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감정과 느낌을 보암보암하다_

글 입력 2016.11.1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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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예술인들은 사실 우리가 공연예술, 시각예술 등 기준을 두고 분류하고는 있지만 그 분류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을 각양각색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정치적인 메시지가 될 수도 있고, 사회에 던지는 날카로운 비판이 될 수도 있으며 개인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역사의 한 순간을 포착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무엇보다도 나를 끌어당기는 문화예술의 무언가는 바로 감정과 느낌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책이 있다. 좋아하는 시가 있고. 좋아하는 그림, 영화가 있다. 장르는 서로 다르지만 나의 ‘좋아하는’의 범주에 들어가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감정과 느낌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저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몇 장에 걸쳐 표현하는 그런 책을 두고 어떤 이는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낄지 모르겠으나 내겐 그것이 그 책을 좋아하는 이유이자 애초에 그것을 읽은 까닭이기도 하다.

 
Empty_house_in_Zhukovka_-_Kerch,_Ukraine_-_panoramio.jpg▲ -구글 이미지 발췌

 
 얼마 전 문화예술에 내재되어있던 감정과 느낌이 갑자기 내 마음 속으로 훅 들어왔던 적이 있는데, 바로 기형도의 <빈집> 이다.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이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작품성 역시 두루 알려져 있는 기형도의 <빈집>. 하지만 죄송스럽게도 내게 이 시는 200쪽이 넘는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만나야만했고 공부해야만 했던 작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의미가 없었던 이 시가 마음속으로 뛰어 들어와 엉망진창으로 헤집어 놓았던 것이다. 


 요 근래 대학생활의 전부를 함께 한 이와 이별의 문턱에 섰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때 신기하게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이제껏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던 이 시가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를 알아가기 바빴던 밤과 나와 그 사람을 감싸 안던 따뜻한 햇살과 바람들, 마음을 어찌 내려놓아야 할지 모르는 주인을 오랜 시간 기다려주었던 편지지. 그리고 내게 공기처럼 익숙했던 것들을 내려둔 채 혼자 뒤돌아서야만 했던 빈집, 그 앞에 서있는 나의 모습. <빈집> 속의 ‘짧았던 밤’들은 지난 날 나의 ‘밤들’이 되었고,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은 나의 ‘안개들’이 되었으며 빈집에 갇혀버린 사랑은 나의 ‘사랑’이 되었다. 
 
 그 순간 시라는 향초에 누군가 불을 붙인 듯, 작품에 녹아 들어있던 외로움, 아픔, 쓸쓸함, 공허함이 향기롭게 뿜어져 나왔다. 그제 서야 비로소 나는 시어 하나가 무슨 의미인지 구구절절 욀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던 기형도의 <빈집>을 ‘읽었던’ 것이다. 그전까진 예술 작품에 담긴 감정과 느낌에 주목하는 일을 단순히 좋아하기만 했다면,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문화예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과 느낌이 갖는 힘에 처음으로 확신을 갖게 되었다. 


HalfNoise-Know-The-Feeling-640x640.png

 
 ‘오글거린다.’ 낯간지러운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요즘 사람들은 오글거린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때로는 어떤 이가 자신의 감정과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글이나 말이 그저 오글거린다는 표현 하나로 정의된다는 사실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 때문에 솔직한 자신만의 감정과 느낌을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 역시 그렇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오글거림’은 그것을 피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만큼 많은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사기도 한다. 

 마치 유리처럼 작은 일과 소소한 감정 혹은 느낌에 예민해 쉬이 넘기지 못하는 성격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앞을 향해 달려가기에도 벅찬 사회에서 도움은커녕 걸림돌만 될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일에도 당황하고, 놀라고, 어쩌면 쉽게 좌절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러한 성격은 길가에 핀 민들레나 한가롭게 누워있는 고양이, 벽에 쓰인 꼬마아이들의 낙서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양 무한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한 감정과 느낌에 대한 세심함에서 나온 오글거림을 나는 사랑한다. 


   
 보암보암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이곳, 에세이라는 백지에 나는 지금껏 이야기했던 감정과 느낌에 대해 ‘보암보암’ 해보려 한다. 때로는  감정과 느낌의 응축 그 자체의 문화예술인 시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감수성으로 찾아낸 감정과 느낌을, 때로는 어떠한 감정 또는 느낌과 잘 어우러지는 문화예술에 대해 풀어내고 그려냄으로써 말이다.

 나는 여전히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다. 또한 저명한 작가들이나 예술가들만큼이나 감수성이 뛰어나지도 않다. 때문에 아직 겪어보지 못한 감정과 느낌도 많을뿐더러 알아채지 못하고 무던히 놓쳐버리는 무언가가 굉장히 많을 거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95%의 평범함과 5%의 독특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면, 평범함 덕분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무언가를, 약간의 독특함 때문에 이럴 수도 있구나 - 하는 신선한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을거라 믿고 또 바란다. 보암보암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처럼,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감정과 느낌을 매만지는 그런 글이 되길 기대한다. 
 


반채은.jpg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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