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 그 놀라운 변화의 장 [문학]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글 입력 2016.12.26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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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놀라운 변화의 장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분명한 증거는
함께 있을 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다."
 

  마녀사냥에서 곽정은 칼럼니스트가 한 말이다. 웃기게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언뜻 저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변화하는 과정은 세상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가장 강한 힘을 가진 행위다. 특히 사랑이란 이름 아래 두 사람이 만나 가장 친근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널리고 널렸으면서도, 가장 신기한 행위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은 한 남자를 의사에서 유리청소부, 트럭운전사로 변하게 했고, 동정이란 이름으로 바람둥이였던 그를 한 여자에게 묶어 두었다.  또한 이 사랑은 한 여자를 시골에서 탈출하게 했으며, 평생 질투를 하는 슬픔과 사랑의 행복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사랑은 토마시를 변하게 했고, 테레자도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이 둘은 서로에게 제대로 된 사람이었을까? 상대방으로 인해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을까?

 
  토마시에게 이 물음을 던진다면 그는 망설임없이 "YES"라 답할 것이다. 물론 그는 단지 여섯번의 우연이 겹쳐 이루어진 테레자와의 만남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다. 그녀의 질투로 인해 '에로틱한 우정의 불문율'은 깨졌고, 여러 여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각기 다른 여성의 상이성을 파헤치는 행위, 즉 자신만의 메스로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는 행위도 마음껏 하지 못했다. 테레자에게서부터 시작된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로 인해 의사의 직업을 잃기도 했다. 가끔씩은 테레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그런 자신을 모습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테레자로 인해 변해가는 그의 모습에 만족했다. 그는 유리청소부가 되면서 오히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해방감을 느낀다.  자신 내부에 존재하던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열망이 외부에서 일정하게 주어진 의무감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여자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비밀을 파헤치고자 했던 행위에도  싫증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욕망 역시 자신이 생각했던 의무, 즉 'es muss sein'(그래야만 한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테레자로 인해 자신을 얽매던 의무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 셈이다.  가벼움의 세계에서만 찾던 즐거움을 무거움의 세계에서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테레자의 경우도 그러할까? 그녀는 아마 "YES"라 단언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수심 가득한 얼굴로 "NO"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그녀는 시골의 촌구석에서 웨이터로 일하며 어머니의 냉대를 받고 살았다. 모든 육체를 동일시하고, 각 영혼 고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성을 알아주는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러한 그녀에게 토마시는 새로운 세계로의 입장권과 같은 남자였고 그를 사랑하면서 그녀는 시골의 웨이터에서 의사의 부인으로 변했다. 겉보기에 그녀는 완벽하게 그로 인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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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사실상 그 세계는 새로운 세계가 아니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토마시는 가벼운 세계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테레자는 사람의 몸을 각 영혼과 이어지는 고유성의 표현으로 인식했지만, 토마시는 몸과 영혼은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했다. 토마시의 바람은 그녀의 육체를 다른 여자들과 동일한 육체로 만들어 버렸으며, 결국 그녀는 항상 다른 여자들을 질투하며 '유사성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수많은 여자들이 자신처럼 토마시에게 특별한 여자가 되지는 않을까하고 말이다. 여전히 가벼움의 세계에 살아가는 토마시로 인해 무거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테레자는 자신의 바꾸는 긍정적인 변화보다는 부정적인 변화를 겪게 된 셈이다.

 
  물론 그녀가 토마시로 인해 행복을 겪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토마시가 가벼움의 세계에서 무거움의 세계로 들어 가면서(그들이 시골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종종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서 그녀가 느끼는 것은 '죄책감'이었다. 자신이 토마시를 아래로 끌어내렸다는 죄책감, 그를 나약한 토끼로 만들어버렸다는 죄책감 말이다. 이 죄책감은 결국 그녀에게 진한 슬픔으로 남게 된다. 그녀의 행복은 토마시가 자신으로 인해 변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되었다. 가벼움의 세계에 있던 토마시를 자신과 같은 무거움의 세계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슬픔은 자신은 토마시처럼 변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녀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무거움의 세계에서 머물며 삶의 다른 가치에 도전하지 못한 약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YES"보다는 "NO"를 선택할 것이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싸우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열정에 취해 서로를 탐닉하기도 하면서 사랑이 이끌어내는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 변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겪는 흔하고 당연한 것이다. 당장 거리만 나가보아도 사랑때문에 울고 웃는 연인들이 즐비하다. 어찌보면 이 소설은 그저 단순한 남녀의 사랑이야기일 뿐이다. 단지 그 이야기에 철학과 역사의 옷을 살짝 입힌 것에 불과하다. 사랑, 그 놀라운 변화의 장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드는 것은 어떨까. 혹시나 이 책이 당신에게 '테레자의 안나카레니나'와 같은 역할을 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처럼.
 
[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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