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르바가 주는 가르침 _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고 [문학]

글 입력 2017.03.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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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른 책들이 있다. 책을 읽을 때의 주변 상황이 달라져서 그런 것 일수도, 생각이 달라져서 일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나에게는 <오셀로>와 <그리스인 조르바>가 그러한데, 오늘은 그 중 <그리스인 조르바>얘기를 해볼까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대입 준비를 위해 친구들과 독서 논술 스터디를 하고 있었다. 매주, 혹은 2주에 한 권씩 선정하여 읽고 독서 선생님을 중심으로 토론하고, 마무리는 생활기록부에 들어갈 독서록을 쓰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그런 활동이었다. 당시 공부만 하느라 독서를 즐겨 하지 않던 나는 이 활동을 통해 많은 책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리스인 조르바’도 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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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엔 기대를 많이 했었다. 이 책이 수 많은 사람들의 필독서로 꼽혔기에, 나에게 어떤 큰 가르침을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재미가 없었다. ‘원래 건강에 좋은 음식은 맛이 없고 인문학 도서들은 재미가 없는 법이야!’라고 생각을 하면서 읽어도 너무 재미가 없었다. 결국 나는 읽다가 그만 두었고, 그 주의 독서 논술 활동에서는 애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재수를 하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휴학 원서를 내고 맨 처음 든 생각은 ‘책이나 읽자!’였다. 2년 동안 술을 먹고 학교 수업 따라 가느라 강의 지정 도서 외에는 다른 책들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읽고 싶었다. 그렇게 다짐을 하고 처음 꺼내든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2주일이 걸려 이 책을 완독했다. ‘예전에는 그렇게나 재미 없던 책이 다시 읽으니 너무 재밌다!‘는 식의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책 자체가 큰 재미가 없는 것은 여전했다. 사실 이 책의 서사 구조 자체가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큰 스토리는 주인공이 크레타로 가는 길에 조르바를 만나, 크레타에서 그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전부이다. 크레타에서도 오르탕스 부인과 만나고, 아나그노스티 영감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조르바와 헤어지고 편지를 주고 받다 그가 죽었다는 편지를 받으며 이 소설은 마무리된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이렇게 재미없는 서사구조를 가졌다고 느껴지는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스토리 자체에만 집중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주인공인 ‘나’에 감정이입하고, 그의 눈을 통해 ‘조르바’를 느낄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이루는 것들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인 ‘나’는 근대의 이성, 합리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책을 많이 읽는 지식인답게,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합리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행하는 사람이다. 반면, 조르바는 비합리적이고 무질서적인 사람이다. 언제나 마음 가는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그만큼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언제나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인공인 ‘나’는 현대 사회의 사람들과 비슷하다. 대학교 1학년때 나는 개인적으로 인생 강의로 꼽는 ‘동양 철학 입문’이라는 수업을 수강했는데, 그 강의에서 교수님은 도정일 경희대 교수의 말을 빌어 “현대 사회는 시장 전체주의의 시대이다”라며 “시장이라는 신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개개인의 자유를 박탈하고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시장주의’적 사고에 갇히게 한다. 개개인은 시장 생존 방법을 배우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시장의 논리를 내면화 하여 끊임 없이 감시한다”라고 말씀하셨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개개인의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남들 다 있는 자격증, 나도 따고, 남들이 본다는 시험, 나도 준비하고, 그것이 개인의 가치라고 믿고. 남들에게 칭찬 받기 위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체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지 않고, 머리가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그러나 조르바는 그를 깨부수라고 말한다. 그는,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게 바로 삶”이라 말한다. 또, “확대경을 부숴라”라고 말한다. 확대경은 현대 사회의 흔한 판단 기준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확대경을 깨부수라 말한다. 남들 하는 대로 생각하고 따져보지 말고, 스스로를 따르라고. 본인의 가슴속에 떠오르는 감정과 욕망을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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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조르바가 주인공인 ‘나’에게 하는 말 중 이런 말이 있다. “까마귀는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에요. 기껏해야 어기적거릴 수 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에요.” 까마귀는 자신 만의 보법이 있는데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남의 길을 걸어가려 하다 보면 결국 자신만의 페이스를 잃는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아빠가 ‘이제 3학년이 되니 영어 시험도 보고 자격증을 준비해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끊임 없이 나를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끌어다 맞추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는 내게 5년 전과는 다르게 다가왔고, 그의 가르침은 매우 컸다.
 

[김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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