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를_대하는_태도 #이창동 #시 [시각예술]

영화를 ‘해시(詩)태그’. 영화로 보고 시로 읽으며 미처 보지 못했던, 생각하지 못했던 세상의 파편들에 대해 사색의 시간을 전달하는 글.
글 입력 2017.02.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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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_죽어가는_시대

 ‘시 읽는 청춘’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 속 시 수업 강사로 등장하는 김용택 시인을 빌어 ‘요즘은 시가 죽어가는 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즘 10대, 20대 청춘들에게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저 오글거리고 어려운 일이며, 소모적이고 낯선 일이다. 사색하는 것보다 검색하는 것이 익숙한,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욱 편해졌다. 중·고등학교 후배들은 종종 학교에서 ‘시’ 따위를 왜 배우는지 모르겠다며 투정을 늘어 놓는다. 그들에게 ‘시’란 참고서 속 까맣게 박힌 해설 따위를 외우고, 시험을 위해 억지로 공부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단어마다 일일이 밑줄을 그어 주고 별표를 달며, 수십 줄의 주석이 없으면 불안했던, ‘시 공부’가 싫은 아이들의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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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창동 #영화

“선생님, 시상은 언제 찾아오나요?”

 영화 속에서 미자는 묻는다. 시인은 답한다.

 “시상은 우리를 찾아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잘 봐야 해요.”

 영화 <시>(2010)는 시를 쓰고 싶은 할머니 양미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항상 화사한 옷차림에 고운 말씨와 미소를 가진 할머니지만, 현실의 삶은 녹록치 않다. 변두리 아파트에서 무뚝뚝한 중학생 손자와 단 둘이 살며 괴팍한 할아버지의 간병인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퍽퍽한 일상. 미자는 그 속에서 시 수업을 통해 그때만큼은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길 원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 갑자기 그녀를 찾아온다. 영화는 시작과 함게 영롱하게 빛나는 강에 떠내려가는 소녀의 시신을 비추며 강하고, 독하게 다가온다.

 ‘손자의 성범죄’, 그녀는 이를 외면하고 ‘아름다운 시’를 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시는 쉽게 써지지 않는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잘 봐야하며’, ‘시상을 주변에서 찾아’가야 한다. 그녀가 시를 쓰지 못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자신이 처한 혹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외면했던 것. 미자는 바라보기 시작한다. 사과를 들여다보다가 밥을 먹는 손자를 보고, 교회에서 가져온 소녀의 사진을 식탁 위에 보란 듯이 올려다놓고, 소녀가 모진 일을 당한 장소와 생을 마감한 다리 밑을 내려다본다. 그렇게 그녀는 ‘소녀를 위한 시’를 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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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스의_노래 #이창동 #시
그 곳은 얼마나 적막할까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좋아하는 음악 들려올까요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 소리 들리고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을까요
한 번도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 시 <아네스의 노래> 中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를 통해 미자는 묵묵히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잔잔히 토해낸다. 눈에 보이는 화사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다 외면했던 소녀의 아픔을 바라보았고, 아릿하지만 담담하게 시를 써내며 ‘진정한 시 쓰기 행위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시’란 그런 것이다. 시를 쓰고, 읽고, 느끼는 행위는 결코 어렵지 않고 고차원적이지 않다. 자기 내면에 존재하던 혹은 숨겨져 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게 해주는 일종의 고백이자 돋보기이다. 우리가 사는 생애의 좀 더 깊은 면과 다양한 편린들을 바라보고, 결국 ‘나’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는 참 예쁘고 고우면서도, 날카롭고 아픈, 상대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와 같이 시 속에도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야기는 관객과 독자들을 휘두르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우리네 세상이며 사람과 삶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영화와 시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지난 날 ‘시’가 그랬다. 요즘은 시의 위력이 조금 주춤하고 있다. 시는 애매모호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 쌓인 재미없는 글이라고 편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현상은 비로소 꽉 막힌 틀 속에 가두어진 ‘시 공부’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시에 붙어있는 거추장스러운 첨삭과 해설을 떼고 ‘시’ 그 자체를 바라다보자. 영화 <시> 속의 미자처럼,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이 시와 가까워지기 위한 시작이다. 굳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시대적 배경이나 시어의 의미를 찾으려 고심할 필요도 없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구절씩 아무런 부담감이나 제약 없이 시를 음미하며 읽어나가는 것이다. 어느새 수많은 시들 중 자신의 가슴을 탁-하고 치고 들어오는 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멀어진 시를, 가슴으로 당겨야 할 때가 왔다.

[김수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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