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버티는 삶에 관하여 [문학]

글 입력 2017.03.0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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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에 관하여」
이 땅에 두 다리로 버티고 서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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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티는 삶에 관하여」의 저자, 허지웅 ( 사진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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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으로서 더 익숙한 허지웅 ( 사진출처


 글 쓰는 남자, 허지웅을 떠올리면 나에겐 작가 허지웅 보다는 방송인 허지웅이 더 친숙하다. 마녀사냥과 썰전, 미운우리새끼 등의 예능이나 토크쇼형식의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허지웅은 강도 있는 비판이나 강한 의견 표현으로 대담함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다가 2014년 첫 출판한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는 책을 접한 건 누군가의 추천도 아니고 단순한 우연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허지웅’이라는 사람에 대해 별관심이 없던 본인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368페이지에 담겨있는 허지웅이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사회, 정치, 경제, 예술, 그리고 방송계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어느 하나 흥미가 가지 않는 이야기가 없다. 또한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마음속을 쿡쿡 찌르기도 하고, 분노하게 한다.



*파란색은 본문을 인용한 문장입니다.



언론의 이중성에 대한 고찰-용인 살인사건, <호스텔>이 범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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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인 엽기 살인사건'의 피의자 인터뷰 ( 사진출처 )


 ‘용인 엽기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취재진과 대화하던 도중 이 영화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용인 살인사건, 시신 뼈만 남아… 영화 <호스텔>보고 충동 느꼈다” “10대 엽기 살해범은 공포영화광” “용인 살인사건 ‘상영금지 <호스텔>’ 모방? 무슨 내용이길래”와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래전 국어시간 때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많은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는 편이 아니라 몰랐었는데 기사의 제목에 자극적이거나 폭력적인 단어를 쓴 사례가 매우 많았다. 또, 많은 조회수와 유입을 위해 사실을 뻥튀기 해서 제목으로 붙여놓은 경우도 많았다. 허지웅은 이 글에서 다른 것보다 사실을 재배열하여 인과관계를 유리한 대로 ‘끼워맞추는’ 행위를 지적한다.

 그런데 상황을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다. 피의자는 먼저 <호스텔>이나 잔인한 영화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기자가 먼저 굳이 콕 집어 “<호스텔>과 같은 잔인한 영화를 즐겨 보느냐”고 질문했다. 유도질문과 유도된 답변들이다. … 평소 공포영화광인 피의자가 모방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듯한 지금의 보도 내용은 사실관계를 크게 왜곡하는 것이다. (중략) 사실은 이랬을 것이다. 별 동기가 없다는 피의자의 말에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내고 싶은 기자들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중 한 기자가 자신이 제목을 알고 있는 영화 가운데 가장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호스텔>을 언급했다. 피의자는 봤다고 대답했다. 심지어 공포영화를 자주 본다고 말했다. 멀쩡하게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 애초 그런 질문을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저 문답만 두고 보았을 때도 이 사건이 공포영화광의 <호스텔> 모방범죄라는 추측 또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인 것이 필요한 기자들이 들었을 때, 이는 완전하고 명쾌한 인과관계로 변모한다. 마술 같은 일이다.

  또, 기자 출신이라는 딱딱하게 느껴지는 과거에도 허지웅은 재치 있게 글을 쓰기도 한다. 그 점이 아마 368페이지의 책을 단 이틀 만에 읽게 해준 원동력이 아닐까?

 공포영화를 많이 봐서 살인마가 된다면 나는 지금쯤 하루세끼 인육만 먹고 있을 거다. 언론은 늘 쉽고 빠른 인과관계를 지어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이라도 세상이 그리 명쾌했던 적이 있는가. … MBC는 게임이 폭력을 조장한다며 애꿏은 PC방의 전원을 내려버렸다. 조선일보는 학교폭력이 웹툰 때문이라는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총기난사가 메릴린 맨슨 때문이고 게이가 레이디 가가 때문이고 학교폭력이 웹툰 때문이고 연쇄살인이 영화 때문이면 내가 오늘 배탈이 난 건 무엇 때문이냐. 마스터 셰프 코리아?





허지웅의 인간적인 모습들- 엄마, 생일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TV너머에서 편파적인 언론과 맞서 싸우고, 정치 문제에 또 펜과 촛불을 들고, 경제 문제에 입을 여는 것만 보는 우리는 가끔 방송인들도 일상적인 생활이 있다는 것을 자주 잊고는 한다. '엄마, 생일' 부분에서는 허지웅의 인간적인 모습이 너무 잘 나타난다.

 나는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일이 바쁘고 삶이 피곤하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문자가 왔다. 한밤중이었다. 엄마였다. “음력 10월 14일 양력 11월 11일은 지웅이 엄마의 생일……받고 싶은 생일선물 : 예쁜 숄처럼 생긴 목도리. 가격4만 원.”
 화장실에서 물 틀어놓고, 나는 소리내 엉엉 울었다. 

 여느 가정처럼, 무뚝뚝한 성격에 애정표현은 서툴기만한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가 너무나 가깝게 다가온다. 애정표현이 많이 서툰 본인도 엄마한테 언제쯤 솔직해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갈 길이 너무 멀고 빚은 자꾸만 쌓인다.

 아, 나는 정말 미치도록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쯤 그럴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고개를 들고 거울을 보고 내 선택을 낙관할 수 있을까. 베개맡에 누워 하루 일을 되돌아볼 때 ‘~했지만 그래도 그건 내가 잘했다’는 말을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나아질 수 있을까.

 모든 인간의 고민인 더 나아지는 법, 더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강렬히 원하는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로 인해 많은 자극과 동기부여를 받은 것 같다. 이 땅에 두 다리로 버티고 있는 이유는 결국 그런 것이다. 평범한 일상과 다사다난한 순간들 속에도 나는 계속 나의 발전과 향상을 원하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밀어 붙인다. 결국 우리는 무언가에 대한 사랑과, 분노, 자기애 없이는 살아가기가 너무 힘든 것이 아닐까?


[고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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