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자들'의 행복 [문화 전반]

단색이 아닌 알록달록한 행복을 위하여
글 입력 2017.01.3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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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의 행복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꽤 익숙한 단어다. 수많은 매체가 ‘여자’의 행복을 이뤄준다는 메시지를 내걸고, 특정한 상품들로 여성들을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부엌은 여성의 공간이 되었고, 더 좋은 냉장고, 더 예쁜 식기를 가진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풍족하고 세련된 삶을 사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주방용품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고급화장품을 사용하는 여성일수록, 명품가방을 드는 여성일수록 자신을 완벽하게 가꿀 줄 아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인식되곤 한다.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 좋은 기저귀를 쓰고, 더 좋은 분유를 먹이는 여성이 더 훌륭한 어머니가 된다. 이렇게 수많은 광고는 특정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여자’의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여성들에게 감언이설을 속삭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여자’의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들이 말하는 ‘여자’의 행복이란 어찌 보면 복잡하고, 어찌 보면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현모가 되는 것, 자신을 가꿀 줄 아는 매력적인 여인이 되는 것, 그리고 요리와 집안일에 능숙한 가정적인 아내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여성의 틀 안에 스스로를 맞출 때 비로소 ‘여자로서의 행복’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광고들만이 ‘여자’의 행복을 이렇게 정의하진 않는다. 우리 스스로도 ‘여자’의 행복을 생각할 때 사회적으로 정의된 특정한 여성의 이미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 부합하는 행동이 바로 ‘여자’의 행복이라 말하곤 한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여자’의 행복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무엇이 여자의 행복일까?’라는 질문이었는데, 쇼핑부터 시작해서 화장, 하이힐, 다이어트 등의 자기관리, 연인으로부터 사랑받기,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점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이 다양한 대답도 사회가 정의한 여성의 이미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 스스로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사회 자체도 특정한 여성의 이미지로 둘러싸인 틀에 갇혀 ‘여자’의 행복을 정의하고 있는 셈이다.

  틀에 갇힌 ‘여자’의 행복이 나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를 포함한 수많은 여성들은 사회화의 과정에서 이에 자연스럽게 노출된 결과로 틀에 갇힌 이미지를 선망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이러한 틀에 부합시키면서 행복을 맛본다. 문제는 이러한 틀을 벗어날 때 발생한다. 모든 여성이 항상 정해진 여성의 틀에 만족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머니의 역할보다 일이 더 중요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에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별성은 그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정의한 여성의 틀과 다르다는 이유로, ‘여자’의 행복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종 무시된다. 아이보다 일이 중요한 여성은 어머니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그래서 ‘엄마로서의 여자의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존재다.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는 일종의 죄악으로 평가받고, 자신의 외모를 매력적으로 가꾸지 않는 여성은 여성스럽지 못한, ‘매력을 과시하는 여자의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존재다. 사회가 정한 여성의 틀을 벗어나는 여성들은 모두 ‘여자’의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존재다.

  웃기지 않은가. ‘여자’의 행복에는 일정한 틀이 있고, 그 틀을 벗어나면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심지어 그 틀을 벗어난 행동에서 여성이 기쁨을 얻는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적인 ‘여자’의 행복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 이상한 현실의 바닥에는 사실 성에 대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적으로 학습했던 ‘여자는 이래야한다’는 편견이 여성의 행동을 규격화하고, 여성의 행복까지 틀에 짜 맞추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여자’의 행복이란 단어가 싫다. 같은 이유로 ‘남자’의 행복이란 단어도 싫어한다. 성에 대한 편견이 행복을 규정하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행복은 그저 행복일 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고 절대로 같을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하나로 묶어 규격화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국 나에게 ‘여자’의 행복이란 실제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길 바라는 개념이다. 모든 여성을 일정한 틀에 가두어 버리는 ‘여자’의 행복이 아니라, 여성들 각 개인이 추구하는 행복의 기준이 반영된 ‘여자들’의 행복을 바란다.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동일한 색상으로 뒤덮는 행복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준으로 각각의 색을 내뿜는 알록달록한 행복을 바란다. 행복을 정의하는 기준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여자’의 행복이란 단어가 사라지길 바란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여성의 틀을 깨자는 뻔한 의미가 아니다. 애초에 그것이 쉽게 깨어질 수는 없다. 다만 자신이 사회에서 정한 ‘여자’의 행복의 틀을 벗어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행복인 이상 죄의식을 갖지 말자는 말이다.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당당할 수 있을 때, ‘여자들’의 행복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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