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니가 자랐다 [문화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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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입력 2017.01.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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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니가 자랐다. 잠깐사이에 드문드문 얼굴을 드러내더니 어느 순간 다 자라있었다. 평소 병원을 가까이 하지는 않아 치과 역시 뜸하게 들르곤 했는데 몇 년 만에 갔던 치과에서 갑자기 사랑니 소식을 들었었다. 그러다 최근 갑작스럽게 왼쪽 턱 부근이 살살 아리기 시작하더니 도저히 입을 벌릴 수 없어 병원을 찾았다. 그새 다 자란 사랑니들 중 하나가 괜히 말썽 이였다. 저 편하게 누워 옆 어금니를 꾹꾹 건드릴 뿐만 아니라 보란 듯이 신경위에 자리 잡아 있었다, 발치를 각오하고 들어갔던 병원에선 오히려 거절하며 대학병원을 연결 해 주었다. 평생 살면서 타고난 건강덕분에 링거 하나 맞은 적 없이 멀쩡히 살아오던 나에게 ‘대학병원’이란 너무 버거운 단어였고, 음식은커녕 입을 벌리기도 힘든 입 안 상태 역시 끔찍했다. 그리고 이런 감정을 전부 다 정리하기엔 내 감성은 또 섬세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사랑니 생각뿐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사랑니를 발치 해 봤을까? 아니면 아직 자리지도 않았을까? 온갖 것들이 관련 되어 있었다. 그리고 진부할 수도 있는, 도대체 왜 그렇게 앙증맞은 이름을 붙여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게 만든 걸까. 사랑니는 왜 내 몸에서 뿌리를 뒀으면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 유치한 생각들이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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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란 이름은 ’사랑을 하는 늦은 나이에 나는 이‘라서 사랑니라고 알려져 있고, 살 속에 파묻혀있다 해서 '살인 안니'(살 안에 있는 이) 살았니. 라고 하다가 이것이 변해 '사랑니'가 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사랑을 하기 조은 나이라니- 달짝지근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서 사랑니를 뽑을 때마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는 재밌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 프로를 볼 때도 느낀 것이지만 이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어진 것 같다. 사춘기적부터 자라나기 시작해 잘 자랄 수도 있고, 첫 시작부터 비뚤어져 자랄 수도 있고, 비뚤게 자라 옆 어금니를 짓무르게 만들 수도 있고. 매복되어 잇몸 안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질 수도 있고. 뽑으면 죽을 만큼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 아물면 개운해 진다. 골치 아프게 자란 이 일수록 뽑는 절차도 복잡하다. 겁이 많은 사람이라면 병원 문턱까지 가는 것조차 오래 걸리고, 오히려 주변에서 더 말이 많다. 이래 그렇대, 저래 저렇대. 타고나게 하나도 자라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쩜 이렇게 닮은 점이 많은지.
 
사실 사랑니가 났지만 아직 사랑을 해보지도 못했고, 사랑을 할 준비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릴 적 추억속의 사랑이 떠오르더라. 친구들과의 사랑이 떠올랐다. 학창시절 추억이 많지는 않다. 당시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많이 우울한 친구였고, 입시철에는 혼자 미술학원을 다니는 바람에 야자에 수업에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는 것에 비해 많이 겉돌았다. 그래서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일은 많이 없었는데 유독 그랬다. 시발점이 되어 준 것은 아이유의의 ‘사랑니’란 노래였다.

 
이 지구 위엔 첫사랑을 지켜낸 사람은 없나봐
누구나 한 번쯤 한 움큼 눈물을 쏟아내곤
잊고 살아가나봐
내 첫사랑은 첫 사랑니처럼 아파
-아이유 <사랑니>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노래 제목만 듣고 홀려서 계속 들었다. 첫사랑과 첫 사랑니의 아픔을 엮어 기막히게 풀어냈었다. 예전에 훑었었던 호리이 작가의 <두번째 사랑니>역시 생각났다.

 
첫 번째 사랑니는 첫사랑과 함께 자랐다. 잘 자라서 아프지도 않았고, 아프지 않았던 만큼 행복했다. 두 번째 사랑니는 두 번째 사랑과 함께 자랐다. 너무 아프고 너무 힘들어서 그녀는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 사랑을 놓아버리기도, 포기하기도 어려웠다. (중략)
- 호리이 <두번째 사랑니>


사람이 만드는 문화는 일상생활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이번에도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책과 음악을 뒤적이고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공감을 얻을 수 있고 그 공감은 또 위로를 해준다. 나 역시 꾸밈없이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해 나가고 싶다.


[김경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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