 곳에서는 로봇 또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전제한다. 사실 로봇끼리 사랑에 빠진다는 개념이 아직 머릿속에 정확히 그려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올리버와 클레어는 그런 생소한 상상을 행복하게 현실화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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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은 사람이 가끔 무한한 능력을 발휘해내는 것과 달리 실행 가능한 기능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한함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또한 그는 자신의 수명이나 상태이상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으며 그들의 메모리에는 시간의 흐름이 반영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들은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그저 일반적인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이별을 겪는 내용보다 더욱 잔인하게 느껴짐을 알 수 있다.

 “사랑은 변한다.” 클레어가 자주 하던 말이다. 그녀에게 과거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좋지 않게 남아버린 옛 추억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고 그것을 노래로 읊조리기도 했다. 헬퍼봇의 메모리는 저장 시점이 있어서 그 시점을 기준으로 삭제가 가능하게 만들어져있다. 삭제 전에는 메모리들이 생생하게 남겨져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이별이나 시련을 겪은 뒤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져서 ‘추억’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로봇들은 그렇지 않다. 모든 기억들을 삭제할 수는 있지만 함께 했던 추억마저도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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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랑에 있어서 로봇은 사람보다 불리하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모든 것을 다 해 줄 수 있는 사람에 비해 로봇은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 또한 이별을 겪게 된다면 모든 추억들을 삭제하거나 모든 기억들을 안고 가야 한다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그러나 로봇은 사람에 비해 쉽게 변심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올리버는 자신을 두고 떠난 주인 제임스를 몇 년이나 그리워하며 매시간 그를 떠올린다. 제임스를 만나기 위해 병을 팔아 돈을 모으기도 하고 그가 준 레코드판과 턴테이블을 애지중지하며 지낸다. 클레어가 나타나기 전 올리버 삶의 주인공은 제임스였고 몇 년 동안 그의 마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이런 모습을 사랑에 대입한다면 올리버는 세계 최고의 로맨티스트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뮤지컬을 통해 사랑이 심장의 영향을 받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대부분 사랑을 나타내는 신체부위로 심장을 떠올리고, 사랑을 심장의 두근거림으로 확인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올리버와 클레어에게는 심장이 없다. 그들은 로봇이니 아마 명령 프로그램의 충돌로 인해 감정이 생성된 것일 수도 있다. “인간도 사고 회로에서의 충돌로 인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점을 가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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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배경은 비록 2050년, 미래이지만 주인공들이 로봇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현재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2050년이라면 대부분의 것들이 자동화 되어있고 많이 바뀌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는 뮤지컬을 보며 이질적인 느낌을 전혀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미래를 상징할 만한 물건들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오래된 물건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올리버는 제임스가 아끼던 턴테이블과 LP판을 사용하기도 하고 클레어와의 첫 대화를 종이컵 전화기로 이어나가기도 한다. 또한 클레어는 어떠한 인위적인 힘이 없이도 자기 스스로 빛을 내는 반딧불을 부러워하고 그리워한다. 굉장한 아날로그 감성이다. 그들은 결코 미래지향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와 공유가 가능한 감성을 로봇이 가지고 있다는 점, 미래이지만 결코 이질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헬퍼봇이라는 특별한 미래적 소재를 제공하면서도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왜 제목은 “어쩌면 해피엔딩”일까. 우리는 각자 다른 행복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똑같은 상황이더라도 누군가는 행복을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한 명의 사람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함부로 그들의 삶을 해피엔딩, 새드엔딩이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올리버와 클레어의 삶이 관객 각자마다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이라는 단어가 삽입된 것이 아닐까라고 짐작해본다.
 
 한창 ‘힐링’이라는 단어가 사회의 유행어가 된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지쳐 있기에 자신을 회복시켜주는 컨텐츠들을 찾아다녔던 덕분이었다고 짐작한다. 자신 있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힐링 뮤지컬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뮤지컬 관람 중에 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지니지 않았던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맹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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