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2) [여행]

글 입력 2017.03.0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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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전날 밤에는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설렘보다는 두려움과 걱정이 컸다.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위기와 절정


 새벽같이 준비를 하고, 마무리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했다. 수면 시간은 부족했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이것 다음에 이것, 단계별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신경을 최대한 곤두세우고 있었기에. 평소 같았으면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 맡기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문제들, (사본은 챙겼나? 왜 출국심사대에 내 줄 뒤에만 사람이 없지? 줄은 잘못 섰나?) 가만히 두면 누군가가 해결해주었을 문제들이 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긴장하고 걱정을 했다. 항상 부모님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괜한 스트레스를 자초하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기분이었을까. 이곳에는 아무도 나를 책임져줄 사람이 없고, 오히려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다는 기분. 그 부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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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기상 이변, 대기시간, 지도의 오류, 몸살, 그런 것들이 조금 편안해진다 싶으면 자꾸만 튀어나와 우리를 당혹케 했다. 계획대로, 뜻대로 되는 일은 사실 거의 없었다.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은 여행 내내 끊이질 않았다. 급기야 이름도 알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무교지만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기분이 이럴까.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되었을 때. 초월자에게 간곡히 빌기라도 해야 이 재앙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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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자유여행의 참맛을 알 것 같았다. 발이 퉁퉁 부을 때까지 길을 찾아 헤맬 때에는 차라리 패키지 투어를 신청할 걸 투덜투덜하긴 했어도, 헤매다 우연히 들어간 집에서 뜻밖의 일품요리를 맛보았을 때, 취향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자유자재로 일정을 바꿀 때,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 자체를 즐길 때 역시 자유여행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대단원



 ‘자유’는 불안하면서도 무겁다. 자유는 보호망을 스스로 벗어던지는 것이며, 동시에 그에 따른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어쩌면 나는 자유를 방종과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씁쓸하다. 그러나 씁쓸함에서 더욱 끌리는 것들이 있다면 아메리카노, 술, 그리고 자유여행이 아닐까! 우여곡절 많고 힘들었던 여행이 더 오래, 그것도 아름답게 기억에 남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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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여행, 특히 자유여행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 왜곡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여행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부분에서는 물론,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도 뜻밖의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배움이 있었다. 나를, 친구를, 부모님을, 종교 신자들을, 여행자들을, 이국의 주민들을 돌아보고 그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있었다. 그것이 유쾌하든 불쾌하든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만 남게 된다. 물론 안전하게 잘 다녀왔을 때의 이야기이겠지만 … 나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중에 정말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또 어떤 방식으로 여행을 좋아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무엇을 마주치고, 어떻게 골머리를 앓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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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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